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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손자(孫子)와 손자병법(孫子兵法)

by 중은우시 2006. 3. 1.

손자병법을 지은 손자가 실재인물인지 여부에 대하여 예로부터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가인위서(假人僞書)

 

손무(孫武)라는 사람과 손자병법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1200년에 남송의 군사연구가인 섭적(葉適)은 이렇게 단언했다. "손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전히 이후의 변사들이 만들어낸 우상에 불과하다" 섭적은 그 근거로서 "만일 손무라는 사람이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남으로 월나라 사람을 설복하고, 서로는 강력한 초나라를 멸망시키며, 북으로는 제와 진에 위세를 떨쳤다면, 왜 경대부의 작위를 받지 못하였는지. 그리고 세상에 공인된 권위있는 사서인 <<좌전>>에는 그의 이름 한마디 나오지 않는 것인지" 섭적의 관점은 당시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손자병법과 손무의 존재를 부인하는 글이 많다.

 

둘째, 위서진인(僞書眞人)

 

손무라는 사람은 있었지만, 손자병법은 손무가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송의 매요신(梅堯臣), 청나라의 요내(姚[乃+鼎]), 근대의 양계초등이 모두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고, 모두 손자병법은 전국시대 상경의 말이라고 보고 있다.

 

셋째, 무빈합일(武[月+賓]合一)

 

일본학자인 사이토(齊藤拙堂)가 제출한 의견이다. 오늘날의 손자병법은 손빈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즉, 손무와 손빈은 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무는 이름이고 빈은 외호라는 것이다. 중국현대학자인 전목은 사이토가 제기한 학설을 더 발전시켜 무와 빈은 한 사람이라는 견해를 내었다.

 

다만 1972년 4월 10일, 산동 임기 은작산에서 출토된 한간에 따르면 손자병법 13편과 손빈병법 16편이 따로 나왔다. 이것으로 보면 손자와 손빈은 각각 다른 사람이고 그들의 병법은 독자적으로 후세에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무오일인(武伍一人)

 

청나라 중기의 문인인 모정(牟庭)은 손자병법이 오자서의 작품이라고 보았다. "무"라는 것은 손무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손자병법의 원래의 책이름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