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 청나라는 멸망하였다. 국민당의 북벌이전까지는 북경에 북양정부가 존재하였으며, 북양정부의 수장은 총통, 집정, 대원수로 불리웠다.
1. 제1대 임시대총통
이름 : 손문(孫文), 손중산(孫中山)
호 : 일선(逸仙)
고향 : 광동성 중산
임기 : 민국 1년 1월 1일 - 민국 1년 4월 1일
퇴임사유 : 남북통일을 위하여 원세개를 총통에 추대하고 사임함.
비고 : (1) 원세개가 남하하여 총통직에 오르지 않았으므로 3월 10일 원세개가 임시대총통에 오른 후 4월 1일이 되어서 손중산이 정식으로 사임함.
(2) 부총통은 여원홍(黎元洪)
2. 제2대 임시대총통
이름 : 원세개(袁世凱)
호 : 위정(慰亭)
고향 : 하남성 항성
임기 : 민국 1년 3월 10일 - 민국 2년 10월 10일
퇴임사유 : 국회에서 정식 총통으로 선임되면서 임시대총통직을 물러남.
비고 : 부총통은 여원홍
3. 총통
이름 : 원세개
호 : 위정
고향 : 하남성 항성
임기 : 민국 2년 10월 10일 - 민국 5년 6월 6일
퇴임사유 : 황제로 오른 것이 실패하면서 몸에 병을 얻어 병사함.
비고 : (1) 부총통은 여원홍
(2) 민국 5년 1월 1일, "황제"를 참칭하며 "홍원원년"으로 선언. 3월 22일 황제위에서 물러남. 3월 23일 "홍헌" 연호를 폐지함.
4. 총통
이름 : 여원홍
호 : 송경(宋卿)
고향 : 호북 황포
임기 : 민국 5년 6월 7일 0 민국 6년 7월 1일
퇴임사유 : 안휘독군인 장훈(張勛)이 복벽(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부의를 다시 황제로 모신 일)사건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사직을 청함.
비고 : (1) 민국 5년 6월 6일 원세개가 죽으며 부총통이던 여원홍이 총통을 승계함.
(2) 민국 5년 10월 30일 풍국장(馮國璋)을 부총통으로 보선
5. 대총총(代總統)
이름 : 풍국장
호 : 화보(華甫)
고향 : 하북성 하간
임기 : 민국 6년 7월 6일 - 민국 7년 10월 10일
퇴임사유 : 환(晥)계열의 군벌의 압박으로 임기만료시 퇴임
비고 : 민국 6년 7월에 남경에서 대행 총통이 되고, 8월에 북경으로 감.
6. 총통
이름 : 서세창(徐世昌)
호 : 국인(菊人)
고향 : 천진
임기 : 민국 7년 10월 10일 - 민국 11년 6월 2일
퇴임사유 : 직계 군벌이 여원홍을 총통에 다시 앉히려 하고, 이를 위하여 조곤(曹琨)을 총통에 추대하려고 하며 서세창을 핍박하여 사임토록 함.
비고 : (1) 서세창은 민국 7년 9월에 총통에 당선되고, 11년 6월 2일에 전보를 통하여 사임. 여원홍은 6월 11일에 총통에 다시 취임. 그 동안은 내각의 고릉울이 총통을 대리하여 집무함.
(2) 부총통은 선임하지 않음.
7. 총통
이름 : 여원홍
호 : 송경
고향 : 호북 황포
임기 : 민국 11년 6월 11일 - 민국 12년 6월 3일
퇴임사유 : 직계 군벌이 조곤을 총통에 추대하므로 강제로 퇴임함.
8. 총통
이름 : 조곤
호 : 중산(仲珊)
고향 : 천진
임기 : 민국 12년 10월 10일 - 민국 13년 11월 2일
퇴임사유 : 풍옥상이 오패부를 배반하고, 10월 23일 "북경정변"이 일어나서 조곤이 연경루에 연금됨. 후에 강제로 퇴임당함.
비고 : (1) 민국 13년 11월 2일 핍박에 의하여 전보로 국회 참.중양원에 사직서를 보냄. 총통인감은 국무원으로 보냄. 대리국무총리인 황악이 총통 대리직무를 수행 같은 달 24일에 사직.
9. 임시집정
이름 : 단기서(段祺瑞)
호 : 지천(芝泉)
고향 : 안휘 합비
임기 : 민국 13년 11월 24일 - 민국 15년 4월 20일
퇴임사유 : 봉천군벌 장작림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봉천군벌과 연합하여 오패부에 대항하려는 계획이 무산됨. 이에 전보를 보내고 하야. 천진으로 옮겨감.
비고 : 단기서가 하야한 후, 북경정부는 국무총리대리 호유덕, 두석규, 고유균등이 대리 섭정을 맡음.
10. 대원수
이름 : 장작림(張作霖)
호 : 우정(雨亭)
고향 : 요녕 해성
임기 : 민국 16년 6월 18일 - 민국 17년 6월 3일
퇴임사유 : 국민혁명군이 북상하여 북경천진을 압박하자 장작림은 포위되었다고 느끼고, 군대를 철수하여 동북으로 물러나겠다고 선포하고 동북지방으로 회군함.
비고 : 6월 6일 북경은 평화적으로 국민당정부에서 장악. 북경의 곳곳에는 청천백일기가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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