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북한간에도 서로 귀순한 사례가 많듯이, 중국과 대만간에도 그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대륙에서 대만으로 귀순하는 경우에 한국으로 비행기를 몰고온 경우가 거의 절반에 이른다는 것이다.
1960년 1월 12일. 해방군해군항공형 제4사단 조종사 양덕재는 미그-15전투기를 몰고 절강 로교에서 출발하여 대만으로 갔다. 대만 의란지구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죽었다. 이것이 해방군에서 처음으로 군용기를 몰고 대만에 귀순한 사건이었다.
1961년 9월 15일. 해방군의 조종사 소희언, 고지학은 얀-2yun수송기를 몰고 산동 교현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제주도에 착륙하였다. 두 사람은 10월 7일 대만에 도착하여 황금 500냥을 받았고, 이후 대만공군에서 복무하다가 상교(령관급 최고계급)로 제대하였다.
1962년 3월 3일. 해방군 해군항공병 제6사단 16단 3대대 8중대의 조종사 유승사가 미그-15전투기를 몰고 절강 로교에서 출발하여, 대만의 도원공항가지 갔다. 황금 1000냥을 받았으며, 나중에 대만공군에 들어가 공군방송국의 부국장 상교를 지냈다.
1962년 7월 25일 해방군은 통고를 반포하여, 비행기, 군함을 몰고 귀순하는 인원에 대한 포상과 연락방법을 공포한다. 1964년 3월 15일 다시 한번 통고를 반포하여, 비행기를 몰고 귀순하는 인원에 대한 포상방법을 밝히고, 광동 산두, 복건 청전, 절강 노교의 3개 공항의 방향 통신부호등을 제시한다.
1965년 11월 11일, 해방군 공군 제8사단 22대대 이현빈은 일-28 폭격기를 몰고 항주 견교공항에서 출발하여, 비행중 이현빈은 총을 쏘아 선임조종사 이재왕을 부상시킨 후, 비행기를 몰아 대만 도원공항에 내렸다. 그런데, 착륙도중 조종실수로 기체꼬리부분을 땅에 부딛쳐 기체꼬리부분에 있던 통신원 염보생은 죽고 말았다. 대만쪽에서는 세 사람을 반공의사로 추켜세웠으며, 이현빈은 280만 대만달러의 장려금을 받고 대만공군에서 상교로 제대하였다. 그는 이후 1991년 12월 모친을 그리워하다가 카나다에서 화교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가 모친을 만나다가 청도공안국에 체포되었으며 투항죄로 유기징역 15년형을 받는다. 이재왕은 상처가 나은 후 대만에 남아서 거주하였는데, 1976년 미국국적을 취득하고 1998년 12월 역시 미국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을 만나다가 체포되고 만다.
1977년 7월 7일, 해방군 공군 제2정찰기단 1대대 2중대장 범원염은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복건 진강에서 출발하여 직접 타이난 공항까지 날아간다. 그는 황금 4,000냥을 받았으며, 대만공군에 들어가 상교까지 오른다.
1982년 10월 16일, 해방군 공군 제1정찰기단 1대대 2중대 조종사 오영근은 역시 미그-19기를 몰고 산동 문등공항에서 출발한 후, 공중에서 엔진이 멈췄다고 허위보고를 하고, 지휘탑이 특별처리절차에 바쁜 틈을 타서 초저공의 전속력으로 비행하여 한국 서울의 K16공항으로 간다. 나중에 10월 31일에 대만에 도착하고, 오영근은 황금 5,000냥을 받고 대만공군에 들어가 소교의 계급가지 오른다.
1983년 8월 7일, 해방군 공군에서 해군으로 파견나가 신형 공대공미사일실험을 하던 부단장급의 조종사 손천근은 시험비행을 하는 것을 빌미로 미그-21전투기를 몰고 요녕 대련공항을 출발하여 서울 K16공항으로 갔다. 이번 사건은 중국의 최신형, 최고위직의 기록을 세운다. 중국은 한국에 비행기와 조종사의 반환을 요구하였는데, 한국정부는 비행기는 중국에 반환하고, 손천근은 8월 24일 대만으로 보낸다. 그는 대만에서 7,000냥의 황금을 받고 대만공군에 들어가 상교의 계급을 받는다.
1983년 11월 14일, 해방군 해군항공병 제6사단 제18단 2대대 중대장인 왕학성은 미그-17전투기를 몰고 절강 대산공항을 출발하여 대만공군 F-5의 인도하에 대만도원공항에 착륙한다. 황금 3,000냥을 받고, 대만공군에 입대하여 소교의 계급을 받는다.
1985년 8월 25일, 해방군 공군 조종사 소천윤은 홍-5폭격기를 산동교현에서 몰고 한국으로 간다. 한국 이리시에 착륙시킬 때 사고가 나서 손무춘은 사망하고, 소천윤은 부상당하며, 지상에 있던 한국농민 1명을 사망시킨다. 9월 20일 소천윤은 대만으로 갔고, 황금 3,000냥을 받는다. 그러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유서의는 중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으로 돌려보내준다.
1986년 2월 21일, 해방군 공군 제4정찰기단 3대대 중대장 진보충은 미그-19전투기를 몰고, 심양공항을 출발하여, 초저공비행으로 편대를 떠난 후 한국 수원공항에 내린다. 진은 4월 30일 대만으로 가며 황금 5,000냥을 받는다.
1986년 10월 24일, 해방군 공군 조종사 정래전은 미그-19기 전투기를 몰고 한국으로 간다. 후에 대만으로 보내져 황금 5,000냥을 받는다.
1987년 11월 19일, 해방군 공군 제49사 중대장 유지원이 미그-19전투기를 몰고 복건 용계에서 출발하여, 초저공비행으로 대만의 청천강공항에 도착한다. 황금 5,000냥을 받았다.
1988년 9월 11일, 해방군은 중국/대만관계완화에 발맞추어 1962년에 반포한 비행기를 몰고 귀순하는 경우의 포상방법에 관한 규정을 폐지한다.
1989년 9월 6일, 해방군 장문호(蔣文浩)는미그19전투기를 몰고 복건 용계에서 출발하여 금문에 도착한다.
1989년 9월 15일, 대만도 중국이 포상을 폐지하는데 발맞추어, 비행기, 군함을 몰고 귀순하는 경우의 장려금을 대폭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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