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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민감한 대만지도문제

by 중은우시 2006. 9. 29.

작자: 葉詠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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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민중의 '천수이벤타도' 앞에서, 천수이벤은 주의를 돌리기 위하여 최근에 대만의 '영토'를 수정하겠다고 하였다. 즉, 대만지도를 고치겠다고 하였다. 사실상 지도문제는 대만에 있어서 계속 민감하면서도 골치아픈 문제였다.

 

본인은 대만에 갈 때, 상해에서 "대만성지도"를 한장 사가지고 갔다. 대만에 가서, 당연히 "타이페이교통지도"를 샀다. 이외에 본인은 대만에서 출판된 <<중국전도>>를 한장 일부러 샀다. 나의 큰아들과 큰며느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중국지도라면 상해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하필 대만까지 와서 <<중국전도>>를 사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지도는 아주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이다. 내가 상해에서 산 "대만성지도"는 지도출판사에서 2002년에 출판한 것이다. 지도상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성급행정단위계열도. 대만성지도"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륙의 출판사에서 출판된 대만성지도에서는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개 성급행정단위로 보고 출판한 것이다.

 

본인이 타이페이에서 산 "중국전도"는 대만산여도출판사에서 2002년에 출판한 것이었다. 지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말도 없고, 중화민국이라는 말도 없다. 그저 왼쪽위에 사각형글씨체로 붉게 "중국전도"라고 썼을 뿐이다. 이 "중국전도"에는 대륙도 포함되어 있고, 대만도 포함되어 있다. 이 지도는 바로 "하나의 중국"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만일 내가 산 대륙에서의 "대만성지도"와 대만에서의 "중국전도"를 합쳐서 보면, 바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은 대만에서 출판된 서로 다른 시기의 중국지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지도의 출판에 대하여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장개석시대에 지도를 출판하는 것은 "경영은 자주적으로, 내용은 심사를 받아서"라는 정책을 사용했다. 내용은 어떻게 심사하는가? 1950년에 국민당정부는 <<수륙지도심사조례>>라는 것을 만들었고, 지도를 심사하는 근거로 삼았다.

 

수륙지도심사위원회는 "참모본부", "내정부", "외교부", "해군부", "교육부", "몽고/서장위원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것이다.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중국의 국경 및 수도는 여전히 우리 정부가 대만지구로 옮겨오기 이전의 원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1949년이전의 원상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우리가 보는 장개석시대의 <<중화민국전도>>에서는 수도는 여전히 남경이고, 북경은 북평(北平)으로 인쇄되어 있다. 전국은 35개성, 2개특별행정구로 되어 있다. 그 안에는 일찌감치 없어진 열하성(熱河省), 찰합이성(察哈爾省), 수원성(綏遠省), 서강성(西康省)이 들어 있다. 그 중에 열하성의 성도는 승덕(承德)으로 표시하고 있고, 찰합이성의 성도는 장원(張垣)으로 표시하고 있고, 수원성의 성도는 귀수(歸綏)로 표시하며, 서강성의 성도는 아안(雅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런 "늙어서 이빨빠진" 지도가 대만 초등, 중학교의 지리교과서에서 여전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지리교과서에서 중화민국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중화민국은 아시아주의 중부 및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는 태평양을, 서로는 파미르고원을, 남으로는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및 중남반도를 북으로는 시베리아를 접하고 있어, 바다와 육지를 겸비한 국가이다. 전국토지면적은 합계 11,418,213.03평방킬로미터이며, 아시아면적의 1/4이상을 점하고 있고, 전세계육지면적의 약 1/12를 점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제1대국이고, 세계의 제2대국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국토지면적은 현재의 960만평방킬로미터보다 큰데, 주요 이유는 여기의 중화민국전도에는 몽고(대만당국은 외몽고라고 부르는데 오늘날의 몽골공화국이다)도 국토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몽골공화국은 약 150만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지니고 있다.

 

몽고는 원래 중국영토이다. 1921년 5월, 소련홍군이 몽고에 진입했다. 7월 10일, 몽골인민당은 "몽골인민혁명정부"의 성립을 선포하였따. 당시 북양군벌의 조곤과 오패부는 승인하지 않았고, 나중의 장개석정부도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1949년이전의 중화민국의 판도에는 몽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원상"은 계속 유지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후, 몽골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판도에서는 일찌감치 몽고가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1949년의 원상을 유지하는 지도가 계속 사용되었으므로, 대만의 초,중등학교에서는 계속 이런 지도로 학생들을 교육시켰다.

 

대만에서 지도출판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시 대만당국은 지도출판에 대하여 관리감독이 엄격했다. '수륙지도심사조례'는 지도출판사업의 발전을 막는 주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권한을 행사하던 내정부 지정사 방역과는 바로 지도출판업의 발전을 막는 도살자였다. 민간의 지도제작사업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1987년에 이르러 대만에서 대륙여행금지가 풀리면서, 많은 대만 사람들이 대륙으로 왔다. 그리고서야 수도가 이미 남경이 아니고 북경이라는 것, 대륙은 일찌감치 열하성, 찰합이성, 수원성, 서강성이 없고, 몽고도 일찌감치 독립한 국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렇지만,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중화민국전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인쇄되었으니, 정치적인 우스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치적인 원인으로 이런 황당한 '중화민국전도'가 10년간이나 계속 더 인쇄되어 왔다.

 

1997년 7월이 되어서, 대만의 국민당정부는 "중화민국의 행정구역"에 대하여 결정하였고, 실지통치지역에 따라 획정하기로 하였다. 설명은 이렇다.

 

"민국38년, 중공이 대륙을 점거했다. 중앙정부는 대만으로 옮겨왔고, 대만, 팽호, 금문, 마조, 동사군도, 남사군도 및 녹도, 난서등지를 관할한다. 유효하게 관할하는 토지면적은 36,179평방킬로미터(약13,969평방마일)이며, 네덜란드와 비슷하다. 현재 대만의 행정구역은 중앙정부와 대만성과 복건성에 예속된 금문, 마조를 제외하고, 2개의 행정원소속의 직할시가 있다. 즉, 타이페이시와 카오슝시이다. 지위는 대만성과 평등하다. 대만성의 아래에, 5개의 성할시와 16개 현이 있다. 성할의 시현아래에는 26개의 현할시가 있고, 223개의 향, 60개의 진, 27개의 구가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의 판도"에 대하여는 여전히 1949년전의 "원상"으로 적고 있다.

 

대만정부가 정한 지도는 국민당의 정치적인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의 중국을 견지한다.

둘째, 이 중국은 "중화민국"이다.

셋째, 이 중화민국은 1949년부터 단지 "대만, 팽호, 금문, 마조, 동사군도, 남사군도, 및 녹도, 난서등지를 관할한다"

넷째, 중국대륙은 중화민국에 속하지만, 1949년이래로 중공이 대륙을 점거했다.

 

2000년 2월 11일, 대만 "교육부"가 "태(89)연자제89014961호"문건을 발표하여, 대만 각학교에 통지했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지도는 "수륙지도심사조례"의 규정에 의거해야 한다. 내정부의 심사를 통과한 후에 비로소 발행할 수 있다. 각 학교에서는 내정부의 심사허가를 받아 "지도발행허가증'을 발급받지 않은 지도를 사용하지 말라"

 

얼마되지 않아, 민진당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였고, 대만의 정권을 장악했다. 지도문제는 민진당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어려운 문제로 등장하였다. 국민당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자니, 1949년의 '원상'을 회복한 지도는 50년후의 현실과 차이가 너무 컸다. 더구나 해협양안에 교류가 이미 밀접해지고 있는데, 이렇게 늙어서 이빨빠진 지도는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꾼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중화민국'의 판도를 단지 대만으로 줄인다는 것은 '중화민국이 바로 대만'이라는 정치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인데, 그렇다면 중국대륙은 뭐라고 표기할 것인가?

 

민진당의 집권후에, "내정부"의 관리는 지도가 정치문제라는 점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행정기관이 처리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약간의 '탄력적인 공간'을 둘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이 채택한 '탄력적인 공간'은 이렇다.

 

첫째, '내정부'가 편찬하는 '우리나라대륙지구지도편찬인쇄주의사항'을 '대륙지구지도편찬인쇄주의사항'으로 변경한다. 원문의 "우리나라대륙지구"를 "대륙지구"로 바꾼다. 그리고, "대륙지구의 국경과 수도는 대륙의 현상대로 표시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륙지구와 외몽고간의 경계선도 국경선의 부호로 표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몽고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말이다.

 

둘째, 다시는 정부공식지도는 출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정부공식지도"는 만들기가 너무 어려우므로 아예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셋째, 1950년에 국민당정부가 반포한 "수륙지도심사조례"는 폐지한다. 지도출판에 대하여는 "민간출판, 심사없음"을 원칙으로 한다. 즉, 대만의 각 출판사들이 출판하는 지도는 단지 민간출판물이고,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내정부"는 정치적인 책임을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50여년간 계속 사용되던, "옛지도"가 결국은 폐지되었다. 본인은 대만에서 <<중국전도>>를 샀는데, 비록 "민간"출판물이기는 하지만, 현실에 더욱 부합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구분에 따라 23개성, 5개 자치구 및 홍콩, 마카오 두개의 특별행정구가 표시되어 있다. 내가 주의한 것은 수도를 북경으로 표기하였다는 것이고, 타이페이는 그저 직할시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민간'출판물은 지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쓰지도 않고' 중화민국'으로 쓰지도 않았고, 그저 '중국'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대만 '내정부'의 세가지 '탄력적인 방법'은 대만의 지도출판에서의 곤란함을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만당국의 곤경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만의 대변인은 여전히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등뒤에 걸려있는 '중화민국지도'는 해당화이파리모양으로 된 것이고, 한눈으로 보아도 대륙, 홍콩, 마카오, 대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의 총통인 천수이벤은 "대만은 주권독립국가이고, 그 이름은 중화민국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수이벤의 사무실벽에 걸려 있는 '중화민국지도'도 역시 해당화이파리모양이며, 대륙, 홍콩, 마카오, 대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