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아들이 소학교를 다닐 때, 한번은 작문숙제를 가지고 왔다. 위에는 선생님이 쓴 평가가 쓰여 있었다. 숙제는 당연히 가장에게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아들은 숙제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에 '불합격'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작문은 더더구나 잘하는 과목이었다. 설마 이번에 엉망진창으로 썼단 말인가? 그건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자세히 읽어봤는데, 글내용은 금방 학교에서 단체로 본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었다.
감상문을 쓰는게 어려웠단 말인가?
그래서 한번 읽어보니 괜찮았다.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느낌상으로 글도 잘 이어지고, 용어도 기본적으로 적절하게 사용했으며, 서술도 단락을 나누었으며 논리구성도 큰 문제가 없었다. 오탈자도 거의 없었다. 내용에서 여러 곳에 소학생의 유치한 생각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 진실되고 사실적이었으며, 어떤 견해는 비교적 독창적이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해도 '불합격'의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으면서, 그거 별거 아니라는 반응이었고, 일찌감치 다른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는 학업성적에 대한 태도가 항상 이러했다.좋건 나쁘건 그저 담담했다. 여세무쟁(與世無爭)의 태도였다. 그러나 나는 곤혹감을 느낀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 면담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며칠 후 선생님을 만났다. 왜 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급히 해명했다: 모르시는게 있습니다. 이 감상문에 대하여 구의 교육위원회는 '표준답안'을 하달했습니다. '중심사상', '각개중점'에서 '결론'까지 모든 항목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라고 빠지면 점수를 깍게 되어 있습니다. 대조해보면, 당신 아들의 글은 '표준답안'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래서 '불합격'을 주는게 정상입니다.
듣고보니 명확했다. 근거도 분명했고, 일처리하기도 편할 것같았다. 선생님은 그저 간단하게 대조해서 평가라면 그만이다. 선생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비록 선생님의 해명이 모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감상문을 쓰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의 느낌이 사람마다 다른게 정상이 아닙니까. 모두 똑같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반드시 '이구동성'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까. 그 소위 '표준답안'은 누가 작성한 겁니까?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물며 소학생의 인식을 반드시 성년자의 기준으로 요구한다면, 그건 허위적이고 가식적이지 않습니까. 이건 실사구시라고 볼 수 없을 것같습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당신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감상문에는 당연히 '표준답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 상급기관에서 내려온 '표준답안'에 따라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면 학교는 상급기관에 올려도, 상급기관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 한명만 문제된느 것이 아니라 전체학교의 성적까지 문제됩니다. 하물며 만일 '감상문'의 답안은 각양각색이므로, 점수를 매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만일 낮은 점수를 주면 학생의 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더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아셔야할 것은 이런 것들은 모두 학교의 실적평가와 관련이 됩니다. 이건 교장부터 한명한명의 교직원까지 관련됩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잠시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다.
나도 당연히 이해한다. 내가 어찌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화가 천단칭(陳丹靑)이 한 말처럼 "우리 모두 먹고 살아야 한다. 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다."
한권의 책, 한편의 문장, 한편의 영화....모든 사람은 보고난 후에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에게 각자의 평가가 있을 것이다. 이건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한번 또 한번의 이해 속에서 상식은 모호해지고, 오래 지속되다보면 비상식이 아마도 상태(常態)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수십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우리는 모두 '표준답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던가?
다시 수천년을 되돌아보면, 우리 민족, 우리 국가는 계속하여 곳곳에서 '통일'된 '대일통'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실제로 너무나 '통일'을 좋아한다. 국가도 통일되어야 하고, 보조도 통일되어야 하고, 언어문자도 통일되어야 하고, 사상과 꿈도 통일되어야 하며, 심지어 한때는 머리모양, 장신구, 취미등도 통일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소학생 작문의 답안도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저 이 일련의 '통일'과 '표준답안' 으로 인하여, 수천수만의 아동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말살되고, 무수한 성년자들의 자주사고능력도 억제되게 되었다. '표준답안'은 항상 상부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자신이 머리를 굴려서 생각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관여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오래되다보면, 사상이 나태해지고, 책임감이 멀어지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표준답안'의 환경속에서 생활해온 관리는 일찌감치 퇴화되어 자아사고능력이 없는 예스맨이자 순치(馴致)도구가 되어버렸다. 결과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표준답안'을 기다리고, 모든 일은 '기다리는' 중에 가장 통제불능한 결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특히 사회에 필요한 모든 활력은 이런 피동과 부작위과정에서 모조리 소모되어 버린다....
이건 부정부패, 사리도모,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것 심지어 국가와 민족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그런 '극품'관리에까지 가지도 않는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가 점진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능력을 잃게 된다면, 모든 고언대지(高言大志)는 공동무력(空洞無力)한 구호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개혁' '혁신'같은 주장은 아무리 하늘이 울리도록 소리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일종의 정신적자위같은 잠꼬대이다. 그 자신만만하던 '우회추월'은 까놓고 말해서 다른 사람의 뒤에서 베끼고, 따라하며, 결국 창피하지만 표절하겠다는 말이다. 이미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중국특색'이라는 것도 일종의 비상식, 역추세, 자설자화(自說自話), 문명과 점점 멀어지는 깡패집단의 자조일 뿐이다.
이번 '감상문사건'은 내가 깊이 생각해보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자유정신과 개인창조성을 말살하는 교육은 반드시 죽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만일 교육위기, 의료위기, 양로위기, 언론출판자유를 포함한 헌정위기 및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정부신뢰위기가 일찌기 74년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면, 이 민족의 정신위기는 수천년전부터 이미 씨가 뿌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국가는 정신이 필요하다. 강렬한 민주정신과 자유사명을 가진 인인지사(仁人志士)와 공민집단이 필요하다. 만일 일군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일에 머리를 굴려보고, 의문을 제기하고, 탐색하고, 따지지 않는다면 독립정신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법치관념은 더더욱 헛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좋은 제도를 건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정신은 제도보다 더욱 기본이고,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정신을 해방하려면, 마땅히 '표준답안'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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