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역사상 4대 추녀

중은우시 2005. 6. 30. 15:41

1. 막무(女+莫, 毋) :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막무의 모습은 야차와 비슷하여, 추악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4대추녀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무의 후덕함은 당시 여인들의 귀감이 될만하였다. 시인 굴원(屈原)도 막무에 대하여는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 "...막무嬌而自好". 막무의 지혜도 보통이 넘었다. 그녀의 이러한 내재적인 능력은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로 하여금 처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막무는 과연 황제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다른 여인들에게 덕을 베풀었을 뿐아니라, 황제를 도와 염제를 격파하고, 치우를 죽였다.

 

2. 종리춘(鍾離春) : 그녀는 제나라 염현사람이다. 어느정도로 추했는가? 책에서는 그녀의 이마와 두 눈은 모두 움푹 파였는데, 아래위의 비율이 전혀 안맞고, 콧구멍은 하늘을 향하여 벌려있고, 목에는 남자보다 큰 목젖이 있었고, 머리는 컸는데, 머리카락은 몇가닥 없고, 피부는 새카많다고 한다. 종리춘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녀의 뜻은 컸다. 당시 집정했던 제선왕은 정치가 부패하고, 국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성격이 조급하고, 아부하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여, 누구라도 그에 대해 듣기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죽여버렸다. 그러나 종리춘은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수도로 갔다. 제선왕은 종리춘을 보고 괴물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종리춘이 하나하나 제선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만일 지금이라도 절벽에서 말을 돌리듯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제선왕은 크게 감동하여 종리춘을 자신의 보배와 같은 거울로 생각하였다. 주변에 미녀가 그득했던 국왕은 종리춘을 왕후로 삼았다.

 

3. 맹광(孟光) :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맹광은 검고 뚱뚱했으며 용모가 아주 촌스러웠다. 힘은 대단하여 장군, 무사들이 조련할 때 쓰는 돌을 쉽게 들어올릴 정도였으며,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야만스러운 여인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매우 추하여, 집안 사람들도 시집보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하였다. 그런데, 중매징이가 맹광을 한 추남에게 소개시켜주었는데, 맹광은 "나는 양홍(梁鴻)에게만 시집갈 것이다. 다른 사람은 누굴 갖다줘도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양홍은 당시에 매우 유명인사였고, 문장도 뛰어나고 학식도 풍부한 미남자였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많은 미녀들이 그로 인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맹광이 중매쟁이에게 그 말을 하자 일시에 모는 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양홍은 맹광의 품성을 잘 알았으며 맹광을 자신의 처로 삼았다. 나중에 양홍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나라땅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을 때, 맹광은 아무런 원망의 말도 없이 같이 따라갔다. 양홍이 매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맹광은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올려서 아주 공손하게 양홍에게 바치곤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백년해로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거안제미(擧案齊眉)"는 바로 맹광에서 유래된 것이다.

 

4. 완녀(阮女). 전설에 의하면 허윤(許允)이 완녀와 결혼한 날 밤에 그녀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놀라서 도망쳤다고 한다. 완녀가 허윤을 붙잡자, 허윤은 벗어나려고 발버퉁치면서 말했다. "여자에게는 사덕(四德)이 있는데, 너는 그 중에 몇 개나 가지고 있느냐?" 완녀가 대답하기를 "난 단지 아름다운 용모만 없을 뿐인데, 선비가 가져야할 백가지 중에 너는 몇가지나 가지고 있느냐?", 허윤은 "나는 백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완녀는 "내가 알기로는 백가지 중에 덕행이 최고로 알고 있는데, 넌 그저 여자의 예쁜 얼굴만 좋아하고, 여자의 덕행은 좋아하지 않으니 어떻게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냐?" 허윤은 더 이상 말을 못하였고, 완녀의 식견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같이 살았다. 허윤은 완녀의 품성이 다른 여자들에 비하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고, 평생을 서로 사랑하며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