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명(佚名)
2025년 4월 29일 원래 맹물처럼 평범한 날에 중국외교부가 돌연 깃발을 휘두르며 소리높여 <꿇지 않겠다(不跪)>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주제는 '중국은 무릎꿇지 않는다'이며, 내용은 호기가 넘쳐 마치 곧 북을 울리며 전투에 나설 것같은 기세이다. 그러나, 이 영상을 모두 보고나면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감동이 아니라 당당한 국가기관의 천박함, 촌티, 그리고 거의 쪽팔리는 모습에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난감. 이 두 글자가 모든 것을 표현한다. 외교부는 국제무역담판을 무릎꿇는 것과 무릎꿇지 않는 것의 이분법으로 표현했다. 수준이 졸렬하여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일 뿐아니라, 뿌리깊은 '가노사유(家奴思維)'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이 "꿇다(跪)"라는 글자를 보자. 정상적인 국가의 외교부가 국제무역마찰에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이익보호" "평등협상" "법에 따른 항변"같은 말들을 사용할 것이다. 독일인, 일본인, 프랑스인이 미국-EU간의 관세대전에 대해 누가 들고 일어나서 "우리는 무릎꿇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지위가 비천하고, 마름 속으로 비겁함을 가진 사람만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무릎꿇는다(跪)"는 말로 스스로를 표시할 것이다. 그렇다면 잠재의식 속에는 이미 무릎꿇은 것이다. 단지 그것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것일 뿐이다.
외교부라는 "국가의지를 대표"하는 기구가 "노비가 강경한 태도를 보여 주인에게 보여주려는" 태도는 한편으로 꼬리를 흔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갈며 소리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무릎꿇지 않는다"고 하면서 뼛속까지 일찌감치 국제사회를 구사회 대갓집의 대청으로 보고, 자신은 그 앞에 서서 소리치는 하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외교인가? 기껏해야 집안에서 싸우는 모습을 그대로 국제사회로 옮겨놓은 수준이 아닌가.
더욱 치명적인 것은 외교부가 기본적인 국제무역의 상식조차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중관세를 인상시켰는데, 그 본질이 무엇인가? 그건 미국 자신이 자신의 소비자들을 해치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기업에게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 확실히 일종의 압력인데, 그게 무슨 "패권"인가. 문을 걸어닫고 성벽을 수리하겠다는데, 그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다른 사람에게 무릎꿇으라고 하는 것인가?
하물며, 국제무역은 원래 주고 받는 것이다. 오늘 내가 관세를 거두면 내일은 네가 나를 제한한다. 비지니스협상이라는 것은 항상 주고받는 것이다. 설사 압박을 받더라도, 그것은 책략의 문제이지, 존엄의 문제는 아니다. 협상테이블에서 무슨 '영웅주의'는 없다. 그저 이익에 대한 계산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외교부는 그것을 비장한 민족서사시로 묘사했고, 마치 협상을 무슨 '생사결투'인 처럼 묘사하고, 양보를 하면 '만겁불복(萬劫不復)'인 것처럼 얘기한다. 이처럼 흑아니면 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초등학생이 싸움을 할 때 '네가 죽든지 내가 살든지'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슬픈 점은 그들의 이런 졸렬한 행동이 천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계속하여 이렇게 감정적으로 선동해야 비로소 자신이 실제로 대결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원하는 것은 협상결과가 아니라, 국내민중의 박수이다. 설사 그게 형편없는 짓으로 얻어낸 박수일지라도.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외교부의 이런 '사나이'로서의 모습은 대외적인 것이 아니라 대내적이라는 것이다. 진정 겨냥하는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국내의 일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혈성', '불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외교라는 것은 매일 항미드라마를 상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이 "우리는 무릎꿇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기실 무릎꿇고 소리치는 것이다. 정치정확의 신단 아래 무릎꿇고, 스스로 감독하고 연기하는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인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서...
진정한 자신은 소리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강대함은 비정(悲情)과 적의(敵意)를 쌓아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숙한 국가라면, 매번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14억명을 끌고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지 않을 것이다. 더더구마 매번 관세협상을 할 때마다 "충성스럽고 비장한"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을 것이다.
외교부의 현재 모습은 청나라말기의 조정과 비슷하다. 열강이 협상조건을 얘기하기만 하면, 첫번째 반응은 어떻게 협상할 것이냐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분노하여 소리치는 것이다: "천조상국이 어찌 오랑캐들에게 강탈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후에는 배상금을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영토를 할양할 것은 할양한다. 소리를 하늘을 울릴 정도로 컸지만, 하는 행동은 비굴했다. 단지 현재의 외교부는 이런 비굴함을 일종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애국"이라는 명의를 달고 있다. 비애에 빠져 참을 수가 없도록...
더욱 이상한 점은 이런 보여주기식의 "강경한 태도"에 왕왕 전체인민의 정서를 인질로 삼는 것이다. 영상내에 나오는 말들은 모두 "중국을 위하여" "우리들은"이라고 얘기한다. 정부행위를 국가의지와 동일시 하고, 비지니스협상을 민족존망이 걸린 전쟁으로 포장한다. 누구든 조금만 다른 의견을 내세우면 그것은 '연약함'이고, "매국노"이고, "무릎꿇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전형적인 정서인질이다. 진정한 국가는 제도, 규칙, 이익과 이성의 결합체이다. 몇 마디 흥분제같은 말로 취약한 정서를 유지하는 집단이 아니라.
중국은 당연히 굴북해서는 안되고, 유약해서도 안된다. 다만 이처럼 저열하게 '강경'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강경'은 협상테이블에서 조건을 제시하고, 규칙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이다. 말로 스스로 감동할 것이 아니라. 수만번 '무릎꿇지 않겠다'고 소리치더라도 단 한번의 실질적인 협상성공만 못하다. 아쉽게도, 외교부는 일찌감치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잊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외교부의 거칠고 촌스러우며 감정적인 태도는 국가의 대문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해칠 뿐아니라, 더더욱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하게 만든다. 다른 나라들이 이익을 추구하며 탄력있게 협상을 진행할 때, 우리는 문혁식의 언어로 충성심을 표시하고, 다른 나라들이 이익을 따져서 취사선택하고, 이익을 교환할 때, 우리는 가슴을 치면서 결심을 표시하기만 하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 탈동조화하게 되면, 진정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일반백성들이다. 그들은 외교부의 영상을 보지도 않을 것이고, '우리는 분발도강해야 한다는 구호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일자리를 잃고, 가격이 인상된 상품을 사야 하고, 날로 찌들어가는 생활공간을 보게 될 것이다.
<꿇지 않겠다>는 영상과 마찬가지로 원래 의도는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집단자아최면소동에 불과하게 되었다. 정말 안타깝다. 국제간의 힘겨루기라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하여, 자아최면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정 깨닫게 되는 날이 되면 이미 댓가가 너무 높아져서 도저히 부담할 수 없을 수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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