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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일본인 상사를 모시고 중국출장을 다녀오다

by 중은우시 2023. 4. 22.

글: 재수일방(在水一方)

 

캐나다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 맨 처음 잡은 일자리는 S제약회사였다. S제약회사는 중국산둥의 어느 대형제약회사로부터 원료를 수입해온지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의 의약품관리법에 따라, 제약회사는 정기적으로 원료제공공장의 생산과정, 제품품질, 검사방법, 실험기록 및 제품창고보관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회사에 들어간지 몇달 후, 6월에 통역으로 공장장과 품질관리부 부장을 모시고 중국제약회사로 1주일간 정기검사를 나가야 한다고 통보받았다. 비록 이 일은 2년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출장때 본 약간의 사건들은 나에게 깊이 기억되었다.

 

막 출장소식을 들었을 때는 흥분했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이 모두 칭다오(靑島)였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이번 기회에 칭다오에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며칠 전에, 일정표를 받았다. 일정표를 보고는 멍해졌다. 일정표는 아주 자세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시 몇분에 무엇을 하는지가 분명하게 적혀 있었기 대문이다. 매일 일정이 꽉 차 있어서, 내가 따로 시간을 내서 놀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요행을 바랐다. 판매측인 중국은 제품을 더 많이 필기 위하여 분명히 구매측을 잘 접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약간의 활동도 어레인지해놓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중국에 도착한 후, 개인적으로 공장측의 책임자에게 몰래 물어보았다. 무슨 관광이나 자유활동시간이 있느냐고. "없다. 왜냐하면 일본측이 시간배분을 빠듯하게 했기 때문에, 매일 긴장 속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 일본인들은 아주 열심이고 매일 일하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1주일의 검사업무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올 때, 수퍼마켓에 들를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니, 무슨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는 것은 생각도 하 ㄹ수 없었다.

 

6월 중순의 산둥은 날씨가 이미 매우 더웠다. 낮에는 삼십몇도였고, 길거리의 일부 중국인들은 자그마한 배심(背心)만 걸치고 윗통을 드러내고 다녔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도 시원한 여름옷을 입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넥탕까지 매고서 일했다. 우리가 에어컨도 없는 방안에 들어섰을 때, 일본인들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라 양복을 벗지 않았다. 그들이 더워서 땀까지 줄줄 흘리는 것을 보자 정말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양복은 벗으시라고. 그러나 그들이 진지하게 생산과정을 검사하고, 조금도 더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나는 한 마디 말이 떠올랐다. 여름에 더위에 죽지 않는 일본남자. 즉,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 그래서 그 말이 입술앞까지 나왔지만 결국 내뱉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도 날씨가 더운 것외에 매일 통역업무로 쉴 틈이 없었다. 양쪽의 말을 모두 전해야 하다보니 비록 내가 일본측의 통역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중국인들 편이었다. 만에 하나 통역에서 부정확하게 전달해서 중국측의 수출에 영향을 줄까봐 걱정되어, 낮에는 긴장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야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최근에 중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은 업무때문에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그러다보니 올챙이배가 나오고, 지방간을 얻은 사람도 적지 않다. 출장간 1주일동안 이런 현상을 아주 깊이 느꼈다. 매일 저녁, 우리는 열정적으로 접대받았다. 매일 서로 다른 고급호텔에서 서로 다른 요리를 먹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하루 저녁에 몇병이 백주를 마시고, 스물몇병의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레드와인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술을 호탕하게 마시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우리를 접대하는 한 부장은 붉은색 술에서 흰색 술까지 마지막에는 한잔 한잔 노란색 술까지, 너무 마셔서 혓바닥이 굳어질 지경이 되면서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수선생, 당신은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일본인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해 주세요. 한글자도 빼면 안됩니다. 그들에게 말해주세요, 우리의 제품가격은 아주 싸고, 품질은 일류라고. 그들에게 더 많이 사달라고. 더 많이. 더 많이...." 그 부장을 보니, 두 눈은 흐릿해졌고, 말도 계속 반복했고, 술에 취해서 분명하게 말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죽어라 자신의 제품을 프로모션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감탄했다. 나는 사업을 하는 한 친척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매일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어느 정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벌고 있다고.

 

그외에,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중국인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방식이었다. 레드와인의 맛은 원레 비교적 쌉쌀하다. 설탕을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맛이 없는 것이다. 레드와인을 마시는 것은 원래 포도주의 그런 맛을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접대하는 사람은 포도주를 마실 때 콜라, 스프라이트같은 탄산음료를 술에 섞어서 같이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들에게 왜 포도주를 그렇게 마시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이러했다: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포도주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도주 1병은 수십병의 맥주가격인데, 맥주처럼 마구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뭐라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중국에서 포도주는 아주 비싸서, 중고급호텔에서 국산 장위(張裕) 제바이나(解百納) 1병이 300위안 혹은 더 비싸다고 한다. 수입한 포도주 가격은 더 엄청나고. 포도주 1병의 가격이 맥주 수십병의 가격에 해당하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포도주를 마시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출장간 1주일동안, 중국기업의 연소화정도는 나에게 의외라고 느끼게 했다. 감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부서의 업무세부사항을 검사했다. 매일, 2명의 해외판매부의 사람이 우리를 보살펴주는 것 외에 서로 다른 부서의 책임자들이 우리가 검사하는데 따라다녔다. 며칠동안, 나는 우리를 접대하는 각 부서의 부장들이 모두 3,40세가량의 젊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측의 두 명은 모두 반백을 넘긴 나이였고, 머리카락도 백발인 중년노인들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중국공장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왜 공장에 중노년 직원은 볼 수가 없느냐고. 우리를 따라다니던 소장(小張)이 이렇게 설명했다.현재 일자리에 공급수요간의 모순이 두드러진다. 젊은이들의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기회를 주기 위하여, 많은 기업은 직원들에게 우대조건을 내걸고 미리 명예퇴직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기업은 남은 근무기간의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퇴직을 장려한다. 그리하여 많은 40여세의 사람들이 일찌감치 퇴직자의 행렬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국내기업의 경영진은 젊어졌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한숨이 나왔다. 우리같은 사십여세의 중년여성이 해외에서는 아직도 가정을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국내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사람은 현재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고, 다음 일자리를 위하여 다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는가. 만일 국내에 살았다면, 우리는 은퇴할 준비를 해야한단 말인가? 보기에 해귀(海歸, 해외유학후 귀국한 사람)도 살기 힘들겠다. 우리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업무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늙었기 때문에, 귀국해도 우리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없다는 것이 아닌가.

 

이전에 나는 귀국후 아주 잘 살고 있는 해귀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이번 출장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귀국은 그저 친척방문, 관광, 고향을 다시 찾아보는 것이다. 만일 정말 해귀가 되려고 한다면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과거 십여년간 비약적으로 변화했고, 초기에 출국한 우리같은 경우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위가 이미 더 이상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 가장 실질적인 생각은 스스로 더욱 마음을 다잡고 타향을 고향으로 삼아 우리가 가진 환경을 귀하게 여기면서, 자유롭고 간단하게 조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