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합자시기
1992년은 다국적기업의 중국진입의 하나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의 중국은 개혁개방의 강화했고, 시장관리제도를 완화시켰으며, 계획경제의 색채를 약화시켰다. 중국이 또다른 격정적인 발전의 봄을 맞이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1980년대의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중국의 경제실력은 이미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고, 고도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율, 시장규모와 소비능력으로 인하여 중국의 시장잠재력이 제고되어 외국자본의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다. 선진입자의 성공은 나중에 오는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 이때는 이미 나중에 중국시장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는 다국적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펩시콜라 및 P&G등이 그들이다. 국제적인 발전조류에서, IT기술혁명의 급속한 발전은 생산경영에서 전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다국적기업의 확장야심은 더욱 커졌다. 동시에 중국정부는 일련의 외상직접투자의 제한을 풀어버리는 신정책을 내놓았고, 투자자유화와 무역자유화는 중국내에서도 한층 더 개방적인 시장을 갖게 하였다. 이익이 없으면 가지않는 자본의 기능이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이 새로운 외국자본투자의 붐을 맞이한 것이다.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외자사의 통계에 의하면 1993년의 FDI(Foreign Direct Investment)금액은 급격히 증가하여, 계약외자가 1,114억달러에 달하고, 실제이용한 외자가 270억달러에 달하여, 전년도에 비하여 배가 증가하였다.
1992년 이전에는, 중국이 외자를 이용하는 주요부분은 계속하여 대외차관이었고, 외자이용총액의 60-70%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1992년부터 1996년의 기간에는 외국인직접투자가 외자이용총액에서 차지하는 평균비율은 74%였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1995년 4월 4일 대외경제무역합작부가 반포한 "외상투자로 투자성회사를 설립하는데 관한 임시규정"을 반포하여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성Holding회사(Umbrella Company)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7년부터, 외상독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신속하게 증가하여 그 해의 34.6%에서, 2000년에는 54.3%로 늘어났다. 외국인투자자는 중국에서 계속하여 투자를 증가시키고, 독자기업의 수량은 이미 합자기업을 초과하였다. 1992년에서 1999년까지, 미화로 계산하면 50%의 투자는 합영기업이었으나, 2000년이 되자, 이 숫자는 이미 30%로 하락하였다. 이것은 90년대의 외상투자구조는 이미 명시적으로 변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자합작에서 독자로. 비록 새로운 합자의 물결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외국투자자는 지배적인 지분을 전제로 하였다. 당초에 중국측이 지배하던 기업은 이후의 증자,지분추가발행시 다국적기업이 중국기업의 추가자금부족을 틈타 중국측의 지분을 뺏어감으로써, 업계를 주도하는 합자기업에 대한 지배를 완성하였다. 이로써 업계내의 독점적인 지위를 확립하고 자본의 발언권을 쟁취하였다.
외자가 점진적으로 합자에서 독자로 방식을 바꾼 것에는 속깊은 이유가 있다. 이 시기에, 외국인투자자의 중국투자는 이미 시스템화, 장기화하고 동시에 시장의 방향도 이미 어느 정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원래 중국에 투자한 제조업은 그 제품을 대부분 수출무역으로 돌렸었는데, 지금은 관심을 중국내에서 전방산업쪽을 겨냥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시장을 시스템적으로 점령하는데 용이하기 위하여 독자의 형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갈수록 늘어났다. 이러한 회사의 설립은 다국적기업으로 하여금 중국내기업의 통일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하였고, 최종적으로 투자시스템화를 실현하였다. 그가 투자한 산업의 확산력은 명백하게 증가하였고, 시장포화와 경쟁격화의 위험을 분산시키는데 편리하였다. 일부 이미 중국내에서 자리잡은 다국적기업들은 "대규모로 투자하여 돈을 쓰는" 투자방식을 "세심하게 계산하여 돈을 버는" 방향으로 변경하기 시작하였다. 기업의 효율은 이 단계에서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목표가 되었고, 중국에 설립한 연구개발센터 또는 지역본부 심지어 글로벌본부를 중국으로 옮긴 후에, 중국내기업이 담당하는 기능과 효율에 대하여 더욱 엄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독자의 방식은 그 발전에 비교적 유리하였다. 이외에, 일정 정도에서는 독자형식이 다국적기업의 이익극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가 독자적인 다국간거래의 내부화 및 각국의 관리감독과 통제를 회피하는 능력은 현지국가의 각종 세금정책을 회피하는데 쓰였다.
이 시기에, 다국적기업은 중국내기업의 지분구조에서 지배권을 강조했고, 중요한 자원의 투입을 장악함으로써 지분이외의 방법으로 회사를 지배하였다. 중국의 법률규정에 의하면 자본의 출자는 5가지이다: 현금, 현물, 공업재산권, 전유기술과 토지사용권. 그러나 5가지의 출자방식중, 결과로 나타난 바를 보면 중국측은 모든 단계에서 박약하고, 다국적기업과 경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외국투자자가 자금, 핵심기술, 중요한 관리기능과 판매망등의 요소를 투입하여, 합자기업의 경영의사결정권이나 일상경영에서 외국측투자자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분이외의 방법으로 지배하는 것은 외국측이 지분지배권을 가진 상태에서는 지배지위를 공고하게 하여주고, 외국측이 소수이거나 대등한 지분을 가진 때에는 사실상의 지배권을 가지도록 해주었다.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회사의 예를 들면,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공사는 일본 후지쯔텐주식회사와 천진시진미전성기재공사와 도요다통상주식회사의 3자간 공동출자로 설립되었고, 3자간의 지분비율은 각각 60%, 35%, 5%였다. 일본후지쯔텐주식회사는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공사의 지배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첫째는 자금지배이다.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공사는 성장기에 있어, 자금의 수요가 컸다. 그러나 자금의 소스는 주로 일본측 모회사의 지원이었다. 일본 모회사는 합자회사를 위하여 자금을 제공하여, 합자회사가 성장하도록 하면서 합자회사가 일본 모회사의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였다. 둘째는 판매지배이다. 성장기의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회사는 아직 자신의 판매채널을 확보하지 못하여, 그의 제품은 거의 전부 모회사에 보내고, 모회사가 책임지고 팔았다. 좋은 판매채널은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공사의 생산에 보장역할을 하였으나 동시에 모회사의 족쇄를 벗어날 수 없기도 하였다. 셋째는 연구개발지배이다. 실제는 기술지배이다. 천진후지쯔텐전자유한공사는 자기의 독립한 연구개발부서가 없고, 주요기술은 모두 모회사에서 가져왔다. 단지, 기초적인 중국화의 개조작업만 하였다. 일본자본은 바로 합자기업에 대한 여러 방면의 요소를 통하여 회사운영을 통제하였던 것이다.
이시기는 특히 90년대후반부터, 합자기업이든 독자기업이든, 외국자본은 모두 비교적 많은 경우에 경영관리의 발언권을 장악하였고, 학자들이 부르기로는 "후합자시대(後合資時代, post-jv era)"이다.
이 시기에 외자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기업M&A의 현상도 나타났다. 그러나 정책과 관련규정의 결핍으로 인하여, 외자는 아직 이런 투자방식을 감히 채택하지 못하거나, 채택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94년 코닥이 산터우 공위안(公元), 샤먼 푸다(福達), 우시 아얼메이(阿爾梅)의 3개의 필름회사를 인수하기 위하여 70여차레의 협상을 진행하고, 4년의 시간이 걸렸으나, 최후에는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여러 지방와 부서를 조정한 "상층노선"에 의하여 최후로 1998년 3월, 4월이 되어서야 인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외자M&A가 어려웠고, 일반적인 소규모의 다국적기업으로서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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