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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철칙

역사의 철칙 - 오세이참(五世而斬)의 철칙

by 중은우시 2005. 8. 30.

1856년에서 1860년 사이에 태평천국의 군대는 두 차례에 걸쳐 남경(천경)을 포위한 청나라의 강남, 강북부대를 쳐부수고 대승을 거두었다. 강남, 강북부대는 청나라의 정예부대인 팔기병과 녹영병이었다. 녹영병은 "활을 쏘면 화살이 나가지 않고, 말을 타려고 하면 말에서 떨어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팔기병은 더욱 부패하고 무능하였다. 이 두 부대가 궤멸한 후 청나라의 주력부대는 상군(湘軍, 증국번의 호남출신 부대)이 된다.

 

만주팔기병들이 산해관을 넘어올 때는 그렇게 기세가 대단하였는데, 이렇게 용맹하던 호랑이가 왜 이렇게 고양이꼴로 바뀌어 버렸는가? 부자집이 여러 대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역사의 원칙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 위대한 인물의 덕이 있어도, 오대가 지나면 멸문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어떤 좋은 자리를 얻은 후에 가업을 일으켜서 천대만대 전해내려가기를 원하지만, 오대를 못내려가고 망하고 마는 것이 잔혹한 현실이다.

 

일반 백성들의 속담은 더욱 신랄하다. "부불과삼대(富不過三代, 부자집이 삼대를 넘어가지 못한다)" 오대도 좋고 삼대도 좋다. 가난과 부유는 변함없이 바뀐다. 아마도 이것이 일종의 자연의 조화이고, 공평함일지도 모른다. 왜 부자는 항상 부자가 아닌가? 부자집에서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태어나는 것은 왜 인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도의 원인이 아닌가 한다.

 

첫째는 교만이다. 팔기병이 산해관을 넘은 후 만주족들은 통치계급이 되었고, 특권을 누렸다. 팔기자제들은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공업에도 종사하지 않으면서 한족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졌다. 그 자제들은 이런 특권을 가지고 사회에서 약자를 능멸하고 권세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설번과 같이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하고, 계집아이를 빼앗아오기도 하는데, 별다른 처벌은 없는 것이다.

 

둘째는 사치이다. 팔기병은 전쟁을 통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서방에서는 재산을 모으면 그것을 자본으로 바꾸어 계속 증식해나갔지만, 중국의 부자들은 이런 진취적인 사고는 하지 않았고, 특히 갑자기 부자가 된 경우에는 더욱 졸부근성이 나타나서 과시하는데 썼다. "석숭과 왕개가 부를 다투는 것"과 같은 일이 유행병처럼 번진 것이다. 이런 집안분위기에서 태어난 자제들은 더욱 사치하게 되었다.

 

셋째는 음란이다. 옛사람들은 "부귀하게 되려면 음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음란이라는 것은 '미혹과 방종'을 의미한다. 부귀하게 되면 쉽사리 미혹에 빠지고, 방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지면 음란한 욕심이 생기게 된다. 요즘 하는 말로 하면, 남자가 돈이 생기면 나쁜 것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더 많은 것에 대해 욕심을 갖게 되며, 외부세계는 각종 유혹이 충만하다. 내부의 욕망과 외부의 유혹이 만나면 쉽게 합쳐질 수 있다. 어른들마저도 이러한 유혹을 견디기 힘든데, 어린 아이가 이런 유혹을 견딘다는 것은 쉽지 않다.

 

넷째는 안일이다. 요즘 말에 "수학 이학 화학을 잘 하는 것보다, 좋은 부친을 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좋은 부친을 두면 좋은 대학을 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좋은 직장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고,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좋은 아빠의 부작용은 아이들로 하여금 힘든 것을 견디고 분투하려는 정신을 잃게 한다. 이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일단 좋은 부친을 잃고 난다면 아이는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중국경제도 신속히 발전하면서 많은 부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부자의 자식들이 어떻게 부친의 사업을 이을 것인지도 하나의 문제로 등장한다. 부자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하여 학자들이 내놓은 약방문은 네 글자 이다 "교육강화".

 

일부의 부자의 자식들은 교만, 사치, 음란, 안일에 빠지는 것은 교육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깊은 역사적이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 그러한 전통하에서는 부자의 자식들이 교만, 사치, 음란, 안일에 빠지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사회문제인 것이다.

 

어떤 산서 사람이 산서상인이 200년간 흥성했던 것을 가지고 "부불과삼대"의 철칙을 넘어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가업을 200년간이나 계속했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그러나 이백년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구시왕사당전연(舊時王謝堂前燕) : 옛날에 왕씨, 사씨와 같은 귀족집에 자리를 틀던 제비가

비입심상백성가(飛入尋常百姓家) : 지금은 보통 백성 집으로 찾아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