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무측천)

무측천의 뒤를 이어 황제자리를 꿈꾸던 여인들

중은우시 2006. 6. 16. 15:27

무측천(武則天)은 당태종 이세민의 재인(才人, 후궁중 낮은 등급)이었고, 이세민의 아들인 당고종 이치(李治)의 황후였으며, 중국을 수십년통치한 "측천대황제(則天大皇帝)"였다. 그녀는 중국에서 유일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황제였다. 무측천은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속이 깊고 음험하고 독랄하였으며, 통상적인 것을 벗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유아독존격이어서, 제왕으로서의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봉건적인 속박이 강했던 시대에 여인으로서 황제에 올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14세때 궁에 들어가 이세민의 재인이 된다. 그 때부터 그녀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번은 이세민이 연회를 열어 수하의 장수들을 불렀는데, 대장군인 위지공(尉遲恭)과 농담하다가, 위지공에게 사나운 말을 타도록 하였다. 위지공이 몇번 말에서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세민은 큰 소리로 부하들에게 누가 이 사나운 말을 길들일 수 있겠느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한켠에 서 있던 무측천은 큰 소리로 내가 하겠다고 대답하고 나섰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녀와 같은 일개 재인이 나서서 말할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세민은 그러나 그날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녀가 어린 여자아이인 것을 보아서인지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네가 어떻게 말을 길들이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무측천은 "이 말을 길들이는데 세 가지 물건을 주세요. 하나는 채찍이고 하나는 몽둥이이고 하나는 칼입니다."라고 했다. 그걸로 뭐하겠느냐고 물으니, "먼저 채찍으로 때려보고, 말을 안들으면 몽둥이로 내려치고,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칼로 죽여버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세민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러면 말이 죽지 않느냐라고 하니, 무측천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내게 도움이 안되면 소용이 없는 것아닙니까. 폐하의 수하의 장수들은 모두 폐하를 따라 생과 사를 넘나들던 오랜 충신들인데, 이런 충신들이 귀합니까 아니면 말 한마리가 귀합니까. 위지 대장군을 떨어뜨려 다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이세민은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무측천이 너무 능력이 뛰어나고, 또한 유언비어가 도는 것을 듣고는 이세민에게 임종때 그녀를 죽이라고 명령하도록 권했다. 그러나, 이세민은 그녀를 죽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보고, 단지 그녀를 사찰에 들어가서, 여승이 되도록 명하였다. 당고종 이치가 즉위한 후, 한번 사찰에 와서 놀다가, 예전부터 눈빛을 주고받던 무측천을 만나고 그녀를 사찰에서 나오게 하였으며, 소의(昭儀)에 봉하였다. 수단이 뛰어난 무측천은 빠른 시일내에 다른 비빈들을 몰아내고 황후가 되었다. 이를 위하여 그녀는 스스로 자기의 친딸을 목졸라 죽이기까지 한다.

 

황후가 된 무측천은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모자랐던 이치는 그녀의 손안에서 놀아나게 된다. 이치가 죽은 후, 무측천은 아들 이현(李顯)을 중종에 앉힌다. 그리고 그녀는 태후의 신분으로 사실상 정사를 농단하게 된다. 이 때부터 권력을 장악하는 활동이 시작되고, 반대파들을 몰아내며,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말을 잘 듣지 않던 중종 이현을 여릉왕으로 폐위시키고, 다른 아들인 이단(李旦)을 예종으로 즉위시킨다. 그리고, 저항세력을 일소한 후에는 아들인 예종을 다시 황태자로 격하시키고, 그녀 스스로 황제에 오르며 국호를 대주(大周)로 고치게 된다.

 

무측천은 40여년간 권력을 장악했고, 여러가지 나쁜 일도 많이 저지렀지만, 좋은 일도 많이 했다. 재위기간중에 생산을 중시하였고, 세금과 요역등 부담을 낮추어 주었고, 사족문벌을 타도했으며, 관리제도를 엄격하게 하였고, 부패를 징치했다. 그리고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공헌을 세웠다. 그녀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국력이 왕성하고, 당나라가 전성기인 개원, 천보의 시대로 들어갈 수 있는 기초를 모두 닦아놓았다.

 

무측천이 황제에 오른 것은 많은 여인들에게 황위를 향한 권력투쟁에 뛰어들게 하는 유혹으로 작용했다. 먼저 그녀의 딸인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있다. 그녀는 무측천과 마찬가지로 야심이 컸고, 여러차례 모친에게 자신에게 황위를 넘겨주도록 요구했다. 무측천은 이 때 다시 한번 그녀의 뛰어남을 보여주는데, 그녀는 태평공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이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현이 황위를 잇는 것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황위에 오르려면 이런 사람들과 죽기살기로 싸워야 한다. 내가 황위에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아느냐. 나는 다시는 그렇게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고 하면서 태평공주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이어서 황제의 자리를 탐한 것은 며느리인 위황후(韋皇后)였다. 그녀는 당중종 이현의 처였는데, 성격이 유약해서 제왕의 인물은 아니었다. 이로 인하여 위황후가 정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녀는 당시의 세력가인 무삼사(武三思)등과 결탁하여 무측천의 뒤를 잇고자 획책한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인 위온(韋溫)으로 하여금 실권을 장악하도록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그녀의 딸인 안락공주(安樂公主)와 모의하여, 자기가 죽은 후에는 안락공주에게 황제위를 물려주겠다고 미끼를 던져, 안락공주를 이용하여 중종 이현을 독사시키고, 나이가 어린 온왕 이중무를 황제로 올리고, 자신이 태후의 신분으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그 후에 무측천과 마찬가지로 황제에 오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중종의 조카인 이융기(李隆基)에 의하여 이러한 음모는 발각되었다. 젊고 능력있던 이융기는 당시에 실력자중의 하나인 태평공주와 연합하여, 선제공격을 통하여 정변을 일으키고 그의 부친인 이단(李旦)을 다시 황제위에 복위시키고,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살해한다. 이로써 또 한차례의 여인에 의한 권력찬탈음모는 종식되었다. 이융기는 이 공으로 태자에 올라 황위계승자가 된다.

 

위황후와 안락공주의 난을 평정한 후, 황제가 된 이단은 평범한 인물이었다. 태평공주의 야심은 다시 부풀어 올랐고, 이융기와 황제위를 놓고 암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은 이융기를 이기지 못하고 이융기에 의하여 섬멸된다. 이단은 이융기에게 황위를 물려주니, 바로 그가 당현종이다. 결국 천하는 다시 이씨의 수중으로 되돌아왔고, 무측천이래로 수십년간 여인들이 정권을 농단하고 당, 주간에 서로 구분이 가지 않던 국면이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