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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희제)

강희제(康熙帝)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by 중은우시 2005. 7. 24.

강희제는 청성조(淸聖朝)이며 이름은 현엽(玄燁)이고, 순치 11년(1654년) 3월 18일생이다. 그는 8살에 등극하여 61년을 재위하였으며 69세에 사망하였다. 중국역사상 재위에 있었던 기간이 가장 긴 군주이다.

 

강희의 부친은 순치(順治)인데, 전설에 의하면 순치는 황제위를 버리고 오대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서와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순치가 아끼던 동악비가 죽은 후 얼마되지 않아 순치제도 죽었는데, 그 사망원인은 천연두로 추정한다.

 

강희가 황제에 오른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강희는 어릴 때 이미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에, 다시 천연두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벨기에 전도사인 남회근이 강희를 만난 사실을 기록하는데에서도 강희는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다고 되어 있다는데서도 강희가 어릴 때 마마를 앓고 그 자국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강희제는 조모인 효장태후가 가장 아끼던 손자이기도 하였다. 효장태후는 청태종의 장비로서, 순치제의 어머니이고, 강희제의 조모인데, 순치제가 5살에 등극하고, 강희제가 8살에 등극한 후 두 어린 황제를 도와 성장하게 한 여걸이다.

 

강희제의 등극시에는 이전의 청태종이나 순치제 때와는 달리 8왕이 공동으로 협의하는 절차는 거치지 않고, 효장태후와 순치제의 유조(遺詔)의 형태로 강희를 차기황제로 지명하고, 4대신을 보정(輔政)으로 임명한다. 이 때 임명된 4대신은 쑤오니(索尼, 정황기), 쑤커사하(蘇克薩哈), 어비롱(謁必隆), 아오바이(鰲拜)이다. 순치제때 친왕을 보정으로 임명한 후 뚜얼곤에 의한 권력찬탈등이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친왕이 아닌 신하들 중에서 보정대신을 임명한 것이다.

 

강희제의 등극에서 우리는 최소한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차기황제의 임명이 종전처럼 황제사후 8왕의 협의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선대황제의 유조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황권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보정으로 황친이 아닌 신하를 임명하므로써 만주8기의 기주인 황친들의 권한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황권강화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