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생전(張生全)
1938년 5월, 스탈린은 게네필을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게네필은 여전히 화려한 복장을 갖춰 입는다. 그녀가 감옥을 나설 때, 한 촬영사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찍었다. 이어서 그녀는 담담하게 형장으로 걸어갔다. 총소리가 들리고 게네필을 핏물 속에 쓰러지면서 그녀의 비참한 운명은 끝이 난다.
게네필의 운명은 그녀가 19살 되던 해에 전환점이 온다.
그때는 1923년 7월이었고, 몽골황제 제쮠담바 복드칸(哲布尊丹巴 博克多格根)은 황후가 병사하자 전국에 선비령(選妃令)을 내린다. 수천, 수만의 적령기여성중 19세의 게네필은 목민(牧民)의 딸로 신분이 아주 한미했지만, 그녀는 비교적 예쁜 용모로 수천, 수만의 적령기여성중 두각을 나타내어 여러 단계의 선발을 거쳐 황후가 된다. 이때부터 참새가 봉황이 되어, 몽골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 된다.
외몽골국은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복드칸은 '개국황제'라고 할 수 있었다.
복드칸은 티벳불교 8세 제쮠담바후툭투(哲布尊丹巴呼圖克圖)이다. 그는 환생한 활불이고, 몽골국의 왕공들은 그를 숭배하고, 민중들은 더더욱 그를 신과 같은 인물로 여긴다. 아무도 감히 그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황제는 아니지만, 정치와 종교방면에서 지고무상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복드칸은 일찌기 4살때, 영동전세(靈童轉世)로 인정받아, 포탈라궁으로 보내어져 티벳불교를 학습한다. 8세 제쮠담바후툭투가 된 후에, 몽골로 돌아온다.
그러나 바로 이때 신강회란(新疆回亂)이 발생한다.
회족군대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몽골을 공격한다. 병력이 약했던 외몽골은 회족군대의 공격에 패배를 거듭하며 후퇴한다. 복드칸의 생명마저 크게 위협을 받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복드칸은 수백의 귀족과 라마를 이끌고 천리를 이동하여, 청정부에 도움을 청한다. 결국 청정부에서 수십만군대를 파견하여 회족군대를 물리치고, 외몽골의 위기를 구해준다.
기실, 외몽골과 청정부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친밀했다.
외몽골은 원래 청나라의 일부분이었다. 다만 외몽골은 천리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청정부는 외몽골에 대한 관리가 느슨했고, 외몽골은 말로는 청정부에 신복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는 독립국가처럼 지낸다. 게다가 청나라 말기에 열강에게 연신 패배하면서 국가가 약해지자, 외몽골은 점점 청정부의 관할을 벗어나, 독립할 생각을 품게 된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 복드칸과 처는 비록 아들이 있었지만, 복드칸은 자신의 '활불' 칭호를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줄 수가 없다. "활불"칭호를 아들에게 전해줄 수 없으므로, 권력을 전해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독립한다면, 자신이 황제에 오르고, 자연스럽게 황위를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것도 복드칸으로 하여금 독립하여 건국하려는 마음을 품게 되는 원인이 된다.
제정러시아는 청나라를 침략하며 청나라의 백만평방킬로미터 이상의 영토를 잠식했다. 외몽골이 독립하려는 계획을 그들은 두손 들어 환영한다. 왜냐하면 외몽골이 일단 독립하면, 청나라를 더욱 해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정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그들은 암중으로 적극지지했다.
제정러시아의 지지는 복드칸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한다. 그는 갈수록 청정부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청정부에서 외몽골에 파견한 관리들을 배제하면서 병사를 모집하고 군대를 건립했다.
이때 청정부는 열강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기도 힘들었다. 외몽골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1911년 신해혁명이후, 청나라가 멸망하고, 복드칸은 11월 12일 외몽골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도 이렇게 하여 '개국황제'가 된다.
당시 민국정부가 막 건립되었고, 각지에서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외몽골의 독립에 불만이 컸지만, 힘이 미치지 못했다. 기껏해야 약간의 교섭을 할 수 있을 뿐이었고,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다.
야심만만한 복드칸은 외몽골독립후, 몽골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군대를 계속 확충하고, 다른 몽골부락을 공격하여 몽골통일을 준비한다.
외몽골의 병력이 강해지고 실력이 갈수록 증강된다. 제정러시아는 이에 우려를 갖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계속되면, 제정러시아에 불리할 것이라 여긴다. 원래 외몽골을 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제정러시아에 사건이 발생한다. 세계제1차대전이 발발하고, 제정러시아도 개입된다. 전쟁으로 정신없는 제정러시아는 중국과 큰 마찰이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1915년 6월 7일, 제정러시아는 북양정부 및 외몽골과 <중러몽협약>을 달성한다. 협약에는 외몽골의 독립을 취소하고, 복드칸은 계속하여 최고통치권을 누리고, 동시에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다는 등의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복드칸도 황제의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4년후, 서수쟁(徐樹錚)이 병력을 이끌고 외몽골의 고륜(庫倫)으로 쳐들어가고, 복드칸은 대패한다. 패전하였으므로 복드칸은 하야하고, 중국이 다시 외몽골의 통치권을 갖게 된다.
마음 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복드칸은 계속하여 복벽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따. 1920년, 서수쟁이 내지로 돌아가 직환전쟁에 참가한 것을 기회로 삼아, 제정러시아 백군의 장군 로만 폰 웅게른 슈테른베르크 남작에게 도움을 청한다. 백군은 금방 외몽골로 쳐들어와 일거에 서수쟁이 남겨둔 주둔군을 물리친다. 복드칸은 웅게른 남작의 지원하에 다시 황제에 올라 '대몽골국' 황제가 된다. 그의 처인 둔두크람(敦都克拉穆)은 다시 '황후'에 오른다.
그러나, 이때 외몽골의 권력은 이미 웅게른 남작의 손아귀에 쥐어지게 된다. 복드칸은 실제로 괴뢰황제가 된다. 비록 복드칸에게 약간의 정치적 수단이 있었지만, 그는 나이도 들었고, 게다가 두 눈을 실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정치적으로 가장 힘을 잃었을 때, 그와 여러 해동안 살아온 처가 1923년 병으로 사망한다. 복드칸은 아주 힘들어했고, 다시 황후를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련과 외몽골관리들의 압박으로 결국 황후를 다시 세우는데 동의한다.
바로 이런 상황하에서, 게네필이 황후로 선발된 것이다. 비록 신분은 존귀해지고, 원래 비천했던 가족에게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게네필은 황후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그녀는 젊고 예뻤다. 당연히 잘생긴 젊은이에게 시집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이들도 병을 앓고 있으며 두 눈을 실명한 복드칸을 보고 마음 속으로 크게 불만을 가진다.
결혼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게네필은 궁정생활에 싫증을 느낀다.
그녀는 궁중내에서, 각종 번잡한 예절을 지켜야 했을 뿐아니라, 일거일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감시받는다. 이는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궁정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다." 복드칸도 게네필의 심정을 이해했고, 그녀가 궁을 나가 친정집에 머물도록 허락한다. 다만 관리들은 "황제에 황후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게네필에게 복드칸의 곁으로 돌아가도록 압박했다.
당시는 온갖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록 웅게른 남작이 정권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그는 포악무도했으며, 반대파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게다가 그는 자주 복드칸을 모욕하여, 민중들이 원한을 품고 있었다.
수개월후, 외몽골로 쳐들어온 소련홍군은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 그후, 소련홍군은 파죽지세로 외몽골 전체 영토를 점령하고, 웅게른 남작은 처형당한다. 병든 복드칸은 종교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쏙하여 괴뢰황제로 있는다. 다만, 실권은 몽골인민당의 수령인 처이발상(喬巴山)등의 수중에 떨어진다.
외몽골에 소련식의 정권을 건립하기 위하여, 처이발상은 민중들이 신성시하는 복드칸을 독살한다. 그들의 윤허하에, 1년간 황후로 있던 게네필을 마침내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원래, 게네필은 드디어 자신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전혀 생각지 못하게, 소련은 외몽골을 개조하기 위하여, 일련의 대숙청운동을 벌인다. 그녀는 일찌기 황후를 지냈으므로, 대숙청명단에 들어간다.
1937년, 게네필은 체포당한다.
1938년 5월의 어느 날, 스탈린은 게네필의 총살형을 명령한다.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 게네필은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화장을 고치고 황후의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그녀의 옹용화귀(雍容華貴)한 이니지믄 금방 사진사에 의해 기록으로 남는다. 당시 그녀의 나이 35살이었다.
외몽골의 활불 복드칸은 제정러시아와 결탁하여 중국에서 독립한다. 그러나 그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제정러시아의 꼭두각시가 될 줄은 비록 황제에 올랐으나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개국황제인 동시에 마지막 황제가 된다. 그리고 게네필은 젊은 여자로서, 원래 청춘과 미모를 자랑할 나이인데, 풍운이 교차하는 시기에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역사사건 > 역사사건 (민국 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화민국"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7) | 2024.10.11 |
---|---|
북양육진(北洋六鎭)의 연혁과 최후 (2) | 2023.01.25 |
중국공산당 건당(建黨)의 내막 (0) | 2021.12.23 |
중국공산당 1대성립의 진상 (0) | 2021.12.02 |
타이타닉호의 중국인생존자 6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0) | 2021.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