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서시)

서시(西施)는 어떻게 죽었는가?

중은우시 2006. 2. 5. 22:20

 

 

절세미인인 서시는 춘추시대의 월(越)나라 사람이며, 중국역사상 유명한 4대미인의 한 명이다. 전해지는 책들이 서시에 대하여 적은 글은 그녀의 미모뿐아니라 그녀가 오월(吳越) 두 나라간의 싸움에서 맡았던 역할과 그녀의 최후에 대한 글도 있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서시는 월나라의 대부(大夫)인 범려(范려)는 서시의 집옆에 있는 약야계(若耶溪)에서 만났다고 한다. 서시는 범려가 언행이 뛰어난데 반하고, 범려도 서시의 미모에 반하여 두 사람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만남과 사랑은 후세에 사람들에 의하여 소설과 희곡으로 쓰여졌는데, 명나라때의 희곡가 양진어(梁辰魚)가 쓴 <<완사기(浣紗記)>>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이 만난지 얼마되지 않아 오나라와의 전쟁은 시작되었고, 오나라왕 부차(夫差)는 월나라와의 싸움에서 죽은 선친의 복수를 위하여 병사를 이끌고 월나라를 쳤고, 결국 월나라는 망하고 만다.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신하국으로 만들었으며, 월왕 구천(勾踐)은 오나라의 수도로 끌려가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구천은 치욕을 견디며, 3년간의 노예같은 생활을 견디어낸다. 범려도 구천부부를 따라 3년간의 노역을 한 후 귀국한다.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온 후, 나라를 다스리는데 주력하고 복수를 위하여 여러가지 준비를 한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키우는 것도 필요했지만, 상대방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필요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천은 범려의 "미인계"를 채택한다. 범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오왕 부차에게 보내어, 오나라의 정치를 문란하게 만들고자 한다.

 

서시는 오나라에 도착한 후, 절세의 미모로 금방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부차는 점점 월나라에 대한 경계를 늦추었다. 이후 그는 소인의 간사한 말을 듣기를 즐기고,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충신을 죽인다. 오자서가 죽은 후에는 오왕 부차의 주변에는 충언을 간하는 신하들이 없어졌고, 나라의 힘은 갈수록 약해졌다. 동시에 그는 큰 공사를 벌여 국력과 민력을 낭비하였고, 여러차례 중원을 침공하는 전쟁도 일으켰다. 오왕이 이와 같이 멸망으로 가는 행동들을 취한 것은 월나라가 미인계를 쓸 때부터 예측한 바였다. 상대방이 힘이 약해지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월나라가 성공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는 자결하고 만다.

 

그렇다면, 서시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첫째, 가장 민간에 널리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해피앤딩이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범려는 구천이라는 사람이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지만, 향락을 함께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비록 그도 3년간 욕됨을 함께 참고 견디고, 정치를 위하여 군주를 위하여 사랑하는 여인까지 희생하였으므로 월나라의 최후승리에 최대의 공신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그는 물러나는 길을 택하였다. 그래서 오나라가 멸망한 후 그는 서시를 데리고 배를 타고 강호에 은거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도지(陶地)에 정착하고 이름을 도주공(陶朱公)으로 고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모은다. 그는 자신의 총명함과 재능을 가지고 큰 부자가 된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 및 <<월세가>>에는 모두 범려의 지혜를 칭찬하고 있다. 이처럼 서시는 과거의 욕된 생활에서 벗어나 범려와 부유하고 안락한 일생을 보낸다. 이런 결말은 사람들의 이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고, 사람들이 자신의 청춘을 희생한 여인에게 더 큰 불행을 차마 안기지는 못하겠다는 심정에서 비롯될 것일 것이다. 명나라때 양진어의 <<완사기>>는 바로 이런 결말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을 얘기하는 설도 있다. 당시 귀족계급의 의리없음을 꼬집는 것으로 서시는 전쟁후에 강에 빠져 익사당한다는 것이다. <<묵자. 친사>>편에는 서시가 강물에 빠져죽었는데, 왜냐하면 서시가 너무 예뻣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묵자의 기록은 시간적으로는 실제 사건이 발생한 때와 근접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록이 너무 짧다. 나중에 어떤 사료에 의하면, 오나라가 멸망한 후, 월왕은 서시를 가죽부대에 넣어 강에 던져죽였다고 한다. 당시와 송사에서도 서시가 익사하였다는 내용을 쓰고 있다. 이 설을 비록 잔인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 범려는 일찌기 구천이 "목이 길고 새 입을 하고 있어, 어려움을 함께 견딜 수는 있지만,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는 없다"고 판단 한 것과 동일하다.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데 큰 공을 세웠던 문종(文種)을 죽여버린데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시와 같이 출신이 미천한 여인을 오나라에 파견하여 미인계를 펼쳤는데, 이것은 원래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만일 다른 나라가 이 일을 안다면, 구천이 한 여자의 힘에 의지하여, 떳떳하지 못한 수법을 사용하여 오월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을 안다면, 구천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거나 조롱당했을 것이다. 구천은 어떡하든 다른 나라들이 미인계를 쓴 것을 몰라야 했고 가장 좋은 방법은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여서 입을 막는 것)였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서시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서시는 원래 선량하고 순박한 빨래하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미 범려를 깊이 사랑했다. 다만 월나라의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그녀는 부득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오나라로 갔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함께 지낸다. 이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씨 고운 여자가 오나라에 가서 '간첩'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였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잘 따르는 오왕 부차에게도 미안한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오나라가 멸망하고, 부차가 자살하자 그녀는 더욱 미안한 감정에 빠졌을 것이다.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온 후, 다른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청렴한 범려를 대하였을 때, 범려의 깨끗한 명성이 자신으로 인해 더렵혀지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월나라가 그녀를 보내어 미인계를 썼다는 것은 절대 떳떳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므로 월왕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시인비사사휴(物是人非事事休, 사물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달라졌구나. 일들은 다 끝난 일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그녀로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범려의 명성도 보전하고, 나라의 명성도 보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서시의 진짜 최후가 어떠하였는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서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범려와 도망쳐서 행복한 일생을 마쳤기를 바랄 것이며, 정치투쟁의 잔혹함과 무정함은 그녀에게 익사설이나 자살설을 얘기한다.

 

 

 

서시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