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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중국역사상 행방불명된 10대 진국지보(鎭國之寶)

by 중은우시 2025. 5. 16.

글: 수장대시계(收藏大視界)

중화문명 8천년의 긴 흐름 속에서, 문명을 담은 보물이 전화에 사라지거나, 혹은 시간에 은닉되었다. 국가문물국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현존하는 이동가능한 문화재는 1억건인데, 박물관이 소장하는 것은 반수에 마치지 못한다. 더 많은 문화재는 민간과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흩어져 있다.

본문에서는 10건의 문명을 상징하는 진국지보를 골라 보았다. 이들은 무덤 속에 묻혀 있거나, 혹은 해외로 흘러나갔거나, 혹은 일찌감치 전설이 되어 버렸다.

1. 구정(九鼎): 천명왕권(天命王權)의 영원한 토템

하상주(夏商周) 삼대왕조의 '권력핵심'으로서, 구정은 대우(大禹)가 구주(九州)를 나눈 상징적 산물일 뿐아니라, 화하문명 최초의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정(鼎)은 구주의 산천, 기진이보를 새겨놓아서 상고버전의 '3D모래지형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한 후, 이 정통을 상징하는 청동구진(靑銅矩陣)은 신비롭게 사라진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가지고 12금인을 만들었다고도 말하고, "사수침정(泗水沉鼎)"의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까지, 고고학계에서는 여전히 청동문명사를 고쳐쓸 수 있는 구정의 잔편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2.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집서(蘭亭集序)>: 서예세계의 최고봉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받들어지는 <난정집서>의 진적(眞迹)의 행방은 예술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태종 이세민이 "생사상수(生死相隨)"할 정도로 좋아했기 때문에 소릉(昭陵)에 같이 묻혔고, 오대(五代)떄 온도(溫韜)의 도굴때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 어떤 학자는 더욱 대담한 추측을 한다: 무측천이 아마도 진본을 건릉의 지궁에 비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난정집서>와 함께 사라진 것은 왕희지의 다른 작품들도 있다.

3. 화타(華佗)의 <청낭서(靑囊書)>: 잃어버린 의학서적

이는 개로수술(開髗手術)과 마비산(麻沸散)의 비법이 적혀 있다는 전설의 책이다. 원래 중의학이 천년전에 이미 외과수술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옥졸의 처가 놀라서 불태우는 바람에 화타의 필생 심혈이 사라져 버렸고, 중의는 양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현존하는 잔권(殘卷)의 "오금희(五禽戱)"와 침구이론은 이 '고대의학백과전서'의 빙산의 일각이고, 이 책의 실전(失傳)은 직접적으로 인류의학사를 고쳐쓰게 만들었다.

4. 북경원인(北京猿人)의 두개골: 인류의 기원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인류문명사를 50만년전으로 끌어올린 진귀한 화석을 삼켜버린다. 두개골을 보관한 군용상자는 진황도로 운송하는 과정에 신비롭게 실종된다. 그리하여 미국과 일본 양측이 반세기동안 추적하게 된다.

최근 들어 일본황실이 보관하고 있다거나 혹은 미군함정과 함께 침몰했다는 단서가 나왔다. 다만 더욱 괴이한 점은 화석실종전에 촬영한 영상자료마저도 집단적으로 증발하여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남긴다.

5. 태아검(太阿劍): 냉병기미학의 최고제품

춘추시기 주검대사(鑄劍大師) 구야자(歐冶子)와 간장(干將)이 공동으로 만든 이 청동신기는 일찌기 초장왕(楚莊王)의 "태아도지(泰阿倒持)"의 고사를 남긴다. 주조공법이 정교하여, 현대의 야금학자들마저 경탄하게 만든 월왕구천검이 출토될 때 차가운 빛이 날카로웠던 점을 보면 고대서적에 나오는 "인여추상(刃如秋霜, 칼날이 가을서리와 같다)"이라는 말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시황이 이를 차고 육합을 횡소한 후, 태아검은 여산의 진시황무덤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당대 고고학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남겼다.

6. 영락대전(永樂大典) 원고: 백과전서 비조의 최종형태

현존하는 가정본(嘉靖本) 부본은 원고의 4%에도 미치지 못한다. 3.7억자의 정본은 행방불명이다. 어떤 학자는 명세종(明世宗)의 무덤에 묻혔다고 말하기도 하고, "만력제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이 7천여종의 고적을 집록한 거작이 만일 모습을 드러낸다면, 혹은 송원과기사의 단층을 보완하고, <사고전서>가 확립한 지식체계를 다시 쓰게 만들지도 모른다.

7. 수후주(隋侯珠): 빛의 기적

화씨벽(和氏璧)과 나란히 "춘추쌍벽(春秋雙璧)"으로 불리는 야명주는 발광원리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진시황은 이를 무덤에 넣어 장명등(長明燈)으로 삼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현대의 원격감측으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여산의 진릉에서 비정상적인 수은복사가 검측되고, 이것이 바로 이 '수레의 앞뒤 각 12승을 비춘다'는 광세기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아마도 진릉이 열릴 때 비로소 밝혀지게 될 것이다.

8. 서태후의 야명주: 근대사의 권력투사물

이 야명주는 손전영(孫殿英)이 서태후의 입에서 꺼낸 기이한 보물이다. 송미령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민국풍운의 또 다른 증거가 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지금 미국의 어느 부호집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단 말인가? 지금까지도 수수께끼이다.

9. 역지쌍벽(易之雙璧): <연산(連山)>, <귀장(歸藏)>

하상시기의 이 두 부의 역학(易學) 원전은 화하철학체계의 소스코드를 구성한다. <주역>에서 보여주는 64괘체계는 상고지혜의 빙산의 일각이다.

2018년 귀주 수족(水族)의 <연산역(連山易)> 고본이 세상에 나타나 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다만 상나라때의 <귀장>에 기재된 "수자괘(數字卦)"계통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10. 전국옥새(傳國玉璽): 천명윤회의 종극신물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이라는 글자를 새긴 옥새는 2천년 왕조교체사를 꿰뚫고 있다. 역대군왕은 이 옥새를 얻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고 정통으로 여겼다. 만일 어느 날 정말 이 귀퉁이가 부서져 수리한 옥새를 발견한다면, 더 많은 놀라움을 주게 될 것이다.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국보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다시 나타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