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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정수와 소수

by 중은우시 2006. 6. 27.

작자: 杜奔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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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한 고대문명국가가 있었는데, 국민들은 그저 정수만 알았다. 예를 들어, 0, 1, 2, 3, 4.....

 

한번은 국왕이 대신들에게 이런 문제를 물어보았다. "1 나누기 2 는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대신들중에 절반은 0이라고 했고, 나머지 절반은 1이라고 했다. 이 두 파는 매일 조정에서 싸움을 그칠 줄 몰랐다. 전자들은 1 나누기 2는 한개의 사과를 두 사람에게 나누는 것인데, 한 사람은 못가지고, 다른 사람은 1개를 가지게 되니, 첫번째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0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후자들은 왜 첫번째 사람을 기준으로 하느냐 두번째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1이 아니냐고 말했다.

 

사람들의 싸움은 1년 또 1년이 가도 그치질 않았고, 서로 양보할 줄을 몰랐다. 국왕도 골치가 아팠다. 어느 날, 다른 나라의 국왕이 사신을 파견했다. 그래서 국왕은 이 사신에게 물어보았다. 1 나누기 2는 무엇인고?

 

사신은 "간단합니다. 1 나누기 2는 0.5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국왕과 대신들은 듣고는 모두 놀랐다. 이 0.5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저 정수만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0.5를 이해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나, 국왕과 몇몇 총명한 대신들은 오랜 시간동안 머리를 짜낸 후에야 비로소, 0.5라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고, 바로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 소수는 매우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은 오랫동안 계속되던 싸움도 멈출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많은 어리석은 대신들은 아직도 소수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뒤에서 싸우고 있었다. 일부분은 1 나누기 2는 0이라고 주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1 나누기 2는 1이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모택동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일부 사람들은 모택동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수의 개념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가소로운 다툼이다.

 

중국에서 얼마전에 "효장비사"라는 연속극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효장황태후가 도르곤이 죽은 후에, 황제의 예로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1달후에는, 다시 도르곤의 시체를 파내서 채찍으로 시체를 때리게 된다. 효장의 이런 방법은 효장은 그저 정수만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한 사람에 대하여, 하늘처럼 떠받들던가, 아니면 십팔층지옥으로 떨어뜨리던가. 소수의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쉽게 한 사람을 전부 긍정하거나 전부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효장황태후와는 달리,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에, 모택동에 대한 평가에서 삼대칠로 나누었다. 모택동에게는 70%의 좋은 점이 있지만, 30%정도 나쁜 점이 있다고. 비록 등소평이 문화대혁명중에 핍박을 받았지만, 그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등소평이 소수개념을 가진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수를 아는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지혜가 있고, 이렇게 하면 정치가 안정되고, 사회는 쓸데없이 동란에 빠지지 않는다.

 

소수개념이 없으면 어리석을 뿐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많은 문제는 정수로 풀리지 않는다. 정수가 없는 문제를 정수로 풀려고 애를 쓰면, 연목구어와 같고 정답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점점 알게 되었다. "금무족적, 인무완인(金無足赤, 人無完人, 금에도 100% 금은 없고, 사람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이라는 도리를. 소수사고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상이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력도 불필요한 논쟁에 쏟아버리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서도 답안을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