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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동해천(董海川) : 팔괘장의 창시자

by 중은우시 2006. 1. 22.

동하이촨(董海川, 1797-1882)은 청나라 가경제때 태어났고, 하북성 문안현 미가오 사람이다. 어려서 각 파의 권법을 배우기를 좋아했고, 스승을 찾아 강남으로 갔다. 도화산의 산위에서 어린 스님이 계속하여 나무에 주먹을 내지르며, 나무를 빙빙 돌며 치는 것을 보고, 동해천은 앞으로 나가 어린 스님과 한판 대련을 붙는데, 크게 패한다. 그는 노스님을 만나도록 청을 해서, 마음을 비우고 배움을 청하며, 여러해동안의 힘들게 기예를 익힌다. 죽음에 임박해서 사부는 유언을 내리기를 너의 기예는 이미 완성되었으나, 어린 나이어서 기운이 성해서 시비에 얽힐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하고, 동해천은 승락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우연히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 크게 사람을 상하게 만든다. 관청에서 체포하려고 하자, 동해천은 도망쳐서 거세를 하고 환관이 되어 북경의 숙왕부에 숨는다. 숙왕부에서는 사채태감(요리담당 환관)을 지낸다.

 

하루는 태극권의 명인인 양로선(楊露蟬)이 명을 받아 숙왕부에 와서 왕부내의 권법스승들과 비무를 벌이는데, 연전연승을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권법스승을 쓰러뜨렸을 때, 마침 음식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동해천이 그 권법스승을 구해주고, 양로선과 겨루게 된다. 두 사람이 대치하면서 서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태극권과 팔괘장은 각각 문호를 열고 제자들을 받아서, 융성해갔으며, 후세에 전해졌다. 동해천은 오래 살았으며, 죽음에 임박해서도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도 두 손으로는 팔괘장의 수식을 취했다고 한다. 팔괘장은 중국내외에 전수되어 지금까지도 성행하고 있다. 동해천의 제자들은 계속 이어졌고, 동해천의 묘는 북경 서교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