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골동

중국고대의 남색 유리(藍玻璃)

중은우시 2023. 6. 30. 12:11

글: 석림(席琳)

 

중국인들은 자기(瓷器)를 발명했다. 이는 진흙으로 만든 것이고, 중용의 도에 적합하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유리를 발명하지 못했다. 유리는 서방인들이 발명한 것이고, 모래로 만들었으며, 투명하다. 비록 역사상 여러번 중국에 전래되었지만, 중국의 토양에서 유리라는 투명한 물건은 "견광사(見光死, 빛을 만나면 죽는다는 것으로 생명력이 취약하거나 저항력이 약한 것을 가리킴)"에 속한다. 그래서 제조기술이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했고, 완전하게 전승되어 내려오지 못했다.

 

유리는 춘추전국시대(기원전770-기원전221)에 중국에서 이미 PbO-SiO2(산화납-이산화규소)유리로 만든 벽(璧), 주(珠)등의 유리공예품이 나타난다. 한(漢)나라때는 희귀한 H2SiF6(헥사플루오로규산염)유리까지 나타난다.

광서 귀항의 서한묘에서 출토된 남색현문유리잔은 칼륨유리제품이다.
상해유리박물관에 소장된 송나라때 남색화병모양의 유리비녀

광주의 남월왕묘에서는 최초의 중국 남평판유리장식이 나타난다. 납바륨유리로 만들었다. 서방의 나트륨칼슘유리가 아니며 지금으로부터 2,100년전에 만들어졌다.

산서 대동박물관에는 북위시기의 남색유리 기명(器皿)이 약간 소장되어 있다. 이때는 한나라때 자주 보이던 납바륨유리가 점점 감소하고, 서역에서 온 나트륨칼슘우리도 아직 성행하지 않았다. 대신헤서 나타난 것은 바륨을 포함하지 않은 납유리와 알칼리유리이다. 이를 북위람(北魏藍)이라 부른다.

 

12세기에 이탈리아의 유리제조기술은 이미 상당히 발달했다. 공업재료인 상품유리가 출현한다. 1676년에는 영국인이 유리에 산화납을 추가한 후 정질(晶質)의 유리를 만들어 낸다.정질유리는 높은 굴절율과 밝기를 가져 조각하기 쉬운 특성이 있다. 이 발명은 광학유리발전의 기초를 닦는다. 18세기말,19세지초, 독일인과 스위스인은 합작으로 광학유리를 제조한다. 19세기후반, 독일은 유리에 대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온도계, 현미경과 망원경에 쓰이는 광학유리를 생산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서방의 유리는 다시 한번 중국에 소개된다. 그리고 궁정에서 사용되어 비연호(鼻煙壺)등 실용기물을 만들어 황실과 귀족들의 관상용으로 쓰인다.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중국인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유리까지도 그저 감상하고 가지고 노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박대정심하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방인들은 유리에서 현대과학기술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동서양의 사람들의 자기와 유리라는 두 가지 재료선택에서의 취향, 상응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한 물건과 용도에 대한 게속적인 탐색은 중국전통문화와 서방현대과학이 서로 다른 분야로 발전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