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학/홍루몽

홍루몽의 대관원(大觀園)은 어디 있는가?

by 중은우시 2006. 1. 9.

홍루몽의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대관원의 모델이 된 건물의 소재지가 어디인지에 대하여도 학설이 많이 나뉘고 있다. 크게 나누면 북경이라는 설과 남경(또는 그 주변)이라는 설이 있고, 북경이라는 설에는 공왕부(恭王府)라는 설이 대표적이고 남경이라는 설에는 수원(隨園)이라는 설이 대표적이다.

 

어차피 소설속의 건물에 대하여 소재지를 추정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는 있지만, 남쪽이라는 설의 주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소설속의 자연풍광은 절대 북경이 아니라 남경이라는 것이다

 

(1) 임대옥이 사는 대관원내의 집인 소상관(瀟湘館)에는 대나무를 심었는데, 대나무는 북방에서는 자라기 힘들고 남방에 자라는 것이다. 즉, 북경에 티비연속극을 찍기 위해 대관원을 지었지만, 주위에 심은 대나무는 얼마가지 못해서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2) 홍루몽에는 겨울에 눈이 일척두께로 내린 상태에서 가보옥이 묘옥에게 백설홍매를 얻으러 용취암으로 가는 얘기가 실려 있는데, 정월에 매화가 눈속에 가득피는 것은 남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북경에서는 근본적으로 정월에 매화가 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가원춘의 성친장면에서 원소절에 대관원에서 배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북경에서는 원소절에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고, 남경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경은 원소절에도 곤명호, 북해등이 모두 얼음이 얼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제2회에 가우촌과 냉자흥의 대화 장면에는 "작년에 내가 금릉지역에 갔는데, 유적을 유람하고 싶어서 석두성으로 들어갔다가, 오래된 저택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거리 동쪽이 영국부(寧國府)이고, 거리 서쪽이 영국부(榮國府)였다"는 말이 나온다.

 

셋째, 홍루몽의 책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홍루몽에는 책이름으로 홍루몽, 석두기, 정한록, 풍월보감 외에 <<금릉십이채>>라는 것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남경의 열두 여자들 얘기라는 것이므로 대관원이 금릉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원목(袁牧)은 자가 자재(子才)인데, 강녕현령(강녕은 남경)을 지냈다. 그리고, 4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남경에 집을 샀는데, 원래 조설근의 집이었다는 것이다. 조씨의 집은 몰수된 후 수혁덕(隨赫德)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 집은 수원(隨園)으로 불리웠는데, 이후 원목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원목은 <<수원시화>>에서 "대관원이라는 것은 바로 나의 수원을 말한다"고 적어두었다.

 

원래, 조설근의 집안이 남경에 거주했던 것은 분명하다. 조설근의 할아버지는 조인(曹寅)인데, 조인의 어머니가 바로 강희황제의 유모(乳母)였다. 이런 인연으로 강희황제는 조인과 그의 후손들에게 평생 잘 대해주었고, 유모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희황제는 조인에게 강녕직조라는 상당히 돈이 많이 생기는 직위를 주고, 그 직위를 아들에게 세습까지 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강희황제가 6번의 남순중 4번이나 조인의 집에서 유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