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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홍콩이 영국식민지로 된 경위

by 중은우시 2006. 6. 20.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로 된 것은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번에 걸쳐 차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처음의 두번, 남경조약과 북경조약으로는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침사초이지역을 할양받은 것이고, 마지막으로 신계지역(홍콩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은 99년 조차로 빌린 땅이다.

 

첫째, 홍콩섬(Hong Kong Island)

 

1839년-1841년 : 청나라정부는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전한다. 영국해군의 찰리 이리는 청라나대신인 기선(琦善)과 소위 천비초약(穿鼻草約)을 체결하여, 홍콩도(Hong Kong Island)를 영국에 할양(주권이전)한다. 이리는 천비초약에 근거하여 1841년 1월 20일 홍콩도에 상륙하여 점령한다. 그러나, 청나라정부는 기선이 국토를 할양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하며 천비초약을 승인하지 않고, 기선의 관직을 박탈했다. 한편, 영국정부에서도 천비초약을 받아본 후, 당해 조약에 통상개방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크게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Henry Pottinger를 전권대표로 중국에 파견한다. 이후 전투가 확대되고, 영국군은 하문, 영파, 상해, 진강을 점령하고, 남경에 이른다. 청나라 정부는 기영(耆英)을 파견하여 1842년 8월 남경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홍콩도는 정식으로 영국에 할양된다. 이때부터 홍콩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1851년,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다. 많은 화남지역의 상인들이 전란을 피해 홍콩섬으로 들어온다. 이로써 홍콩섬의 인구가 급증한다.

 

둘째, 구룡반도(Kowloon)

 

1856년-1858년 : 청나라정부는 다시 한번 영국프랑스연합군에 패배하고, 1860년에 북경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으로 구룡반도에서 자주 홍콩성의 치안을 교란시키던 지역을 떼어서 영국에 할양한다. 당시의 청나라정부는 이미 일락서산의 지경이었고, 구룡반도의 새 경계선은 단지 낮은 철조망으로 나누었는데, 위치는 현재의 계한가(界限街)이다.

 

셋째, 신계(New Territorries)

 

1898년 7월 1일, 영국정부는 <<전탁홍콩계지전조>>를 체결하여, 홍콩의 방어상의 필요를 들어 구룡반도의 북쪽, 심천하남쪽의 신계(新界, New Territories)지역을 조차한다. 조차기간은 99년으로 하였으며, 1997년 6월 30일 오후 12시에 기간이 만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