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화(施化)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以史爲鑒). 단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역사를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지. 아마도 암중으로 모든 국가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문교과서에서는 일반적으로 본국의 역사를 가리킨다. 귀감은 거울이고, 고대인들은 동경(銅鏡)을 사용했다. 그래서 감(鑒)에 금(金)이 들어 있다. 거울에 비추어보는 주요목적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오점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더욱 완벽한 이미지와 비교하여 개선할 여지를 찾는 것이다. 만일 대상이 자기 자신만이라면 확실히 부족하다. 아마도 오점을 찾지 못하면 그냥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다. 세계는 이렇게 크고, 동서방 각국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고루과문(孤陋寡聞)하게 자신의 역사만 보게 되면 사고가 너무 협소해지고, 안목이 충분히 넓지 못하게 될 것이며, 쉽게 유치하고 간단한 저급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중국과 영국의 역사를 골라서 비교해 보고,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왜 영국이냐고 말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혹은 호주나 뉴질랜드와 비교해볼 수도 있을 테니까. 필자의 생각에 영국은 글로벌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다. 그렇다. 미국은 당금의 세계패주로 경제, 군사, 과학기술분야에서 모두 세계를 앞서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국은 항상 영국의 학생이었다. 미국이 당초 나라를 세울 때, 주로 참조한 제도모델은 모두 영국이다. 미국의 공식언어도 영어이다.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는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다. 미국역사는 300년이 되지 않고, 영국보다 훨씬 짧다. 그리고 처음 현대경제와 정치제도를 만든 것이 바로 영국이다. 일반인의 개념 속에서, 유태인이 당금세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 워싱턴DC같은 곳을. 기실 이는 오판이다. 영국이야말로 배후의 그 보이지 않는 손이다. 미리 세계국면을 결정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을 예로 들면, 전쟁을 오늘날의 이런 국면으로 이끈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나머지는 그저 따라왔을 뿐이다.
현재세계의 몇 곳 주요선진국을 비교해보면, 예를 들어, 미국,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비록 마찬가지로 경제쇠퇴를 겪고 있고, 선거가 혼란스러우며, 이민과 전쟁의 여파로 충격이 남아 있어 힘들게 지내고 있지만, 영국의 국면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이쏙, 미래에 대해서도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는다. 명목상으로는 이미 몰락한 제국이지만 그 어느 대국의 지도자도 영국을 무시하고 영국을 경시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중국인들는 미국만 보고 있고, 영국은 무시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너무 어리다. 학습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더욱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영국이라는 것을. 영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영국의 현실적 존재는 전세계에 본보기가 된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런 감탄을 내뱉는다: 하늘이 대영제국을 만들지 않았다면, 만고는 기나긴 밤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가끔 동경한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영국인처럼 가볍고 자유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대영제국3000년(A Short History of Britain)>이라는 책을 들고 있다. 작자는 영국학자 제레미 블랙이고, 번역자는 왕양(王揚)이다. 이 책은 상세한 사료를 정리하여 영국의 역사변천을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고학발굴에서 기원전1500년의 금팔찌를 발굴한 것에서부터 2014년 영국이 아일랜드독립 국민투표에 직면할 때까지, 로마정복에서 당금의 영국역사에 대하여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고 재평가했다. 이전에 읽었던 세계역사와 비교해보면 이 책의 논증은 기본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이중텐(易中天) 선생의 고증에 따르면, 중국은 실제고고학적 증거를 가진 역사가 3,500년에 지나지 않는다. 길이는 영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기나긴 농경사회를 거쳐, 지난세기에 비로소 공업화와 현대화를 이루었다. 영국도 마찬가지의 경력을 가졌다. 비록 시기는 몇백년 빠르기는 하지만. 중국과 영국 양국은 겉으로 보기에 서로 대립되는 동서 양측에 속한다. 그리고 하나는 내륙국가이고, 하나는 해양국가이다. 다만 양국의 역사는 모두 인류역사에 속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인성의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마땅히 유사한 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과 영국 양국을 비교해보기로 한다. 역사기록에서 같은 중대한 문제를 대하면서 어떤 관념상의 다른 점이 있을까?
왜 여기에서 관념을 비교하는가? 아주 자세하게 현실을 비교하지 않고? 왜냐하면 필자가 보기에 현실은 관념에서 나온다. 어떤 관념을 가졌느냐에 따라 어떤 현실이 나타난다. 사람의 관념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일단 관념이 바뀌면 운명도 바뀌게 된다. 이는 고금이래로 여러 저명한 사상가, 철학가들이 증명한 것이고, 더 이상 고증이 필요없다. 좋다 지금부터 비교해보자.
첫째, 대통일과 분치자치의 관념에서 서로 다르다. 이는 논증이 거의 필요없을 것이다. 중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대통일사상에 죽어라 매달리는 민족이다. 그중의 하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은 이 관념이 진나라제도에서 왔다고 본다. 마치 진시황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듯이. 다만, 되돌아보면, 역사는 여러번 기회를 주었다. 반드시 진나라제도를 지속하지 않아도 되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 양진남북조시대, 그리고 오늘날의 타이완해협을 사이에둔 분치까지. 그러나 중국인들은 죽어라 그렇게 하지 않았고,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여겼고, 죽음을 불사하고 통일하려 했다. 중국은 황제제도를 무너뜨린 이후에 분명히 한만몽장회, 홍황남백흑의 오족공화를 실시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런 차별을 굳이 무시하고, 의미도 불분명한 중화민족이라는 말로 바꾼다. 그 결과 매일 안정유지를 하려 하지만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고 있고, 매년 분열하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분열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영국인의 대통일관념은 전혀 다르다. 중국인의 생각과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함께 묶어서 지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걸 믿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영국은 여전히 4개의 분치되는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웨일즈. 이를 합쳐 대영연합완국(Great Britain)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큰형님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지 않다는 것이다. 잉글랜드는 과거 몇 차레 여러 동생들을 합병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고, 반대에 부닥치면 포기했다. 더더욱 무력을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둘째, 동생 셋은 차라리 분가하여 살기를 원했지, 함께 사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힘을 합쳐서 외적에 대항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지만, 좋은 점이 아무리 많더라도,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대처 수상은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국의 최대공헌은 유럽의 통일을 막은 것이라고. 수백년동안, 영국은 계속하여 유럽이 단일한 강국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막아왔다.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유럽은 일찌감치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런 통일은 이루어지면 자유는 없어지고, 정의도 없어질 것이다. 유럽의 몇몇 대통일을 추구한 강자들은 전후로 영국의 손에 무너졌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시저, 스페인의 카를로스1세, 러시아의 피요트르대제. 그리고 현재의 그 특공(特工)
둘째, 추구하는 기준의 고상한 정도에 대하여 관념이 다르다. 먼저 이게 무슨 뜻인지부터 설명해야 겠다. 사람은 항상 추구하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고상함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숭고한 도덕, 아름다운 사회, 사심없이 내심과 사상이 일치하는 집단. 어떤 사람은 그저 평범함을 추구한다. 중국의 3천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안목이 높았던 선인들이 계속하여 이어진 것같다. 공자는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그저 군왕에게 특별한 요구를 했을 뿐이고, 하층의 사농공상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뒤로갈수록 신비해지기 시작한다. 정주이학(程朱理學)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에게 자아반성, 수신양성을 요구한다. 현대에는 더욱 여러가지를 추가해서, 보통병사 혹은 분뇨를 치우는 노동자까지도 모두 순결하고 고상하고 이기심을 버려야 하게 되었다. 이런 관념은 듣기에는 아름다워서 반박할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문제는 수천년동안 엄청난 노력을 들였지만 조그만치라도 실현했을까? 아니다. 모조리 탁상공론이고, 남가일몽이다. 현재는 물러나서 차선책을 추구한다. 더 이상 보통사람들에게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관대작들에 대한 요구사항도 갈수록 기준이 내려간다. 부정부패로 천만 백만위안정도는 별 일이 아니다. 걸핏하면 수십억, 수백억의 부정부패사건이 발생하고 있고, 부패방지는 영원히 진행되고 있다.
영국을 보면 그런 실패는 없었다. 영국역사를 살펴보면, 그 어느 저명한 인물도 공자, 맹자, 주희 혹은 위대하 지도자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것때문에 우리 조상이 그들보다 고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천은 증명한다. 실제에 맞지 않고 해낼 수 업도 없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더욱 지혜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인은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영국인이 추구하는 것은 실질적이고 이해와 관련된 것이다. 고명한 치국의 이치는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말로 바꾸어 설명하자면,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너에게 무엇은 하지 말라고만 요구하는 것이다. "바람도 들어올 수 있고, 비도 들어올 수 있지만, 국왕은 들어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비바람이 치는 무너진 집과 관련하여 중국에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어떻게 하면 큰 집 천만칸을 지어서,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이 모두 환하게 웃도록 할 수 있을까?(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둘을 비교해보면, 후자는 확실히 헛소리이다. 누가 만들고, 누가 돈을 낼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순수하게 공상일 뿐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최고의 도덕준칙은 아주 간단하다. 스스로를 잊을 필요도 없고, 이기심을 버릴 필요도 없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 영국인은 누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보통으로 살면 된다. 그들은 사람 자체에 대한 요구기준이 아주 낮다. 그들은 다른 사람 자체에 대한 요구기준은 아주 낮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요구기준은 아주 높다. 1215년에 나온 <대헌장>은 왕도 법의 아래에 있고, 국왕이 온갖 일에 간섭하는 것을 막았다. 우크라이나에 스톰새도우미사일을 공급하면서 러시아에 맞서도록 하는 점은 시종 이런 정신이 일관되고 있는 것이다.
제도설계를 좋은 사람을 찾고 기르는데 둔다면 그것은 공상이 될 것이다. 그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에 어긋난다. 중국의 관리선발제도는 수천년간 실패했다. 그래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 만일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제도적으로 제약하면 충분하다. 이익을 취하고 해는 피하려는 인간본성에 부합하기 때문이고, 간단하고 효과적이면서 대량의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 방면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모두 그에 미치지 못했다. 보라. 프랑스의 단두대에서는 대량의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을 처형했고, 이는 이데올로기를 중시한 것이다. 소위 프랑스대혁명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망가뜨리고, 신체를 없애는 선례를 열었다. 나치독일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모두 중국전통과 매우 유사하다. 사정은 확실히 이렇게 간단하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군자가 되고, 신선같이 순결할 것을 요구하지 말라. 그저 각자의 본분을 지키고, 터무니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칭다오의 랜드로바녀처름 만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런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어려운가? 어렵지 않다. 이성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하한 사상교육, 도덕교육, 행위교육이 필요없다. 모두 쉽게 해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무슨 공산주의의 숭고한 이론같은 것이 필요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이상은 거꾸로 무수한 살기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현저한 관념의 차이는 서로 다른 의견이나 언론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엄격히 금지할 것이냐에 있다. 과도하게 대통일을 추구하고, 과도하게 고상함을 추구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과 언론을 대거 탄압하게 된다. 중국은 이 방면에서 자고이래로 최대한의 노력을 쏟았다.
중국에서, 엄격하게 사람의 사상과 언론을 제한하는 조치는 왕조가 거듭되면서 갈수록 심해졌다. <한서>의 기록에 따르면, 사마천의 외손자 양운(楊惲)은 문장 하나를 잘못써서 한선제(漢宣帝)에 의해 대역무도로 참형을 당한다. 조위말기, 계강(稽康)은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를 써 사마소(司馬昭)의 기분을 나쁘게 하여, 결국 동시에서 참형을 당한다. 송고종(宋高宗)은 "사람들을 살피는 부하들을 경성에 가득 깔아두어서, 조금만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붙잡아서 처벌했다." 원,명은 약간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끊이지는 않았다. 청나라의 문자옥은 더더욱 공전절후이다. 갈수록 통치가 안정될수록 더욱 심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비교하면 영국역사에서 발언이나 글로 인하여 죄를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누구든지 알고 있다.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마르크스도 바로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도서관에서 자본주의를 토벌하는 <자본론>을 썼다. 그리고 아무런 책임추궁도 받지 않았다. 영국은 지금까지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1695년 <허가증법>을 폐지한 후, 출판심사제도가 등록제로 바뀐 후에는 그러하다. 왜 그런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원인을 찾은 것같다.
<대영제국3000년>이라는 책에서 작자는 반대당 휘그당 조지 리틀턴의 <영국판페르시아인편지>의 한 마디를 인용하고 있다. 당시의 찰스1세를 평가하면서 "종고, 미덕, 영예, 심지어 국가의 이익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다." 관심있는 것은 그저 "개인의 이익"이다. 비록 그는 이에 대하여 크게 칭찬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중에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다. 여러분들도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보고자 한다. 양국의 역사관념을 비교해보면서 필자는 발견했다. 중국인은 자고이래로 거시적인 서사에 빠져 있었다. 무릇 고상할수록, 순수할수록 아름다울수록 좋은 것이다. 이렇게 되니, 목표설정이 매우 높았고, 관용도가 적어지게 된다.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엄하게 처벌한다. 이런 관념으로 살아가게 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있는 사람은 사라지게 된다. 그저 텅 빈 그림만 남게 된다. 영국인은 단지 실질적이 이해득실만 고려한다. 엄격히 말해서 자신의 이익이다. 사람의 이익을 만족시켜주면, 모두 받아들인다. 듣기에 비천한 것같지만, 영향이나 효과는 아주 크고 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 나라의 정계요인이 그저 거시적인 서사에만 골몰하게 되면 허구의 통일 혹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정치목표를 민생보다 우선하게 된다. 그렇게되면 백성의 사활은 신경쓰지 않는다(비록 자신의 사활은 신경을 쓰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한 나라의 백성이 만일 거대한 서사에만 주력하고, 실현불가능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통일사회를 만드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자신의 생로병사보다 우선시한다면,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된다. 그 자신의 사활조차도 돌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 아래가 모두 한 가지 일에 주목하면, 즉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이익을 주목하면, 이들 '종교, 미덕, 영예' 심지어 자신의 권익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부이익같은 것은 희미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적인 가치의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고, 집단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위기국면에서 나라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확실히 영국을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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