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청나라말기 삼대명기(三大名妓)의 사진...

by 중은우시 2025. 3. 27.

글: 천류취담(川流趣談)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옛날 사진들에 대한 복원기술도 점차 완비되고 있다. 옛날 사진들을 하나하나 복원함으로써, 우리는 근대사회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청나라말기의 삼대명기(三大名妓)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속속 현재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미인이라는 평론을 남긴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그녀들은 기녀가 되었는데, 그녀들의 배후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창기(娼妓)의 기원에 대하여는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계속되고 동란이 거듭되는 시대에 자연자원이 비교적 적어, 각 나라들은 앞다투어 인문과 경제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 이름도 유명한 관중(管仲)은 경제정책 하나로 인해 창기의 조사야(祖師爺)로 받들어지게 된다. 그 시대에, 관중은 합리적으로 여노(女奴), 여범(女犯)을 관리하여 대량의 경제수입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사방의 인재를 불러모았다.

심지어 미녀를 적국에 보내기도 했다. 그 위력은 십만병사보다 컸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기녀의 장사가 잘 안되면, 분자(盆子, 대야)를 들고 관중의 조각상 앞으로 가서 가볍게 치면서 자신의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시대에 기녀는 대부분 재예(才藝)를 가지고 있었고, 훈련을 통해 각종 음악지식을 장악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녀들은 음악이 보급되는데 공헌을 했다.

또 어떤 기녀는 매예불매신(賣藝不賣身, 예술은 팔아도 몸은 팔지 않는다)했다. 고대의 청관인(淸官人, 淸倌人, 淸綰人, 아직 손님을 받지 않은 기녀를 가리킴)처럼. 그리고 또 어떤 기녀는 재예를 갖추지 못해, 매신불매예(賣身不賣藝)하기도 했다.

양취희(楊翠喜)

양취희가 막 출생했을 때, 보통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양이뉴(楊二妞)였다. 원래 평범한 일생을 살았을 테지만, 시절이 혼란스럽고 생활이 도탄에 빠져, 부모는 그녀를 다른 사람의 집에 길러달라고 보내게 된다.

그녀는 다른 집으로 간 후에 양취희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녀를 길러준 집안은 음율에 정통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운다. 양취희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고, 그녀의 양부모는 그녀를 우수한 예기(藝妓)로 기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양취희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아, 기예가 날로 발전한다.

 

그녀가 15살이 되자, 이미 예쁜 아가씨로 성장한다. 게다가 그녀의 고운 목소리와 뛰어난 음악재능은 일거에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다.

여러 달관귀인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왔고, 그중의 한 사람이 이숙동(李叔同)이다. 양취희가 공연하다가 이숙동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는 중에 서로 취향이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중에 이숙동은 많은 돈을 씀녀서 그녀를 만난다.

그러나, 운명이 기구하여, 양취희는 나중에 팔려가서, 재진(載振, 경친왕 혁광의 장남)의 첩으로 보내어진다. 소문에 따르면, 이숙동이 그것을 가슴아파하다가 출가하여 홍일법사(弘一法師)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양취희의 비참한 생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는 다시 한 부유한 상인의 첩이 된다. 그러나 따뜻한 대우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여, 양취희는 우울하게 생을 마친다. 그녀는 40살도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소영희(小榮喜)

양취희와 같은 경력을 가진 소영희도 인생이 기구했다. 자료를 보면, 소영희는 몸을 팔지는 않았고, "매예불매신"의 명기였다.

사진을 보면, 소영희는 용모가 아릅답지만 기형적인 전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사회여성은 대부분 전족을 해야 했었고, 청루여자들이 문을 나설 때면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가야 했다.

새금화(賽金花)

새금화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친이 불행히 병사하자 그녀는 화선(花船)에 팔려가 예술공연을 배운다. 그런 환경하에서 그녀는 열심히 기예를 배웠고,나중에 장원(狀元) 홍균(洪鈞)의 눈에 들게 된다.

그렇게 하여 15살의 새금화는 48세의 장원 홍균의 첩이 된다. 당시 홍균은 외교관으로 외국에 나가야 했다. 그러나 홍균의 정실부인은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새금화가 스스로 나서서 그와 함께 외국으로 나간다.

그렇게 하여, 그녀는 남편과 멀리 유럽으로 간다.

유럽에서 그녀는 중국과는 다른 풍토문화 및 선진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시야를 크게 넓힌다. 그리고 총명하고 기민한 그녀는 독일어를 익혀, 현지사람들과 정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심지어 남편과 함께 각종 외교활동에 참여했다.

독일에 있을 때, 새금화는 중요한 인물 발드르제를 알게 되었고, 그녀가 나중에 나라를 위해 공헌하는 기반이 된다.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남편이 외교관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한다. 가족들은 새금화의 출신을 꺼려서 그녀를 집안에서 내쫓아 버린다. 그리고 남편은 그녀에게 생전에 무슨 재산을 남겨두지도 않았다. 방법이 없어 새금화는 북경으로 돌아가 다시 기녀가 된다.

나중에 팔국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는데, 연합군총사령관이 독일에서 온 발데르제였다. 그녀는 발데르제를 만나 그에게 약탈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