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계상업평론에 실린 내용을 발췌한 것인데, 중국이 대국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은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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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대국인가?
토지와 국민으로 보면 중국은 일찌감치 대국이다. 러시아는 토지는 매우 크고, 미국도 지금은 토지가 크지만 예전에는 겨우 13개주, 36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 원래 크지 않은 섬나라이고 인구도 많다고 할 수 없다. 도대체 대국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국은 토지와 인구만으로 표준을 삼을 수는 없다. 몇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 분야일 것이다. 첫째, 제도이다. 스스로 계속 새롭게 변화하고 힘을 키울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둘째는 경제발전수준이다. 이것도 세계의 선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셋째는 생활수준이다. 일반 백성의 수준이 부유한지 아닌지이다. 넷째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다.
...............(중략)
마지막 문제이다. 도대체 중국이 세계일류의 대국이 되려고 한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의 세가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민족주의이다. 편협한 민족주의이다. 청나라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들은 서양의 것들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고, 껍데기만 배웠다. 청나라의 기본사상은 중체서용인데, 바로 중국의 도덕문화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이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단지 서양의 과학기술만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체제, 정치, 문화등은 전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망해버렸다. 일본의 "명치유신"과 중국의 "양무운동"은 모두 186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제도측면에서 서양을 배웠고, 여러 걸음 앞서갔다. 서방의 교육제도를 배우고,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그대로 옮겨왔다. 외국선생을 모시고, 서양식의 교육을 진행하며 여러 인재를 길렀다.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중국은 190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과거제도를 폐지하였다. 그 전까지 사서, 오경을 들고 죽어라 외우기만 했었다. 그들은 사서, 오경만 읽고,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내세우며, 말만하면 외국에 대항할 것만 주장했다. 외국에서 배우지 말 것을 주장하였는데, 실은 정말 무책임한 사람들이었다. 무지했거나, 멍청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엉큼한 생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둘째는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이 무엇인가? 추상적으로 노동인민과 대중의 이익, 공상의 이익을 얘기하며, 대중의 편견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전후하여 특히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소련은 무산계급을 고취시켜 정권을 장악했고, 모두 공유화하였다. 이러한 사항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고, 채원배를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농민의 신성함을 주장하였다.
노동자농민에 관심은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농민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포퓰리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은 하나의 평균(平均)적인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이런 말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한다면 하는 말마다 옳은 주장이라고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저층노동자의 기본복지를 보호하고, 다른 측면으로는 시장의 법칙에 따라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고, 농업을 산업으로 전환시키고, 상품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이 중국이 근본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북경대학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주기인(周其仁)선생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더이상 자본가와 노동자의 착취와 피착취의 대립관계로 문제를 살펴보지 말라. 사실 사람은 모두 자본을 가지고 있다. 자금을 가진 자본가, 인력을 가진 자본가. 모든 성년남자는 다 인력자본가이다. 당신의 이 인력이 시장에서 얼마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가는 시장에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그것은 중국인에게 스스로의 소질을 제고시키도록 장려할 뿐아니라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단지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때만이, 모든 경제는 활력이 있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극단주의이다. 현재 중국의 모든 역사서는 신해혁명전의 역사를 꺼내기만 하면, 혁명과 개량의 대논쟁을 얘기한다. 그 속에서 말하는 내용은 모두 손중산을 대표로 하는 혁명파의 입장이 정확했고, 양계초를 대표로 하는 개량파의 입장을 틀렸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돌아보건데, 사실 정확했던 것은 개량파였다. 예를 들어 혁명파는 토지국유를 시행하도록 주장하였는데, 가능했는가? 소련도 해보았다. 토지국유화를 하고, 집체소유화를 하고, 그런데...결과는 어떠했는가? 팔백만의 소련농민은 굶어죽었다. 중국은 소련보다 더 철저하게 하였다. 인민공사를 만들었다. 좋다. 인민공사화와 대약진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는가? 각종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0만에서 4000만 심지어 5000만까지 보기도 한다. 이것은 극단이다. 누가 맞았는가? 신문화운동에서는 분명하게 말하였다. 중국은 공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 헌정을 시행하며 이성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그러나 국민당이 이끄는 국민혁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열강을 타도하고, 군벌을 타도하는 것이 그들의 두개의 구호였다. 군벌은 타도하였다. 중국은 그러나 자유는 없었다.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장개석의 국민당은 독재정치를 하였고, 교육에서도 당원화교육을 하였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한 극단적인 것들을 우리는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단지 혁명과 폭력이라는 수단에 의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확한 길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유, 민주, 법치의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제도를 건설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한꺼번에 이런 목표에 도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젊은이들은 합리적으로 문제를 봐야 하고, 극단적인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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