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북경(北京)이라는 명칭의 유래...

중은우시 2005. 7. 10. 05:25

2008년 올림픽유치로 다시 한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북경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이다.

 

경(京)이라는 글자는

(1) 서주(西周: BC11세기-BC771)시대의 자료에는 지명에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2) 동주(東周: BC771-BC256)시대에는 "경(京)"이라는 지방명이 나오며,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지방이다. <<좌전, 은공원년>>(BC722) 의 기록에 의하면 "정백(鄭伯)의 동생이 경(京)에 살았다"는 말이 나오며, 현재의 하남성 형양현(滎陽縣) 동남쪽에 해당한다. 북제(北齊)때 경현은 폐지되었다.

(3) 이외에 또 하나의 경(京)이라는 지방이 있는데, 현재의 강소성 진강시에 있었따. 오왕 손권은 일찌기 오(吳: 현재의 소주시)에서 행정중심기구를 209년에서 211년 사이에 경(京)으로 이전하며, 후에 경성(京城)이라고 불렀다. 다시 건업(현재의 남경시)으로 천도하면서 경성은 경구현(京口縣)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동진과 남조에서는 이곳을 경구라고 불렀다. 1205년 남송의 신기질(辛棄疾)이 지은 <<영우락(永遇樂)>>의 제목이 "경구북고산회고"였다.

 

경(京)이 지명에 쓰이는 경우는 대체로 3가지의 경우로 구분된다.

 

첫째, 원래의 지명은 1자인데, "경"을 붙이거나 붙이지 않거나 모두 동일한 지방을 표시하는 경우이다. 경을 추가하는 이유는 대부분 시문의 리듬을 위한 것이거나 의미상 국가의 수도임을 표시하기 위한 경우이다. 서주의 수도인 호(鎬)를 호경(鎬京)으로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예로는 반고의 <<동도부>>에서는 낙양을 "경낙(京洛)"이라고 칭한 것이 보이며, 수당시대에는 "낙경(洛京)"이라고 부르리고 했다.

 

둘째, 경은 수도라는 의미이고, 그 뒤에 글자를 추가하여 지명으로 쓰는 경우이다. 한나라 때 경조(京兆)"가 있는데 군(郡)의 명칭이다. 경조의우두머리는 경조윤(京兆尹)이라고 한다. 또한, 당나라때에는 15도로 나누는데 "경기(京畿)"도가 그 중의 하나이다. 송나라때는 15도를 15로로 개칭하는데, 15로중에는 "경동로(京東路), 경서로(京西路)"가 포함되어 있다. 경사(京師)라는 말을 붙여써서 수도임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특정지방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고 수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외에 경성(京城), 경문(京門), 경화(京華)도 모두 수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셋째, 경은 수도라는 의미인데, 정치,경제,군사등의 필요에 의하여 수도 외에 배도(陪都)를 두는 경우가 있다. 국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인 경우 주요한 것은 "수(首)"라고 하고 나머지는 "배(陪)"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경의 앞에 방향(동서남북)이나 방위(상, 중)를 더한 경우이다. 이러한 명칭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지명으로 된 경우가 많다.

 

동한(東漢) : 서경 - 장안, 동경 - 낙양

북주 : 동경 - 낙양

수 : 동경 - 낙양

당 : 동경 - 낙양, 서경 - 봉상(鳳翔), 남경 - 성도(成都) 또는 강릉(江陵)

후당 : 동경 - 흥당(興唐), 서경 - 태원(太原, 후에 북경 태원으로 개칭함)

후진 : 동경 - 개봉(開封), 서경 - 하남(河南), 북경 - 태원

후한 : 동경 - 개봉, 서경 - 하남, 북경 - 태원

후주 : 동경 - 개봉, 서경 - 하남

발해 : 상경용천부(흑룡강 영안), 동경용원부(길림훈춘), 서경압록부(길림집안), 남경남해부(함흥), 중경현덕부(길림돈화)

북송 : 동경 - 개봉, 서경 - 하남, 북경 대명부, 남경 응천부

요 : 상경 임황부, 동경 요양부, 서경 대동부, 남경 석진부(현 북경시)

서하 : 중경 대정부

금 : 상경 회녕부, 동경 요양부, 서경 대동부, 북경 대정부, 남경 개봉부

명 : 남경 응천부, 북경 개봉부(1368-1478), 북경 순천부

 

북경이라는 명칭은 원래 현재의 북경시를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었다.

 

북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기는 하나, 국가의 수도나 배도가 아니었던 경우는 다음과 같다.(모두 현재의 북경시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1. 가장 먼저 북경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문헌자료는 <<진서, 장정전>>인데 거기서 당시 강남의 사람들이 이전의 도성인 낙양을 북경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나온다. 북쪽에 있는 수도라는 의미이다.

 

2. 남북조시대에 유송(劉宋)은 건강에 도읍을 정하였다. 유유(劉裕)는 경구(京口:강소성 진강시)에서 병사를 일으켜 진을 무너뜨리고 송을 세워 송무제라 칭하였다. 경구에서 시작하였으므로 유송시대에는 경구를 북경이라고 불렀다.

 

3. 16국중의 하나인 하(夏)는 흉노족의 철불부 혁련발발(赫連勃勃)이 세운 나라이다. 413년에 통만(統萬, 내몽고 남백성자), 418년에 장안을 치고 황제에 오른다. 장안을 남도라고 칭하고, 통만을 북경이라고 불렀다.

 

4.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拓跋珪)는 398년에 나라를 세우고 평성(현재 대동)에 수도를 정하였다. 효문제에 이르러 낙양으로 천도하였는데, <<위서, 숙종기>>에는 평성을 북경이라고 칭하고 있다.

 

5. 당고조 이연의 근거지는 태원이었다. 수양제는 이연을 태원유수로 봉하였었다. 618년에 이연이 황제를 칭하면서, 국호를 당이라 하고 장안을 수도로 삼았다. 723년에 태원을 북도(北都)라 칭하다가 742년에 북경으로 개칭하였다. 761년에는 다시 북도로 개칭한다.

 

북경으로 불리면서 수도,배도였던 경우는 다음과 같다.(모두 현재의 북경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1. 후당의 923년에 서경태원부(현재 산서성의 태원시)를 북경(北京)으로 삼는다.

 

2. 후진,후한에서도 후당을 이어 북경태원부를 설치한다.

 

3. 송의 진종은 요를 정벌하기 위하여 진주하던 대명부(하북 대명)에 북경을 설치한다. 시내암이 지은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영웅호한들이 여러차례에 걸쳐 동경개봉부와 북경대명부를 얘기한다.

 

4. 금나라는 북경대정부(내몽고 영성)를 금 희종 천권원년(1138)에 설치한다. 1150년에 중경으로 개칭하였다가 1153년 다시 북경으로 이름을 회복한다.

 

현재의 북경시가 북경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명나라의 영락제가 수도를 남경응천부(南京應天府)에서 북경으로 이전하면서 북경순천부(北京順天府)라고 부른 이후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