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후춘화(胡春華)의 재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은우시 2024. 9. 26. 10:57

글: 이정요(李淨瑤)

전 중공황태자이자 후진타오(胡錦濤)의 격대지정후계자인 후춘화가 최근 들어 자신만만하게 나타나서 내몽골을 시찰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분석한다: 후춘화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내가 돌아왔다"고 드러내는 것은 강력하게 복귀했다는 것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르게 분석한다. 후춘화가 재등장한 것은 분명 왕후닝(王滬寧)의 음모일 것이라고.

중국의 관영매체보도에 따르면,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정협 부주석 후춘화는 전국정협농업및농촌위원회 특별시찰단을 이끌고 내몽골을 시찰했다.

9월 9일, 내몽골자치구당위서기 쑨샤오핑(孫紹騁), 자치구당위부서기, 자치구인민정부주석 왕리샤(王莉霞), 자치구정협주석 장얜쿤(張延昆)이 후허하오터에서 후춘화를 맞이한다.

해외의 시사평론가인 왕펑(汪峰)은 이렇게 분석한다: 이전에 연속으로 외교활동을 벌이면서 모습을 드러낸 후, 후춘화가 내몽골을 시찰하였다. "내몽골로 되돌아와서 시찰하였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춘화의 발전노선은 자오쯔양(趙紫陽)과 동일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먼저 내몽골에서 서기를 지내고, 그후 광둥으로 가서 서기를 지낸다. 중앙최고위층이 고찰하고 배양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자오쯔양은 모두 내지의 변방지역에서 종교등 일련의 복잡한 소수민족문제를 처리하고, 그후 다시 부유한 연해성으로 가서 부를 어떻게 모으는지, 외부의 세계는 어떤지에 익숙해진다. 그후에 다시 중앙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왕펑에 따르면, 후춘화가 이번에 내몽골로 돌아간 것은 "사람들에게 후한싼(胡漢三,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가 돌아왔다는 대사로 유명함)이 되돌아왔다는 느낌을 준다." 대외적으로 자신의 정치적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자신이 정치적으로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심지어 다시 중용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주 농후하다.

"정치적인 활동은 모두 중앙에서 안배한다. 그렇다면 후한싼이 돌아오는 것같은 이렇게 분명한 활동을 안배했다는 것은 혹시 직접 후춘화를 낙마시키면서 치욕을 준 시진핑으로부터 크게 반감을 사는 일이 아닐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안배는 모두 시진핑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중앙핵심권의 하나의 중요한 암시는 우리가 다시 등소평이후 격대후계자가 미리 모습을 드러내어, 집단지도, 집단검토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후춘화ㅏ는 원래 지정된 후계자이다. 여러분들이 괜찮을지 봐달라. 우리가 그를 다시 모셔야할 것인지. 이런 암시와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왕펑에 따르면, 중공의 지도층에는 북한의 백두산혈통론같은 것은 없고, 그런 혈맥도 없지만, "다만 공상주의후계자의 본질은 홍색강산을 지키고 기득권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충성도도 있고, 재능도 있지만, 천명(天命)이 없다. 이것이 아마 중공의 현재 국면일 것이다.

전 중공내몽골관리인 두원(杜文)은 이렇게 말한다. 후춘화가 이번에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은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을 표시하려는 것이지, 시진핑에 대항하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6월에 태평양의 섬나라들을 방문한 후, 7월에는 3중전회에서 시진핑의 옆에 앉았다. 8월에는 전세계에서 후춘화가 중공총서기를 넘겨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9월에 후춘화가 자신만만하게 내몽골을 다시 찾아간다. "이미 주변으로 밀려난 전 황태자 후춘화에 있어서, 이는 존재감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다. 중공정협의 여러 부주석들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정치적 풍향은 심삼치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두원에 따르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비정상적인 시찰프로젝트라는 것이다. 3가지 정상을 벗어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전에, 전세계에 후춘화가 중공중앙총서기를 넘겨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돌았다.

둘째, 후춘화가 옛날에 근무했던 곳으로 돌아갔고, 당초 그를 중공중앙 정치국위원으로 당선시켰단 용흥지지(龍興之地)인 내몽골로 갔다는 것은 마치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셋째, 후춘화가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만만하게 내몽골자치구의 간부들을 접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이며, 위대한 영수 시주석만세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실제로 그는 시진핑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혐의가 있다."

후춘화는 삼중전회의 소조회의때 시진핑과 같은 줄에 앉았다.

후춘화의 재등장에 대하여 중공의 내부정치투쟁의 시각으로 보면, "배후에 중공내부 정치배치와 파벌투쟁의 더욱 심층적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두원에 따르면, 후춘화가 이번에 시찰한 주제는 농촌쓰레기처리와 농촌진흥이다. 이는 시진핑이 제기한 중요전략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후춘화의 이번 시찰이 시진핑노선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외적으로 자신이 시진핑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중공의 복잡한 투쟁과정에서 후춘화의 정치적 태도표현이다. 그는 시진핑에게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주변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후춘화는 스스로 시찰단을 이끌고 가는 일을 결정할 수 없다. 최소한 왕후닝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왕후닝의 개인성향으로 봐서 절대로 그런 아이디어를 낼 사람이 아니다. "후춘화에게 이렇게 많은 활동을 안배하는 것은 분명 시진핑이 동의한 것이다. 왕후닝이 이렇게 하는 것은 후춘화를 불위에 올려놓고 굽는 것이다."

두원에 따르면, 후춘화는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등장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어쨌든 장여우샤(張又俠)도 아니고, 왕샤오홍(王小洪)도 아니다.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이다.

"그는 시진핑이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아무리 충성심을 표시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그가 전면에 나선 것은 아마도 왕후닝의 음모일 것이다. 후춘화는 지금 리커창(李克强)의 전철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