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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오대십국)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민국(閩國): 망국의 조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by 중은우시 2024. 8. 20.

글: 춘추소력(春秋小歷)

오대십국시기에 복건은 민국이 할거하고 있었다. 민국의 경내에는 세 개의 중요한 성이 있다. 각각 복주(福州), 천주(泉州)와 건주(建州)였다.

복주는 민국의 도성이니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천주는 민국의 왕씨(王氏)가 발원한 곳이고, 경제도 가장 발달한 지역이니 중요한 세금원이었다. 건주는 군사요충지로,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전국이 영향을 받을 정도이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복주는 황제 왕연희(王延羲)가 차지하고 있고, 건주를 다스리는 사람은 자사(刺史) 왕연정(王延政)이며, 천주는 자사 왕계업(王繼業)이 관리하고 있었다.

왕연희와 왕연정은 이전에 여러번 갈등이 있었고,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쨌든 두 사람은 형제간이고, 금방 관계를 회복하고, 군신관계도 예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전쟁시기에 변화가 많을 수밖에 없고, 사람의 마음은 항상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의심이 많은 것은 군주의 천성이다. 어느날 왕연희는 궁안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건주의 왕연정이 천주의 왕계업을 자신의 휘하로 회유하여, 두 사람이 정치적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천주는 민국의 경제를 대표하고, 건주는 민국의 군사를 대표한다. 만일 왕계업과 왕연정이 손을 잡으면,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사서를 뒤져보면, 그 일을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치통감.권282>: "민왕 희는 왕연정이 서신을 보내 천주자사 왕계업을 회유했다고 들었다(聞)...."

이 '들었다'는 말은 아주 교묘하다. 즉 왕연희는 물증도 인증도 없다는 말이다. 그는 어디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린다. 왕연희는 두 말하지 않고, 직접 왕계업과 왕계업의 가족을 모두 복주로 불러들인 다음 죽여버린다.

원래 왕연희가 황제에 오를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임황제 왕계붕(王繼鵬)을 추적하여 죽이는 것이었고,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왕계업이었다.

안타깝게도 왕연희를 옹립하기 위하여 옛군주를 죽일 때, 왕계업은 아마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런 최후를 맞이할 줄은.

왕계업이 죽자, 왕연희는 아주 만족한다. 그러나 왕연정은 그렇지 못했다.

만일 왕연정이 정말 소문에서처럼 왕계업과 결맹을 맺으려다가 왕연희에게 사전에 발견된 것이라면, 자신의 의도가 이미 폭로되었으니, 형제간에 막 회복된 관계는 파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소문에 불과했다면, 왕계업은 억울하게 죽은 것이고, 역시 왕연정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천주와 건주는 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이다. 왕계업이 천주에 있었는데, 왕연희가 아무렇게나 이유를 찾아서 그를 손쉽게 죽여버릴 수있다면, 자신이 건주에 있더라도, 언젠가 그가 미쳐버리면 자신도 죽여버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왕계업의 죽음을 보면서 왕연정은 토사호비(兔死狐悲)의 심정이 된다. 그렇게 되니, 현제간의 갈등은 다시 터져버리게 되고, 왕연희와 왕연정은 다시 병력을 일으켜 싸우기 시작한다.

매년 전투를 벌이다보니 민국의 재정은 이미 고갈되었다. 그리고 민국의 역대황제는 아주 괴이한 정령을 집행한 바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주 백성들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천성3년, 928년, 십이월, 민국황제 왕연균(王延鈞)은 2만명의 백성을 강제로 출가시켜 승려로 만들었다.

천성5년, 940년, 칠월, 민국황제 왕연희는 다시 강제로 1만여명의 백성을 삭발하게 하여 절을 채웠다.

이런 행위는 실로 괴이하다. 절, 승려, 그들과 보통백성들은 그저 신분직업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황제시대의 승려들은 기실 적지 않은 특권을 누렸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면 개인과 사회는 거의 단절상태가 된다. 승려들은 그리하여 노동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요역과 병역도 면제된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많은 노비와 전답도 보유한다. 즉, 많은 백성들은 노역과 세금을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머리를 깍고 출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대십국과 시기적으로 가까운 당나라때, 무종멸불(武宗滅佛)이 있었다. 무종멸불의 원인은 당연히 당무종이 도교를 믿고 불교에 반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절이 대량의 토지를 차지하고 세금은 내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는 돈도 없고, 요역도 없어 국고수입에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무종은 명을 내려 절을 철거하고, 불경을 불태우고, 많은 승려들을 환속시켰다. 그리고 절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상당수 환수한다.

이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우연히 발생한 것도 아니다. 역사상 멸불을 행한 사람은 당무종만이 아니다. 북위의 태무제, 긜고 오대십국중 오대의 마지막 정권인 후주황제 주세종도 일찌기 멸불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한 바 있다.

왕연희는 타협했고, 다른 사람은 승려를 환속시키느라고 바빴는데, 민국은 매일 많은 백성들을 출가시켰다.

구체적인 원인은 당연히 민국의 몇대황제들이 모두 도교를 신앙하고 불교와 승려를 배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행위는 원래 부족한 재정을 더욱 고갈되게 만들었다.

왕연희가 왕연정과 신나게 싸우는 것도 기실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왕연정은 어쨌든 건주 하나를 가지고 있고, 왕연희는 건주를 제외한 전체 복건을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특히 왕연희가 왕계업을 죽이고 차지한 천주가 있어, 두 사람의 차이는 크게 나버린다.

예를 들어, 왕연정이 군대를 이끌고 정주(汀州, 지금의 복건 장정고성)를 칠 때, 왕연희는 움직일 수 있는 병마가 아주 많았다. 그리하여 즉시 천주와 장주(漳州)의 병마를 정주로 지원보낸다. 비록 왕연정의 전투력이 아주 강하긴 했지만, 왕연희가 사방에서 보내오는 증원군을 모두 당해낼 수는 없었다. 왕연정은 42회나 연속하여 공격했지만, 정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한다.

전쟁의 국면을 보면, 왕연정이 왕연희에 대하여 위협이 되기 어려웠다. 왕연희는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천천히 싸우면서 천천히 상대방을 소모시키면, 언젠가 왕연정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질 것이다.

외부의 압력이 줄어들었지만, 내부의 압력은 하루하루 커졌다. 왕연희는 득의만만하여, 교만하고 방종하게 된다. 복주성내에서 먹고 마시고 놀았으며,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그는 술마시기를 좋아했고, 술을 많이 마시만 사람을 마구 죽였다. 적지 않은 신하들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왕연희 본인이 정무에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조정은 거의 황폐화된다.

조정에 상서랑이 있는데, 이름은 진광일(陳光逸)이었다. 그는 왕연희가 매일 허튼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사적으로 그의 친구들과 애기할 때 국군이 도덕이 없으니, 민국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손에 망할 것이다. 신하된 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드려야겠다고 말한다.

친구는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이전에 황풍(黃諷), 황준(黃竣)의 일도 있지 않은가? 네가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그저 나방이 불길에 뛰어드는 꼴이 될 것이다.

당연히 진광일은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결심을 내린 문인이 어떤 때는 전쟁터의 무장보다도 고집이 셀 때가 있다. 얼마 후, 그는 직접 상소를 올린다. 상소문에서 왕연희가 군주로서 저지른 50개의 악행을 나열하고, 군주가 시정해주기를 간청했다. 왕연희는 그 상소문을 보고 대노하여 즉시 무사로 하여금 진광일을 채찍으로 내려치게 한다. 몇몇 무사가 굵은 채찍으로 수백대 내려치자, 진광일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터져나갔다. 그는 용서해달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왕연희는 더욱 분노하여, 사람을 불러 밧줄로 진광일의 목을 맨 다음 나무에 매단다. 진광일은 그래도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반나절을 매달려 있다가 결국 죽어버린다.

침묵이 어떤 때는 그 어느 말보다 힘을 가질 때가 있다.

나무에 매달려 죽은 진광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비록 그는 이미 더 이상 무엇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진광일의 죽음은 민국의 대신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진광일같은 사람조차도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누가 황제의 칼을 피할 수 있겠는가?

두렵다고 한다면 가장 두려운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바로 주문진(朱文進)과 연중우(連重遇)이다.

이 두 사람은 옛날 왕계붕을 몰아내고 왕연희를 황제로 앉힐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상과 현실을 차이가 있다. 주문진과 연중우가 왕계붕을 몰아내고 간접적으로 죽인 것은 시군(弑君)의 행위이다. 민간과 백성들은 불충불의한 자들에 대하여 반감이 크다. 그리하여 항간의 여론은 그들 둘에게 불리했다. 두 사람은 그후에 왕연희를 옹립했지만, 왕연희는 그들에게 감사해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이 두 사람이 군왕을 죽인 것으로 인해 두 사람을 꺼려한다. 너희 둘은 왕계붕도 죽였는데, 언젠가 나도 죽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나는 먼저 너희들을 방비해야겠다.

백성들도 싫어하고, 황제도 의심하니, 주문진과 연중우는 안팎으로 곤경에 빠진 셈이다. 두 사람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모두 우리를 싫어하니 우리끼리라도 뭉치자. 그리하여 주문진과 연중우는 자녀를 결혼시켜 인척관계가 되어 서로 협력한다.

두 사람이 결맹을 맺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일단 결맹을 맺자 일이 좋지 않게 되었다. 왕연희는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인데, 그들 둘이 정략결혼을 하는 것을 보자 의심하기 시작한다. 너희가 왜 결맹을 맺는 것이냐. 황제는 두 사람이 모반을 꾀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진광일과 달랐다. 진광일은 그저 말만 하는 언관이어서, 죽여버리고 싶으면 죽이면 되지만, 주문진과 연중우는 지휘사였고, 병권을 쥐고 있었다. 가볍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먼저 시험을 한다. 왕연희는 두 사람을 불러서 연회를 베풀고 식사를 같이 한다. 그리고 연회중에 백거이의 시를 하나 읊는다.

유유인심상대간(惟有人心相對間)

지척지정부능료(咫尺之情不能料)

이는 사람의 마음은 지척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번역한다면 바로 왕연희는 이렇게 말한 셈이다: 나는 너희를 믿을 수가 없다.

왕연희는 가볍게 싯구를 하나 읊었지만, 주문진과 연중우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두 사람은 놀라서 술과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즉시 충성을 표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리높여 외쳤다:

"저희는 신하로서 군주를 어버이처럼 모십니다. 어찌 두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왕연희는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앞에 있는 신하들이 겉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전에 황준도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니었던가, 이전에 정원필도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니었던가? 유찬도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니었던가?

그들은 모두 충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동일한 최후를 맞았다.

왕연희가 보기에, 신하가 충성스럽던 충성스럽지 않던 관계가 없다. 그저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만 있을 뿐이다.

군주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권력이 있다. 그건 내가 현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대가 불충한 것도 아니다. 너의 결백은 너의 결백이고, 나의 천하는 나의 천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