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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북경의 지명 변천사

by 중은우시 2005. 7. 10.

1. 유릉(幽陵), 유도(幽都), 유주(幽州)

 

오늘날 보통 얘기하는 바로는, <<사기, 오제본기>>, <<상서, 우공>>에  현재의 북경지구를 전욱의 시대에는 유릉이라고 부르고, 요(堯)임금시대에는 유도라고 불렀으며, 순(舜)임금시대에는 유주라고 불렀다고 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기록의 기재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나라 말기의 구주(九州)중의 하나로 유주(幽州)가 있고, 유주는 현재의 북경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한무제 원봉5년(BC109)에 유주자사(幽州刺史)를 두고, 치소를 계(艸+魚+刀)에 두었다. 계는 바로 현재 북경의 서남쪽에 해당한다. 현재의 산동성의 성도가 제남인데, 제남을 산동이라고 부른다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릉, 유도, 유주가 북경을 가르킨다고 하는 것도 엄격하게 보면 정확하지는 않고, 북경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유(幽)는 현재 발견되는 상나라때의 복사(卜辭)나 주나라때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검은색(黑色)을 표현할 때 유(幽)라고 하고 (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진나라이전에 성행하던 오행설에 따르면 그 내용중의 하나가 오색은 오행과 오방(동서남북중)을 가리키고, 북쪽은 흑색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릉, 유도, 유주라는 말은 북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2. 계(艸+魚+刀)

 

계는 현재의 북경시 서남쪽을 가리키는 말로서 진나라이전에는 계 또는 계구라고 불렀다. 계는 원래 식물의 명칭이다. 다년생의 직립 풀로써, 국화과에 속한다. 길가나 황무지나 산언덕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으며, 대계와 소계가 있고 소계는 자아채(刺兒菜)라고도 부른다. 진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계현을 둔다.

 

3. 연(燕), 연경(燕京), 연산(燕山)

 

연은 나라이름이기도 하고, 지방이름이기도 하고, 성씨이기도 하다. 기원전 11C에 주나라가 제후를 봉할 때 소공(召公)을 북연(北燕)에 봉하였다. 연산의 들판에 있기 때문에 국명을 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연은 전국시대에는 칠웅의 하나였다. <<전국책, 연일>>에 따르면 소진(蘇秦)은 <<연은 동쪽에는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고,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다. 지방은 이천여리가 된다"고 하고 있다. 연나라의 수도는 계였으며 현재의 북경시 서남쪽의 대흥현에 해당한다. 청나라 말기에 22개성의 명칭에 대한 1글자의 약칭을 정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산동성은 노(魯), 하남성은 예(豫), 안휘성은 환(晥)으로 한다. 도시의 경우에도 상해는 호(水+扈), 중경은 유(水+兪), 성도는 용(蓉), 광주는 수(穗)로 부른다. 이 때 직예성을 하북성으로 변경하자 약칭도 직(直)에서 연(燕)으로 변경된다.

 

당나라때 안록산의 난 때 안록산, 안경서의 뒤를 이은 사사명은 연제(燕帝)로 칭한다. 이 때 계를 연경으로 부른다.

 

4. 석진(析津)

 

이 명칭은 북경역사문헌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가장 먼저 북경의 지방역사를 담은 지방지가 원나라 때 웅몽상이 지은 <<석진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찌감치 실전되었다.

 

석진은 요나라 때 북경에 남경을 두고 석진부로 부르면서 사용한 이름이다.

 

5. 중도(中都)

 

금은 요의 연경석진부를 중도대흥부로 바꿔 불렀다. 금나라의 실질적인 수도가 바로 중도였고, 현재의 북경이다.

 

금은 5개의 배도(陪都)를 두었는데, 상경회녕부(현재 흑룡강성 아성), 동경요양부(현재 요녕성 요양), 서경대동부(현재 산서성 대동), 북경대정부(현재 내몽고 녕성), 남경개봉부(현재 하남성 개봉)이 그것이다.

 

몽고가 금을 멸망시킨 후 중도를 연경으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쿠빌라이가 중도로 명칭을 회복시킨다. 이후 확대건설후 대도로 부르고 국호를 원으로 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6. 대도(大都)

 

원나라의 쿠빌리이 지원 16년(1279)에 수도를 대도라 부르고, 국호를 원이라 부른다. 대도는 칸바리(Qan-baliq)으로 불렸는데, 이것은 칸이 있는 성이라는 의미이다.

 

7. 북평(北平)

 

북평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지명으로 사용되어 왔다. 서한때는 북평현을 두었는데 현재의 하북성 만성 북쪽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36군으로 나누었는데, 우북평군이 그 중의 하나이다.  북평현이나 우북평군은 현재의 북경과는 무관하다.

 

명나라때 주원장이 서달(徐達)을 보내 원의 대도를 함락시킨 후 북평부(北平府)라 불렀다. 이후 명나라 성조 영락제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북경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 국민당정부에 의하여 북경시는 다시 북평특별시로 개칭되었다가, 1930년 다시 북평시로 개칭된다. 국민당이 남경을 수도로 하였으므로 북경에서 경(京)이라는 글자를 삭제시킨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1949년 10월 1일 북경에서 성립되면서 다시 북평은 북경으로 명칭이 변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