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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음식

마파두부(麻婆豆腐) : 사천요리의 대명사

by 중은우시 2006. 2. 27.

 

 

마파두부는 워낙 유명하다보니, 그 유래에 대하여도 몇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첫째, 이야기

 

진마파(陳麻婆)는 성이 유(劉)씨이고, 성도(成都) 사람이다. 1804년에 태어나서 자라서 진춘복(陳春福)과 결혼했다.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뒤에서 그녀를 진마파(마는 얽었다는 뜻이며, 파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라는 의미이다)라고 불렀다.

 

결혼후에 그녀는 남편과 만복교(萬福橋) 앞에 부부의 작은 점포를 열어서, 간단한 요리와 밥을 팔았고, 스스로 요리를 담당했다. 팽현, 신번일대에서 성도로 오는 행인, 상인, 장삿꾼들은 모두 만복교를 지나야 했고, 많은 짐을 지고 가던 사람들은 종종 그녀의 작은 가게에서 쉬어가면서 밥을 먹고 하였다. 그들은 옆집의 진벽두부방(陳壁豆腐房)에서 두부를 사고, 건너편의 쇠고기파는 점포에서 소고기를 산 후에 자기들이 가지고 던 기름을 더 해서 진마파에게 주고는 요리를 부탁하곤 했었다. 진마파에게는 수고비를 건네주었다. 진마파는 요리에 재주가 있어서, 요리해낸 두부는 마비시키는 매운 맛과 뜨거운 맛, 부드러운 맛, 고소한 맛이 있으며 색깔도 뛰어났고, 향기도 뛰어났으므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진마파가 요리한 것이라고 하여 마파두부라고 불렀다.

 

마파두부점은 처음에는 간판도 없었다. 음식먹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얽은 얼굴을 표지로 삼아 찾아오곤 했었다. 마파가 죽은 후에 그녀의 딸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딸은 얼굴이 깨끗했다. 손님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놀려서 마파가 돈을 벌더니 얽은 얼굴도 편평해졌네라고 하곤 하였다. 정통의 맛을 보존하고, 권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건의를 받아 "진마파두부점(陳麻婆豆腐店)"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나중에 성도시내의 파기가로 옮겨가면서 간판앞에 '만복교'를 붙여서 유래를 나타냈다.

 

진마파부부는 아들이 없어서, 그녀가 54세로 죽은 후에 그녀의 딸인 진씨가 이어받았는데, 그녀는 남편인 노희지(魯希智)와 함께 가게를 물려받았다. 진씨가 1891년에 죽은 후에, 그녀의 아들인 노세권(魯世權)이 대를 잇는다. 세권이 죽은 후에는 그 처인 진씨가 이어받는데, 1927년에 진씨가 아들을 두지 않고 죽자 딸인 노준경(魯俊卿)이 가업을 잇는다. 그후에 사위인 등종상(鄧宗常)이 가게운영에 참여한다. 그러다가 1956년에 공산당의 정책에 따라 공사합영으로 변경되고, 노준경과 사위도 가게에서 계속 일을 한다. 현재는 그들은 은퇴하였고, 제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둘째 이야기.

 

약간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진마파두부점은 청나라 동치초년인 1862년에 성도의 북쪽 교외인 만복교에서 개업하였는데, 원래의 이름은 "진흥성반포(陳興盛飯鋪)"였다. 주방장은 진흥성의 처였고, 그녀는 얼굴에 몇 개의 얽은 자국이 있어서 사람들이 진마파라고 불렀다. 이 점표는 처음에는 간단한 요리, 밥, 찻물을 파는 작은 점포였다. 이 점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름을 나르는 일꾼들이었는데, 이들은 자주 두부를 사서 자기들 짐에 든 기름으로 가게 주인아주머니에게 튀겨달라고 부탁하곤 하였다. 주인아주머니가 튀겨주는 두부는 매우면서 뜨겁고 맛이 별난데가 있었다. 기간이 길어지자 그 가게의 두부가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음식점과 구별하기 위하여 마파두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점포도 이름을 바꾸어 "진마파반점"으로 부르게 되었다.

 

청나라 말기에, 진마파의 두부는 성도의 유명한 음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작가인 풍가길은 일찌기 <<성도죽지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마파진씨상전명 (麻婆陳氏尙傳名)

두부홍래미최정 (豆腐烘來味最精)

만복교변염영동 (萬福橋邊簾影動)

합고춘주취선생 (合沽春酒醉先生)

 

얼굴얽은 아주머니 진씨는 원래부터 유명했지

두부를 구워내는데는 맛이 최고야

만복교 곁에있는 가게의 주렴에서 그림자가 왔다갔다하면

두부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 손님들의 취한 모습.

 

또한 유명한 작가인 이발인은 <<대파>>라는 글에서 "진마파반포는 개업한지 80여년이 지났고, 3대를 이어내려오지만 전혀 쇠락하지 않았다, 40년대에는 여전히 교외에 있었으나, 손님들이 끊이지를 않았고, 주방장은 그에게서 배운 제자인 설상순을 위하여 50년대에 시내로 옮겼다" 현재는 성도시내의 서옥룡가(西玉龍街)에 있다. 설상순이 죽은 후에 이 가게의 주방장은 관은광, 애록화등이 담당했다. 현재 이 요리는 제5대전인인 서준걸의 손에 까지 전해졌다.

 

셋째, 이야기

 

세번째의 설은 대만의 유명한 교수인 장기균이 <<팽임원리>>라는 책에서 쓴 것으로 마파두부는 원래 마파두부(麻破豆腐)였고, "마"의 뜻은 맛이 얼얼하게 맵다는 뜻이고, "파"는 매운 맛이 스며들어 두부를 흐늘흐늘하게 한다는 의미였다. 이후에 파(破)라는 글자가 불길하다고 하여 좋은 뜻인 다른 발음이 같은 글자로 바꾸다보니 현재의 마파두부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