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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삼성퇴(三星堆)유적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05. 10. 31.

삼성퇴는 중국 사천성의 성도평원에 위치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성도 평원에서 사람들은 황하유역의 각종 유물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각종 문물을 발국하였다. 그 중 1980년대에 몇군데 공사장에서 우연히 출토된 여러 청동기와 옥을 위주로 한 출토문물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삼천년전의 문물의 특징중의 하나는 "서방"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청동가면은 대부분 코가 높이 솟고, 눈이 큼직하며, 가장 기이한 점은 거기에서 서방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금으로 된 옥장(玉杖)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일순간에 여기저기서 추측들이 난무하였다. 이런 이상한 용모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간 것일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외계문명에서 왔다고 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도 한다.

 

인터넷작가인 소삼(蘇三)이라는 여자는 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그녀는 <<삼성퇴문화대추측>>이라는 책에서, 삼성퇴는 유대문명에 속한다고 하면서, 놀라운 주장을 펼쳤는데, 중국에 온 유대인들은 중국의 하, 상, 주의 문명을 형성하였고, 중국인들은 바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삼성퇴유적은 중국에는 황하문명이외에 장강문명도 존재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며, 삼성퇴유적은 장강문명을 대표한다. 다만, 삼성퇴유적과 관련하여서는 해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수수께끼가 존재하며, 이는 후세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풀어야할 숙제이다.

 

첫째, 삼성퇴문화의 기원은 무엇인가? 민강상류의 신석기 문화인가? 아니면 삭강의 고대 지역문화인가? 삼성퇴문화는 산동의 용산문화와 관련이 있는가? 그의 주요한 구성요소는 산동에서 온 것인가? 삼성퇴문화는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융합한 산물인가? 아니면 여러 문화가 교류하여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토착적인 지방문화인가?

 

둘째, 삼성퇴유적의 거주민은 누구인가? 저, 강(羌), 박인, 파인(巴人), 혹은 동이, 월인, 삼묘인(三苗人)인가? 민강상류지역의 석관매장문화와 삼성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삼성퇴의 거주민은 서북 및 민강상류에서 온 저, 강족인가? 아니면 토착인과 여러 외래민족이 융합해서 이루어진 삼성퇴 고대국가의 백성들인가?

 

셋째, 삼성퇴 고촉국(古蜀國)은 어떤 나라였는가? 그의 정치적인 성격이나 종교형태는 어떠했는가? 느슨한 부락군사연맹이었는지, 아니면 중원왕조에 부속된 지방소국이었는지, 아니면 씨족부락보다 상급의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독립된 초기의 국가였는지? 고촉국의 정치체제는 왕권위주인지, 신권위주인지 혹은 왕권과 신권이 혼합된 정교일치국가였는지?

 

넷째, 삼성퇴의 청동기들이 표현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할 정도인데, 청동기주조술과 그 청동기문화는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촉인들이 스스로 생산발전시킨 것인지? 아니면 주변인접국가 특히 중원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인지? 혹은 주로 형초(荊楚)의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서아시아, 근동, 남아시아등 외래요소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다섯째, 삼성퇴의 고촉국은 언제 생겨서 언제까지 유지되었고, 왜 멸망하였는지? 삼성퇴 고촉국의 가장 휘황했던 시기는 어부(魚鳧)왕조시기인지 아니면 두우(杜宇), 개명(開明)왕조시기인지?

 

여섯째, 두개의 제사갱의 연대와, 그 성격은? 상대(商代), 서주, 춘추, 전국, 아니면 다른 시대인지?

 

파촉도어

 

 

일곱째, 사천에서 출토되는 춘추전국시대의 적지 않은 물건에는 "파촉도어(巴蜀圖語)"라고 불리우는 도형이나 부호가 있는데, 이것은 종족의 휘장인지 아니면 문자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표지인지, 혹은 약간이라도 문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