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역사상 세 사람의 백치황제(白痴皇帝)

중은우시 2005. 8. 7. 04:58

중국역사상 백치황제(바보황제)는 모두 3명이 있었다.

 

첫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바보황제는 서진(西晋) 혜제(惠帝)인 사마충(司馬衷)이다. 그는 진무제 사마염의 적차자였는데, 그의 형인 적장자 사마궤가 어려서 죽자, 적장자의 지위에 올라, 동국태자가 되었다. 당시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원들은 모두 태자가 바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적장자가 황위를 계승하는 원칙을 지키고, 자신들의 황제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진무제가 태자가 바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왔다. 그러다가 진무제가 죽자, 사마충은 황제가 되었고, 바로 진혜제이다. 황제가 되자 바보라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그에 관련하여서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하나는 어느날 밖에서 청개구리 소리가 들리니, "저건 국가거냐 아니면 개인거냐"고 물어봤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할말을 잃었고, 그저 "관청논에서 우는 건 국가거고, 개인 논에서 우는 건 개인 것입니다"라고 답변해줄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은 전국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대신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밥이 없어 굶어죽는다고 보고하자, 바보황제는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먹을 밥이 없으면, 왜 고기를 안먹는 거지?". 왕공대신들도 사마충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고 황제자리를 뺏으려는 욕심을 가지고, 붕당을 만들어 황위를 노렸다. 결국 골육상잔의 "팔왕의난"이 일어나고 "오호"가 침입하여 천하가 어지럽게 되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혜제는 17년간 황제위에 있었으나 결국은 독살되고 만다. 오래지 않아 서진은 멸망하였다.

 

두번째의 바보황제는 동진의 사마덕종이었다. 그는 진의 효무제의 적장자였는데, 어릴 때부터 바보이자 벙어리였다. 춥고 더운 것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즉,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는 것이다. 효무제도 생전에 아들이 바보인 것은 날았으나 황위세습과 적장자계승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득이 그를 태자로 세웠다. 사마덕종은 397년 황제에 오르는데 바로 진안제(晋安帝)이다. 바보가 황제가 되니 제대로 정사를 돌 볼 리가 없었다. 결국 대권은 황공대신들의 손에 넘어가고 조정은 엉망이 되고 만다. 결국 이 바보황제는 권신 유유(劉裕)가 파견한 사람에게 목이 매어 죽임을 당한다. 얼마지 않아 동진도 멸망한다.

 

세번째의 바보황제는 당나라때의 순종(順宗) 이송(李誦)이었다. 그는 당나라 덕종의 적장자로 원래 매우 총명하였고, 학문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덕종의 서거 4개월전쯤에 돌연 중풍이 들어 바보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다. 덕종은 뛰어난 황제로 태자가 바보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송을 태자에서 폐출시킬 수는 없었다. 이송이 황위를 이어받아 당순종이 되는데, 재위기간은 겨우 1년이다. 이 1년간 조정은 왕숙문등이 장악하고 조신 유종원, 유우석, 한태등이 지지하여 유명한 영정혁신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번 혁신에서 배제되고 손해를 본 환관과 번진의 장수들의 반대에 부딛치고, 당순종은 태상황으로 쫓겨나게 되며, 황위는 순종의 아들인 당헌종 이순이 게승한다. 나중에 영정혁신을 도모하였던 대신들은 모두 쫓겨나거나 죽는데, 순종도 다음해에 죽고 만다. 이후 당에서는 환관과 번진의 발호가 더 심화된다.

 

백치(바보)로 황제를 하였던 세 번의 경우는 모두 정국이 엉망으로 되고 국가가 재난을 당하였다. 이는 황제의 말하나가 바로 법이었던 전제통치의 결과였고, 봉건사회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