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삼성퇴문명(三星堆文明): 너무나 신비한......

by 중은우시 2024. 11. 18.

글: 노장건강론(老張健康論)

서론

과거 20년간 중국의 고고발굴팀은 삼성퇴문화유적지에 대한 장기간의 개발을 진행했다.

그러나, 현재 보면, 개발의 추진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같다.

이는 주로 삼성퇴유적지를 발굴했을 때, 너무나 전문가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해석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은 중국사학계에서 삼성퇴문명에 대해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궤이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삼성퇴문명과 중원문명간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삼성퇴문명의 신비한 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1. 삼성퇴문명은 아주 특이하다.

역사학자에 있어서, 삼성퇴문명에 대하여 도대체 어느 시기에 존재했는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건 아주 판단하기 쉬운 일이다. 어쨌든 고고학자와 다른 관련역사학자에 있어서, 그들이 발굴하는 과정에서 관련 유물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후에 이들 유물의 형태와 원재료를 통해 개체로 어느 시대의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그것이 불가능하면, 이들 유믈에 대해 제작시기를 측정하여, 제작된 구체적인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수단이 삼성퇴에는 소용이 없었다.

이는 주로 삼성퇴유적지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또한 거기에는 서로 다른 역사시기의 유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퇴에서 출토된 도기(陶器)중에는 4개의 서로 다른 시기의 도기를 찾아볼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일은 이들 서로 다른 시기의 도기가, 형제에 있어서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단지 제2기, 제3기, 제4기의 도기에서 일정한 전승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도기는 서로 다른 시대에 출현했으므로, 역사학자들이 삼성퇴문화가 존재했던 연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현재로서는 4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어떤 사학자는 삼성퇴문명이 주로 신석기시대말기와 상왕조말기, 주왕조초기에 생활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 주왕조가 상왕조를 멸망시킬 때 천하대혼란와중에 이들은 어디로 옮겨갔는지도 알 수가 없고, 심지어 전체 문명이 멸망해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삼성퇴문명은 주로 하,상시기에 존재했다고 한다.

나머지 두 견해는 상왕조말기에서 주왕조 초기, 혹은 서주시기부터 춘추시기까지로 본다.

뒤의 두 가지 견해의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왜냐하면 삼성퇴에서 발견된 일부 유물은 확실히 당시의 시대특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그것은 바루 뒤의 3기유물과 제1기유물은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이런 가설이다: 삼성퇴에서 발굴된 이들 도기는 동일한 문명의 것이 아니다.

제1기도기가 하나의 문명이고, 나머지 3개의 도기가 또 다른 문명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또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그렇다면 문명도 다른데, 왜 같은 지방에서 생활했을까? 그리고 거의 비슷한 유형의 제사를 지냈을까?

이것이 전체 삼성퇴유적지에서 가장 궤이하고,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삼성퇴에서 발굴된 일부 유물은 마찬가지로 전체유적이 범상치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2. 발굴한 유물도 아주 특수하다.

삼성퇴에서 발굴된 일부 유물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삼성퇴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대부분 극히 뛰어난 공예제작수준을 보여준다. 그리고 형태도 아주 아름답다.

중국고대의 문화전통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고위층이 제사지낼 때, 비로소 이런 화려하고 완벽한 청동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성퇴에서 발견된 일부는 제사용이거나 생활용 청동기이다. 규격은 중원봉건왕조의 핵심지역에서 발견된 것들보다 전혀 못하지 않다.

이는 고대에 있어서 예법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 자체로 해석이 곤란한 점이 있다.

하물며 삼성퇴문명은 그 자체로 문화권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상대적으로 폐쇄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선진적인 야금기술을 익혔을까? 이것도 마찬가지로 주목해야할 문제이다.

그후, 삼성퇴유적지에서 출토된 대량의 청동인상(靑銅人像)이 있는데, 이들 청동인상의 외형과 규격은 중원에서 발견된 청동기와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이들 청동인상은 모두 콧날이 높고, 눈이 깊다. 그리고 귀는 크며, 귀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심지어 어떤 청동인상은 직접 황금가면을 쓰고 있다. 이는 남방의 일부 소수민족의 문화전통과 비슷하지, 중원의 문화전통과는 비슷하지 않다.

이론적으로 보면, 중원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야할 삼성퇴문명이 왜 오히려 이렇게나 많이 중원문화와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이는 청동인상을 주조했을까?

만일 이들 청동인상이 정말 당시의 삼성퇴문명을 만든 사람들이 일부러 만든 것이라면, 이들의 용모는 너무나 기이하다. 중원인의 용모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또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어떻게 어떤 지역에서 생활했단 말인가? 이것도 마찬가지로 연구해야할 문제이다.

당초 삼성퇴문명을 발굴할 때, 두 개의 초대형 제사갱을 발견한다. 이들 제사갱에는 대량의 진귀한 청동기가 놓여져 있었는데, 심지어 그 시대에 비교적 드물게 보는 옥기(玉器)도 있었다.

다만, 제사를 진행할 때, 이렇게 진휘하고 극히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문물을 훼손시켰다.

어떤 것은 철저히 훼손되어있어 마치 이들 제사의기를 누군가 발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 것같았다.

마치 적의 공격을 받아 도망갈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상대대로 내려온 제사의기를 파괴하고, 이들 물건이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치한 것같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것도 말이 된다. 하물며 삼성퇴문명은 그 자체가 혼란한 전란의 시대에 존속했으니까. 그 시대에는 어떤 일도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성퇴문명은 여러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이들 의문점은 또한 이 문명의 매력이기도 하다.

3. 삼성퇴유적지에서는 핵심유산이 발견되지 않았다.

삼성퇴문화유적지를 발굴할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규모가 크고, 규격이 높은 문화유적지인데, 수십년간의 발굴에서 여하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고고역사상으로도 보기 드문 일이다.

통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역대왕조에서 남긴 이런 문명유적은 적거나 많거나 일부 문자를 남기기 마련이다.

서적같은 직접적으로 기록한 문자를 남기지 않더라도, 기물에도 남아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도관(陶罐)에 문자를 남기는 등이다.

그러나 삼성퇴에서 그렇게 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진정한 의미의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고고학자들은 그저 삼성퇴문화유적에서 일부 불규칙적인 부호만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 부호는 대다수 하나만 출현하거나, 근본적으로 문자체계를 갖추지는 못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전문가들은 한 가지 예측을 한다.

그것은 바로 삼성퇴문명이 상대적으로 초기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통일된 문자를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부호로 교류했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주장은 확실히 삼성퇴에 문자가 없는 점을 비교적 완벽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이건 다시 새로운 의문점을 낳는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삼성퇴문명은 기술이 상당히 발달된 문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당시 중원문명의 청동기제련기술보다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제련기술이 이렇게나 선진적인데, 어떻게 자신의 민족문자는 탄생하지 않았다 말인가?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것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상형문자에서 설형문자, 그리고 나중에 점점 체계를 갖춘 문자로 발전했다.

이 역사는 상당히 유구하다. 삼성퇴문명이 이런 가장 기초적인 원시문자조차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아주 궤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삼성퇴문명은 보통이 아닌 우리가 잘 모르는 교류방식을 사용하였다"

만일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너무나 공포스럽다. 문자 자체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교류도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믿는다. 이들 수수께끼는 이후 분명히 해결될 것이라고.

당국은 삼성퇴유적지에 대한 대규모발굴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이후 언젠가 이곳에서 더욱 핵심적인 유물을 발견하여 우리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퇴문명이 아무리 기괴하더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삼성퇴문명은 중국전통문명의 일부라는 점이다.

이 문명이 최종적으로 멸망했더라도, 그것은 어쨌든 중화문명의 미래발전과 성장에 크게 공헌을 할 것이다.

이 문화권내에 있다면, 삼성퇴문명의 일부 문화특징은 아마도 당시 발전한 중화문명을 보고 배우고 흡수한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점차 중화문명의 일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삼성퇴의 일부 기괴한 특징은 우리가 이해하면 그만이지, 지나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현재 궤이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우리가 삼성퇴문명유적지의 개발추진력이 강하지 않아 아직 더욱 많은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화유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결론

지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지구상에 일부 인류들이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이나 유적이 출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우리가 진정해야할 일은 계속하여 고고발굴작업을 진행하여, 이들 고대문명유적의 본질을 깊이있게 탐구하여 고대인류가 남긴 각종 고귀한 유산을 계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