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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주은래)

주은래(周恩來)의 이름, 호칭, 가명, 칭호등.

by 중은우시 2005. 12. 21.

1. 대란(大鸞)

 

    유명(乳名). 1898년 3월 5일 강소성 회안부 산양현(현재의 회안시)의 성내 부마항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대란이라고 하였는데, 생모인 만씨(萬氏)의 태몽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한 회안의 방언중에는 란(鸞)과 람(攬)이 발음이 비슷한데, 쉽게 무럭무럭 잘 크라는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2. 란(鸞)

 

    대란을 간략하게 부르는 것. 1942년 7월 6일, 9일, 10일, 12일 주은래는 중경에서 병으로 입원해있던 기간동안 등영초(鄧潁超, 주은래의 부인)에게 4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 모두 란(鸞)이라고 서명되어 있다.

 

3. 은래(恩來)

 

    학명(學名). 1903년에 가내학교에서 글을 읽기 시작할 때, 학명을 은래로 지었다. 부친인 주이능(周貽能)이 지어준 것이다. 문장을 발표하거나 편지를 쓸 때 자주 썼다.

 

4. 상우(翔宇)

 

    자(字). 5살때 글을 읽시 시작했을 때, 스승인 추(鄒)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1927년 가을에 편찬한 <<남계동학록>>에 1917년 6월의 제10차 졸업생 명단이 기재되어 있는데, 주은래의 이름 아래에 "상우"라고 주석을 달았다. 청년시절에 유럽유학시기에 자주 이 이름으로 천진의 <<익세보>>에  <<여우통신>>을 발표하였다. 1959년 3월 18일 등영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상우"라고 서명하였다.

 

5. 비비(飛飛)

 

    필명(筆名). 청소년기에 글을 쓸 때 이것을 사용했다. 1914년 천진 남개학교 경업락군회의 잡지인 <<경업>>창간호에 발표한 소설 <<건국영웅>>과 시작 <<춘일우성>>등에 사용했다.

 

6. 비(飛)

 

    비비를 줄여쓴 것. 1916년 9월 4일 출판한 천진남개대학의 학교간행물 <<교풍>> 제36기에 "비"라는 이름으로 <<특별계사>>와 <<교문>>을 발표하였다.

 

7. 양우자(羊羽子)

 

    가명. 1917년 8월 30일 학교친구 곽사녕에세 써준 글에 "양우자"라고 쓴 바 있고, 국공2차합작시에 주은래가 비서 손사의에게 보낸 서신에서소 "양우자"라고 쓴 바 있다. "양우"를 합치면 "상(翔)"이 되므로 상우라는 글자를 나눠서 사용한 것이다.

 

8. 오호(伍豪)

 

    가명 겸 필명. 1919년 12월 21일 각오사(覺悟社) 전체모임에 참석했고, 전체 구성원들은 추첨의 방식으로 숫자를 뽑아 가명을 정하였고 이름을 대신하여 쓰기로 하였는데, 주은래는 오호(五號)를 뽑았다. 그래서 발음이 같은 "오호"를 가명 겸 필명으로 사용했다. 1922년 9월 1일 <<소년>>지에 발표한 <<공산주의와 중국>>, 1924년 11월 19일 출판한 <<향도>> 제92기에 발표한 <<최근2월광주정치상황의개관>>등에 "오호"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9. 오(五)

 

    필명. 1920년 1월 20일 출판한 <<각오>> 창간호에서 "오"라는 서명으로 <<우중람산-일본경도>>, <<우후람산>>과 <<일본경도원산공원을 유람하며>>라는 시를 발표하였다.

 

10. 오(伍)

 

    필명. <<생별사리>>라는 시는 1922년3월에 지었고, 1923년 4월 15일에 출판한 천진의 <<신민의보>>의 <<각우부간>> 제2기에 실렸다.

 

11. John Knight

 

    영문명. 주은래가 1921년 2월 8일 남개대학 동사장인 엄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여권상의 이름이 John Knight라고 말한 바 있다.

 

12. 주상(周翔)

 

    필명. 1922년 2월 23, 24일 천진의 <<익세보>>에 <<런던통신>>을 발표하면서 이 이름을 사용한다.

 

13. 상(翔)

  

    필명. 1924년 2월 1일 출판한 <<적광>> 제1기에서 "상"이라는 필명으로 <<혁명을 배양하는 각단체연합회>>라는 글을 발표한다.

 

14. 관생(冠生)

 

    가명. 대혁명실패후, 당내에서 사용한 이름이다. 1930년 8월 30일 중공중앙기관지 <<홍기일보>>에 팽배, 양은을 추도하는 글을 발표할 때 쓴 바 있다.

 

15. 관(冠)

   

    관생의 약칭.

 

16. 신광(晨光)

 

    가명. 1930년 3월 초. 중공중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에 보내어 국제공산당에 보고를 하도록 하는데, 이 때 독일에 들어 독일공산당의 <<홍기보>>에 사론을 쓰면서 신광이라는 이름을 쓴다.

 

17. 스트레리조프

 

    가명. 30년대. 국제공산당에서 활동할 때 쓴 이름이다. 이 이름으로 국제공산당 간행물에 글을 썼다.

 

18. 소산(少山)

 

    가명. 대혁명실패후 당내에서 사용한 이름이다. 1930년 출판한 <<당의 생활>> 제6기에 발표한 글 등에 사용하였다.

 

19. 호(豪)

 

    오호의 약칭. 곽말약에게 편지쓸 때 "호"로 서명한 바 있다.

 

20. 이지범(李知凡)

 

     가명. 등영초는 양일(楊逸)을 가명으로 썼고, 사람들이 이지범부인으로 불렀다. 청화대학 학생이었던 호행분이 쓴 글에 <<이지범부인>>이라는 글이 있고, <<신화일보>>에 실린 적이 있다.

 

21. 호필성(胡必成)

 

     가명. 1947년 4월 11일. 섬북에 있던 중공중앙의 업무인원들은 임필시(任弼時)를 사령(司令)으로, 육정일(陸定一)을 정치위원으로 하고 아래에 약간의 부대를 두었다. 기밀을 위하여 부대와 사람들은 암호를 사용하였는데, 모택동은 이덕승(李德勝), 주은래는 호필성(胡必成), 임필시는 사림(史林), 육정일은 정위(鄭位)를 사용하였다.

 

22. 철인(鐵人)

 

     당내의 존칭.

 

23. 염계선생(濂溪先生)

 

     주은래의 조상인 주돈이의 호가 염계이다. 국민당 원로인 우우임은 주은래를 염계선생으로 칭했다.

 

24. 호공(胡公)

 

     별명. 국민당 통치하의 상해에서 비밀공작을 하면서 상인으로 변장하고 나중에는 수염을 길렀다. 그래서 당내 사람들이 호공이라고 불렀다.

 

25. 불공(佛公)

 

     호와 불이 사천성 중경 사람들에게는 발음이 같아 불공이라고도 불렀다.

 

26. 주공(周公)

 

     다른 사람이 부르는 명칭. 특히 민주인사들이 주은래를 부를 때 많이 사용한다.

 

27. 삼공(三公)

 

     팽덕회가 59년 여산회의때 말하면서 모택동, 유소기, 주은래는 일공, 이공, 삼공으로 부른 바 있다.

 

이외에, 새락천(賽樂天), 주(周), 은(恩), 래(來), 상(翔), 비비(非非), 대미(大美), 유사(維思), 조래(趙來), 서유(西遊), 왕양(汪洋), 임경한(林庚漢)등의 이름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