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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역사상 10대 거부(巨富)

by 중은우시 2005. 8. 14.

누군가가 재미로 중국역사상 10대부자를 뽑았습니다. 원칙중 첫째, 제왕은 제외했습니다. 제왕은 일찌기 "보천지하 막비왕토"로 나라가 곧 자신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간은 중화민국시대까지로 하였습니다.

 

첫째, 도주공(陶朱公) : 춘추말기의 사람으로 즉,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하게 한 현자 범려(范려)이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범려를 상인중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았으며, 상조(商祖)로 숭상을 받는다. 그는 돈을 벌어서 천금을 이룬 후 다시 나눠주고서, 새로 시작하여 다시 천금을 모으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기에서는 19년내에 3번 천금을 모았고, 합쳐서 수만을 모았다고 한다.

 

둘째, 여불위(呂不韋) : 전국시기 대상인. 일생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은 진나라의 공자 영을 도와 진왕으로 즉위시키고, 장사꾼에서 정치로 뛰어드는 역사적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다. 소문에는 진시황이 그의 사생아라고 한다.

 

셋째, 등통(鄧通) : 서한 문제때의 총신. 한문제와의 특수관계를 이용하여 당시 동전주조사업을 독점했다. 동광을 개발하여 천하제일부자가 되었다. 경제가 즉위하면서 총애를 잃고 재산을 볼수당한다.

 

넷째, 양기(梁冀) : 동한의 외척으로 두 여동생이 모두 황후가 되었다. 널리 재산을 모으고 황제를 독살하여 당시 '발호장군'으로 칭했다. 한 환제때 몰수당하는데, 재산이 30억여라고 한다.

 

다섯째, 석숭(石崇) : 서진 때의 유명한 부자이다. 그의 재산은 형주자사때 연도의 객상으로부터 뺏어서 얻은 것이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진무제의 아저씨인 왕개와 부로 겨루어서 전승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당시 재산이 국가의 재산에 버금간다는 것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재산이 많다는 것이 너무 알려지는 바람에 나중에 기생 녹주로 인하여 재산을 많이 손실보고, 목숨도 잃는다.

 

여섯째, 심만삼(沈萬三) : 원말청초에 유명한 강남의 거부이다. 일찌기 주원장을 도와 남경성을 수리하는데, 개인이 1/3의 공사비를 낸다. 그의 재산은 해상무역에서 얻은 것인데, 역사상 최초의 국제무역상인이다.

 

일곱째, 유근(劉瑾) : 명나라 정덕연간의 환관이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천년간 전세계 최고부자 50인에 들어간 인물이다. 역사학자 오사가 <<혈수정률>>이라는 책이서 유근의 개인재산을 황금과 백은으로 나누어 보수적으로 계산할 결과 6,750만냥백은이었다. 이것은 장거정이 명나라를 10년간 경영한 후의 태창보다 10배나 많았다. 당시 정사품관리의 봉록이 연간 144량이었다고 한다.

 

여덟째, 화신(和紳) : 청나라때 건륭제 시절의 유명한 탐관. 건륭제때 2황제로 불리울 정도로 권세가 있었으며, 가경제가 그의 재산을 몰수한 후에 그의 재산은 건륭제시기의 18년간의 전국세금수입과 맞먹었다고 한다. 당시 '화신이 쓰러지니, 가경이 배부르다"는 말이 돌았다.

 

아홉째, 성선회(盛宣懷) : 청나라 말기 관상의 대표인물. 전국전보업무, 한양철공장, 강남제조국등의 실업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하여 거부가 되었다.

 

열째, 호설암(胡雪巖) : 청말의 홍정상인. 좌종당과의 교분을 이용해 군수물자를 독점하여 거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