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와 맹강녀는 중국역사상 아주 유명한 여인들이다. 그런데, 만일, 서시와 맹강녀의 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서"와 "맹"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서시의 성은 "서"가 아니고, 맹강녀도 "맹"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것은 전국시대이전에 중국에서 성씨를 부르는 습관때문이다. 만일 "성씨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면, 현대의 성명에 대한 구조를 가지고 2천년전의 주나라, 진나라의 상황을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런 착오가 생긴 것이다.
원래, 전국시대이전에는 중국인들은 이름외에 "성(姓)"과 "씨(氏)"가 있었다. 한 가족에서 남성들은 "씨"를 쓰고, 여성들은 "성"을 썼다. "씨"는 이름의 앞에 붙였고, "성"은 이름의 뒤에 붙였다. "성"의 경우에는 마치 현대 서구사람들의 습관과 유사하다. 진시황의 경우 씨는 "조(趙)"이고, 성은 "영(贏)"이다. 그래서 진시황은 남성이므로 "조정(趙政)"이라고 불렀다. 만일 여성이라면, "정영(政贏)"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진시황의 성명에 대하여 "영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의 습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순(舜)의 가족은 성이 규(嬀)인데, 그 후손들이 "진국(陳國)"에 봉하여졌으므로 씨를 "진(陳)"으로 하였다. 이 "진"씨의 일족이 제(齊)나라로 가는데, "진"을 "전(田, 진과 전의 고대음은 같다)"으로쓰고 "전"씨로 하였다. 제나라의 임금은 원래 성이 강(姜)이었는데(강태공의 후손), 전씨가 왕위를 빼앗았다. 이로부터 제나라는 "전제(田齊)"라고 부른다. 전제의 군주는 나중에 왕을 칭하다보니, 그의 자손들은 "왕(王)" 혹은 "왕손(王孫)"을 씨(氏)로 했다. 이로써 볼 때, "성"은 고정불변이었지만, "씨"는 때에 따라, 사는 곳에 따라, 받은 관직과 작위에 따라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맹강(孟姜)은 선진(先秦, 진나라통일이전)시대의 여자칭호이다. 이름이 앞에 온다. 즉, "맹(孟)"이 이름이다. 성이 뒤에 오니, 즉 "강(姜)"이다. "맹"이라는 것은 실제는 순서를 의미한다. 맞이를 "맹(孟)" 혹은 "백(伯)"이라 하고, 둘째를 "중(仲)"이라 하고, 셋째는 "숙(叔)"이라 하고, 막내를 "계(季)"라고 하였던 것이다. 맹강이라는 것은 성은 강씨이고 첫째딸이라는 의미이다. 요즘 칭호로 하자면, "강씨네 큰딸"이라는 정도가 될 것이다.
서시도 성이 '서(西)"가 아니라, 성은 "시(施)"이다. "동시효빈(東施效顰)"이라는 고사성어에는 동시가 서시가 얼굴 찡그리는 것도 예쁘게 보이니,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따라했다는 것인데, 이는 성이 "시"인 집안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여자아이가 둘이 있고, 하나는 동쪽마을에 하나는 서쪽마을에 있어서 구분하기 위하여 동시, 서시로 부른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시의 원래 이름이 "시이광(施夷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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