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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롼샤오환(阮曉寰): 상하이 보통공민이 어떻게 "국가의 적"이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23. 3. 30.

글: NOOCN

 

45세의 롼샤오환(阮曉寰)은 처의 눈에 이상주의자이고, 독서를 좋아하는 기술천재이다. 사회공정에 관심을 가진 보통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것으로 인하여 '국가의 적'이 되었으며, 최근들어 7년형이라는 중형을 받게 되었을까?

 

4,497일동안 712편의 블로그글을 올렸다. 2009년 1월 15일에 블로그계정을 만든 후 2021년 5월 9일 마지막 글을 올릴 때까지 계속하여 글을 올린 중국블로서 "편정수상(編程隨想)"의 전설적인 역정은 그 운영자인 롼샤오환이 최근 7년의 중형을 받는 '죄증'이 된다.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올린 후 지금까지, "편정수상"이라는 계정은 사라진지 이미 2년이 되었다. 그 이전에 이 블로거는 자주 "방화벽우회기술"을 알려주고, 시정평론을 실어서, 많은 네티즌들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다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은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위챗단체방채팅기록때문이다. 그 기록을 보면, 롼샤오환의 처인 베이(貝)여사는 이웃들과의 단체방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이 상소하며 변호사를 선임하려다가 사건담당자로부터 강제로 훈화를 들으며 압박을 받은 적이 있고, 남편의 '편정수상' 블로거의 신분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웃들이 그녀의 개인적인 안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편정수상"이 처음으로 롼샤오환이라는 이름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이전에, 비록 "편정수상"이 체포되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진짜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인터넷에서 과학기술과 기본정치상식을 보급해준 신비한 블로거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금년 45세의 롼샤오환은 2021년 5월 10일 경찰에 의해 상하이의 집에서 끌려간다. 다음 날 형사구류당하고, 같은 해 6월 17일, 구속된다. 10월에는 상하이시제2중급법원에 기소되었고, 10월 13일에 입건되어 심리되기 시작한다. 

 

2023년 2월 10일, 롼샤오환은 "국가정권전복선동죄"로 유기징역7년형, 정치권리박탈12년형을 받고, 벌금2만위안도 추가된다. 1심판결문이 공표되면서, 말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 이 사건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해외의 인터넷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롼샤오환에 대한 중형에 항의하고, 그를 성원하면서 그를 "기술로 독재에 대항한 영웅"으로 찬양하고 있다.

 

"나는 그의 행위가 국가정권전복선동을 구성한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최근 롼샤오환의 처인 베이여사는 NGOC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롼샤오환이 체포된 후, 관련 블로그글을 자신이 썼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국가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전에 그는 이웃들과의 위챗단체방에서 자신의 남편을 이렇게 변호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정보안전시스템 수석엔지니어였고, 그는 국가를 위해 공헌했다." "그는 애국적인 사람이다."

 돌연한 체포

 

2021년 5월 10일 낮12시경, 상하이 양푸구(楊浦區)의 베이여사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오전에 배달시킨 생수가 온 줄 알았다. 별 생각없이 당시 서재에 있던 남편 롼샤오환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소리쳤다. 조금 지나서, 그녀는 문앞에서 들려오는 "꼼짝마!"라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급히 문앞으로 달려갔고, 그제서야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몸이 마른 남자 한명이 집안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주거침입강도인가?" 베이여사가 신분이 불명확한 침입자에게 소리쳤다.

 

앞장섰던 남자는 신분증을 꺼내서, 자신은 사건을 담당하는 공안인원이라고 밝힌다. 그후 차례차례 근 열명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경찰복을 입었고, 어떤 사람은 사복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집안으로 들어와 먼저 서재를 수색한다(즉, 롼샤오환이 평소에 일하는 곳이다). 시간은 아주 길었고, "거의 방안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그후 다시 다른 방을 하나하나 수색한다.

 

"그들은 개략 10명가량이었다. 3,4명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를 (수색하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2.3명은 거실에 있고, 3,4명은 서재에 있었으며, 서로 임무를 바꾸기도 했다." 베이여사의 말이다.

 

수색기간동안, 사건담당자들은 수시로 베이여사에게 상투적인 말을 내뱉었다. 롼샤오환이 해외플랫폼에 발표한 글이 "국가정권전복선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며, 사건이 아주 엄중하고 ,롼샤오환은 5년이상의 형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수색은 다음날 새벽2,3시까지 지속되었다. 베이여사는 상하이 양푸구공안국으로 끌려가서 질문을 받았고, 남편은 옆의 심문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7시가량이 되어서 비로소 경찰은 경찰차로 그녀를 주소지로 돌려보낸다.

 

남편이 체포된 날, 베이여사는 "자신의 머리가 텅 빈 것같았다"고 말한다. 핸드폰도 몰수당하여, 도움을 구할 방법도 없고, 인터넷에 들어가 이렇게 집안으로 들어와서 수색하는 것이 합법인지 여부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녀는 무력감을 깊이 느켰다. 그녀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그녀가 사건담당자에게 수색영장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상대방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중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안제복을입고 사건을 처리하는데, 네가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수색영장은 삼일째 되는 날 베이여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롼샤오환이 끌려간지 2주후에 그녀는 비로소 관련 구류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베이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체포된 후 1달동안, 그녀의 몸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초초와 걱정으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이 도대체 무슨 글을 서서 이렇게 엄중한 죄명이 붙여지게 된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년내내 기술업무에 종사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정보안정보장에 거대한 공헌을 했던 남편에게 '국가정권전복선동죄"라는 죄명이 씌워졌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기억한다. 남편이 끌려간지 몇달 후, 한 이웃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공안은 체포에 나서기 몇달전에 그녀의 집 위층의 집을 임대해서, 그들을 감청했다고. 건너편의 동에서도 그들의 주소를 감시하는 인원이 있었다고. 이것들은 단지 이웃에서 말해준 것일 뿐이지만, 그녀로 하여금 예전의 몇가지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억나게 만들었다. 그때 윗층의 화장실에서는 자주 누수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녀와 롼샤오환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건물관리소에서 검사하는데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상대방은 문을 여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가 또 생각나는 것은 남편이 체포되기 전 1,2년동안 그가 자주 그녀에게 집안에서 자주 인터넷이 끊어진다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주 인터넷에서 이상현상이 발견되니 그는 더욱 조심했다. 어떤 때는 둘이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자주 '돌아가봐야겠다'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이상한 점이 없는지를 조사하곤 했었다. 이런 '흔적'들은 모두 그가 체포된 후에 줄줄이 생각난 것들이다.

2021년 5월 10일, 롼샤오환이 경찰에 체포될 때 충돌로 안경이 부서졌다.

비밀재판

 

안경알 하나가 깨어져 금이 간 안경이 말없이 집에 놓여 있다. 이건 2021년 5월 10일 그날, 롼샤오환이 체포될 때,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면서 부서진 안경이다. "우리가 새 안경을 그에게 하나 주겠다" 체포당일 경찰은 부서진 안경을 그녀에게 돌려준다. 

 

그날부터, 2023년 2월 10일 공개적으로 판결선고할 때까지, 근 2년의 시간동안 롼샤오환의 상황은 외부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들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비록 구류증서와 체포층에는 롼샤오환이 '국가정권전복선동죄'혐의를 받고 있다고 되어 있지만, 베이여사에 있어서 오랫동안 그녀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블로거 '편정수상'이 자신의 남편인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이전에 무엇을 쓰고 무엇을 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평상시에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기억하는 것은 대학때 그가 '64'에 관한 일을 얘기한 것이 있었고, 그후에는 그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의 회고이다.

 

1996년, 그들은 함께 화동이공대학 화공계에 입학한다. 대학때, 그들은 자주 저녁에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베이여사의 눈에, 롼샤오환은 천문지리, 과학기술, 철학역사를 모두 잘 알았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항상 그가 책도 많이 읽고, 지식도 광범위하다는데 놀라곤 했다.

 

졸업후, 롼샤오환은 네트워크안전업계에 들어가고, 베이여사는 외국기업에 들어간다. 2004년 그들은 결혼했고, 결혼후 서로 바쁘다보니 사로 얘기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베이여사는 이렇게 기억한다. 비록 롼샤오환이 스스로 일부 핫이슈들을 얘기한 적도 있고, 일부 사회문제를 비판한 적도 있지만, 정치를 언급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고. 그리고 외자기업에서 느슨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그녀는 그런 점들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 자신은 정치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그녀와 롼샤오환이 정치를 얘기하는 일을 그래서 더욱 적었다. 다만 그가 가끔 일부 시사문제를 얘기하면서, "너는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정치는 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같은 말은 한 적은 있다.

 

가족들의 롼샤오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그는 평소에 그다지 '극단'적이지 않았다. 한번도 자신이 '편정수상' 블로거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멍해졌다." 그의 모친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은 그가 단지 인터넷의 글을 보고 일부 민감한 견해를 발표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은 중공건당백주년이어서, 인터넷경찰이 감시감독을 강화했기 때문에 잡힌 것이라고. 바로 가족들은 '그렇게 심각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은 단지 상하이 현지의 변호사를 선임해서 롼샤오환을 변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변호사의 개입도 순조롭지 못했다. 베이여사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은 전후로 3차례 변호사를 선임했다. 모두 상하이 현지변호사들이다. 그너나 변호사들은 모두 관련기관에서 '기밀유지합의서'에 서명하도록 요구받았고, 가족들에게도 사건내용을 공개할 수없도록 했다.

 

베이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건수사기간동안, 그녀는 변호사들이 롼샤오환을 면담하도록 보냈지만, 사건담당기관은 변호사의 면담은 수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래서 전체 수사기간동안 변호사접견은 허용되지 않았다. 비록 가족들은 이것이 법률규정에 위반되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고, 여러번 신방국(信訪局)에 진정을 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2021년 8월중순에 이르러, 사건이 검찰원으로 이송되었고, 가족이 여러번 독촉하고 간청하자, 변호사가 마침내 9월 29일 처음 롼샤오환을 접견할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그가 체포된지 4개월반이 지난 후였다. 변호사는 롼샤오환을 접견한 후, 베이여사에게 롼샤오환이 이미 죄를 인정했다고 말해주었다. 베이여사는 행위사실을 인정한 것인지, 죄를 지어서 벌을 받겠다고 인정한 것인지를 추궁했지만, 변호사는 애매모호하게 답변할 뿐이었다. 2021년 10월 1일, 베이여사는 검찰원에 편지를 써서, 사건의 성격규정에 대한 의문을 표시한다.

 

2021년 10월 13일, 상하이시제2중급인민법원에서 입건심리를 시작한다. 2022년 3월, 상하이에서는 팬데믹으로 사건심리가 '중지'된다. 2022년 6,7월에 이르러, 상하이의 봉쇄가 점진적으로 풀렸다. 그러나 가족은 재판이 여전히 중지상태라고만 통보받았다. 롼샤오환의 나이많은 부모(85세의 부친과 76세의 모친)은 법관에게 전화를 해서 하루빨리 재판을 재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저 끝도없이 중지상태로 남겨두지 말고. 그러나 받은 대답은 "현재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쌓인 사건이 너무 많다. 당신들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달라."

 

"설마 팬데믹이 끝나지 않으면 사건은 계속 중지상태로 둘 것인가?" 베이여사는 그에 대하여 이해도 하지 못하고 분노도 느꼈다. 2022년 12월에 이르러, 전국의 봉쇄가 풀렸을 때도 이 사건은 여전히 재판이 재개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2023년 2월 7일이 된다. 이 사건은 돌연 생각지도 못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날 변호사가 베이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남편사건이 3일후에 공개적으로 판결선고할 것이니, 가족이 법정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황당한 점은 그 이전 몇달동안, 가족들에게 이 사건이 재개되었다는 것을 전혀 통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이여사는 은연중에 알게 되었다. 2021년 12월경 이 사건은 이미 개정심리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몇차례 심리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던 절차로 인하여 재판이 이렇게 오래 끌면서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나중에 팬데믹으로 '중지'되어 전체 재판기간이 1년4개월이나 걸리게 된 것이다.

 

공개판결선고통지가 너무 돌연한 것이고, 롼샤오환의 푸젠에 사시는 부모님은 나이도 많아서 제 시간에 법정에 출석할 수가 없었다. 판결선고당일, 오직 베이여사 혼자만 가족으로 법정에 나갔다. 방청석에는 5,6명의 공안도 와 있었다.

 

"컴퓨터에 미치고 독서를 좋아하는 기술광" 부모의 눈에는 정직한 아이였다.

 

사건발생후 근 2년동안 롼샤오환의 가족은 대외적으로 조용히 지냈다. 베이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주로 가족이 원래 그가 블로거라는 신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썼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내용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대외적으로 시끄럽게 떠들면 사법부서에 밉보여서 판결에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1심판결서의 내용은 베이여사의 의심을 가중시켰다. 그녀가 보기에 판결서는 많은 정보를 은폐했다. 판결서에는 롼샤오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가정권전복을 선동하는 글을 썼는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그의 개인블로그계정이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반드시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숨기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는 사건의 전인후과를 명확히 파악해보고자 했다. 다만 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다. 2021년 남편이 체포된 날, 그녀의 화웨이 MateBook, 애플핸드폰등은 모두 경찰이 압수해갔다. 그리고 패스워드도 요구하여, 검사하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비로소 경찰이 그녀에게 돌여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경고했다: MateBook으로 영상을 보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민감'한 사이트에는 들어가지 말라. 이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MateBook, 핸드폰등 통신설비가 감시를 당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집안에도 도청설비가 있을 수 있었따.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PC방으로 가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다.

 

인터넷에서 베이여사는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바로 매체에서 보도된 바 있는 2021년 5월 연락이 끊긴 '편정수상'블로거라는 것을. 그녀는 생각해냈다. 사건담당경찰이 그녀에게 얘기해준 것을 롼샤오환이 700여편의 블로그글을 쓴 바 있으며, "그중 100여편은 국가정권전복선동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던 것을. 그녀는 또 다른 것도 생각이 났다. 남편은 <V for Vendetta>라는 영화를 좋아했다는 것을 거기에는 얼굴에 가면을 쓰고 독재정부에 항거하는 자유투사가 있다. 즉 "V"이다. '편정수상'이 존경하고 숭상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시간, 글을 올린 수량, 글 쓰는 말투, 가치관등이 완전히 부합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이 '편정수상'블로거라고 확인한다. 남편의 인터넷신분을 찾아내는 과정은 그녀로 하여금 이전 2년간 풀리지않던 수수께끼도 풀리게 해주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남편은 일상생활외에 이런 일면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어떤 단어를 써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그가 왜 이렇게 중한 판결을 받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베이여사는 남편이 '편정수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참지 못하고 PC방에서 통곡을 한다.

 

처가 보기에, 롼샤오환은 그저 컴퓨터에 미치고, 독서를 아주 좋아하는 기술광이다. "정치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베이여사의 기억에 전체 본과에서 배운 것은 화학공업전공이다. 그러나 롼샤오환은 컴퓨터기술과 소프트웨어개발에 열중했다. 대학에 다닐 때, 그는 기숙사룸메이트들과 돈을 모아 컴퓨터를 한 대 구매하고, 윤번제로 연습했다. 컴퓨터를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하여, 그는 전공과목까지 포기하면서, 룸메이트들이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기숙사방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곤 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였기 때문에, 그의 뛰어난 컴퓨터수준은 이미 학교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된다. 친구들은 컴퓨터에 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바로 그를 찾아와서 물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하나 대답해줄 뿐아니라, 매주화요일에는 질의응답시간까지 가져서, 그들이 컴퓨터능력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롼샤오환의 부모가 보기에,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주 정직했고, 남을 돕기 좋아했다. "초등학교 2,3학년때, 그는 등교하는 길에 돈을 주웠는데, 그 자리에 서서 돈을 잃은 사람이 찾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나중에 수업에 늦을 것같으니 학교로 가서, 선생님에게 돈을 주었다." 이것이 부모의 아들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 이미 은퇴한 대학교수인 부친은 이미 85세이고, 모친은 이미 76세이다. 노인들은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처가 보기에, 대학때 롼샤오환은 순박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이고, 남을 도와주기를 즐겨했으며, 박식하고 연구를 좋아하는 특징을 지녀서 그녀가 끌렸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결국 부부로 맺어지게 되었다.

 

일찌기 공부를 포기하고 소프트웨어개발을 했다. 무상으로 오픈소스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은 사회에 대한 최대의 공헌이다.

 

베이여사에 따르면, 대학동안 롼샤오환은 비록 컴퓨터을 독학했지만, 비범한 실력은 대학 컴퓨터학과의 교수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대학3학년때, 그는 학교에서 만든 컴퓨터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전공분야임에도 특별히 초빙받아 컴퓨터학과 교수들의 연구팀에 들어갔다. 심지어, 교수들은 롼샤오환의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이런 우수한 아들을 키워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대학4학년때, 그는 소프트웨어프로그램개발에 투신하다보니 화공과의 졸업절차를 마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졸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비록 교수는 그에게 컴퓨터학과로 전과할 것을 권했으며, 1년만 더 공부하면 컴퓨터학과의 졸업증서를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휴학을 선택하고, 소프트웨어개발에 전력투구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날로 새로워지는 기술을 익히려면 시간이 학위보다 중요하다고.

 

휴학후의 롼샤오환은 뛰어난 기술로 각 대형 네트워크안전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금방 프로그래머에서 프로젝트책임자, 기술부장, CTO로 승진한다. 2008년, 베이징 치밍싱천(啓明星辰)회사는 북경올림픽 정보안전계통의 프로젝트를 따낸다. 당시 롼샤오환은 회사의 연구개발총감이었다. 그는 이로 인하여 올림픽정보안전보장시스템의 수석엔지니어와 프로젝트책임자가 된다. 그가 '연구개발팀을 이끌고 고품질로 올림픽정보안전보장임무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회사의 표창을 받는다. 

 

2012년경, 롼샤오환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첨단기술쪽을 연구하기 위해 이직한다. 이직후, 그는 '업무장소'를 회사에서 자신의 서재로 옮긴다. 그때부터 독자적인 연구를 개시하고, 무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가 보기에,  무상으로 오픈소스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을 보고, 뉴스를 보면서, 식사하는 시간과 매주 고정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시간외에는 거의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베이여사가 보기에, 이직후의 그는 심지어 재직때보다 더 바빴다. "내가 평소에 그에게 서재에서 나와서 식사하라고 불러도, 그는 짜증을 내곤 했다."

2014년 여행할 때의 롼샤오환

이런 '워크홀릭'의 특징은 '편정수상'의 블로그에서도 확인된다. 2017년 11월의 가을, 롼샤오환의 과민성천식이 발작한다. 호르몬약물주사로 온몸에 홍피병(紅皮病, 피부가 박탈되는 병)을 앓고, 병세가 심각했다. 의사는 직접 입원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쉬겠다고 고집한다. 베이여사는 당시에 별 생각이 없이 단지 그가 병원의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겨 동의했었다. 집에 돌아와서 병상에 누운지 십여일도 되지 않아, 그의 병문안을 하고 있던 모친에게 컴퓨터를 침실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 지금 베이여사는 알게 되었다. 바로 병으로 고생하는 기간에도 그는 블로그를 갱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괴롭다. 그때 그는 정말 몸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그가 돌연 죽음을 당할까봐 겁내고 있을 정도였다." 같은 시간대에 편정수상의 블로그글에서는 매번 '최근 너무 바빠서' 글을 너무 늦게 올려 미안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남편의 그런 집착을 생각하면 그녀는 오열을 금할 수 없다.

 

베이여사의 마음 속에, 롼샤오환은 이상주의자이다. 그녀에 따르면, 그가 주목하는 이슈에 대하여 아주 집착한다. 오랫동안 네트워크안전업무를 하면서 그는 세부적인 사항에 유의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엄격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외에 그는 박학다식하고, 평소에 독서를 좋아한다. 2,3일에 한권씩을 읽었고, 독서량이 엄청났다. 심지어 어떤 때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약간 '미쳐보이기도 했다' 자주 사람들에게 권장서적리스트를 제공한다. 어떤 때는 베이여사에게 추천해준 책을 읽지 않았다고 책망했다. "그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이 끊기지 않고 줄줄 얘기하면서 끝까지 얘기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같은 수준이 아니라고 여기면 그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 '과학기술광인'이 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남편의 사건이 터진 후, 과거를 돌아보면서, 베이여사는 생각이 났다. 롼샤오환의 가치관과 성격을 생각하면 그게 이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해동안 같이 살면서 그녀는 그에게서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먼저 천하의 일을 걱정하고 그 후에 개인의 일을 걱정한다)는 가국정회(家國情懷)가 있었다. 그리고 불공정한 사회현상을 바꿔야 한다는 갈망이 있었다. '지식을 가지고, 정회를 가지고 또한 애국자로서" 그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녀의 소개에 따르면, 롼샤오환은 사회의 시사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기억한다. 그가 일찌기 국내암치료의 비싼 치료비를 비판한 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적지 않은 의료치료방안은 그저 경제적인 효과만 생각하고, 인성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비판했다. 그의 모친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자신은 환경오염이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걱정된다고.

 

사실상, 롼샤오환의 성장경력은 그의 블로그글에서도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편정수상'의 블로그개설소개에 따르면, 그는 2009년 1월 15일 블로그를 개설한 초기에, 단지 일부 프로그램과 기술연구개발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심리상태는 몇달후에 바뀌게 된다. 2009년 6월 11일 롼샤오환은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린다. 제목은 <기술이외의 것도 써야겠다>. 이 글에서, 그는 당시(64 20주년) 5,6월, 당국이 여러 사이트를 봉쇄했는데, 거기에는 5월에 봉쇄한 SpotSport, 6월에 봉쇄한 트위터, 빙등이 포함된다. 비록 당국은 일찌감치 1998년경 창청(長城) 방화벽을 가동했지만, 단기간내에 계쏙하여 봉쇄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기술이 미치는 자유공간이 급속히 축소된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봉쇄) 뉴스를 보면, 마치 '위광정(偉光正, 위대, 광영, 정확을 줄인 말로 당국을 가리킴)'은 인터넷국제출구의 GFW(창청방화벽, Great Fire Wall의 약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서, 한걸음 더 나가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컴퓨터마다 GFW를 설치하도록 하여, 모든 정보를 당의 손아귀에 완전하게 장악하고자 한다. 만일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여러분에게 자유라고 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인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아마도 그는 기술로 자유와 인권을 더욱 탄압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성격속의 정직과 따지는 성격으로 인하여, 그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결심을 실행한다. "기술이외의 것들을 쓴다" 그후, 그는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블로그에서 네티즌들을 도와 방화벽을 우회하고, 신분을 숨기고, 봉쇄된 뉴스의 데이타를 드러나게 하고, 각종 서적을 나누고, 대량의 정치평론을 쓰게 된다. "류샤오보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부터 "64기념"까지 그리고 "쟈스민혁명", "709대체포"에서 홍콩의 '반송중운동'까지, 그리고 다시 신장면화와 우한폐렴까지 근 10년간의 대사건에 대하여 거의 모두 그는 평론을 남긴다. 2021년 5월 9일, 즉 그가 체포되기 전날에도 그는 여전히 <민주를 논한다>등의 정치서적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것들을 보았을 때 나는 후회되었다. 나는 자신이 좀더 일찍 방화벽우회를 배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일찌감치 그의 신분을 알았을 것이다. 1심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때도 더욱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을 겪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나의 남편이 그런 일을 한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베이여사의 말이다.

 

처는 법정에서 그의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본다. 부모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할까' 걱정한다.

 

시간이 1년 9개월 흘러, 2023년 2월 10일 판결선고하는 날, 베이여사는 다시 남편 롼샤오환을 볼 수 있었다.

 

법정에서는 마스크를 쓰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코 윗부분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그를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눈앞의 그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고, 몸이 놀랄 정도로 말라버렸다. "비록 체포되기 전에도 그는 흰머리가 있었지만, 그때는 흰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 안에 섞여 있었다. 지금은 검은 머리카락이 흰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 있다." 그녀는 이렇게 형용했다. "나와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는데, 한번도 그가 이렇게 마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힘들 때라고 해도 그런 적이 없었다." 이는 이전 1심변호사가 그에게 말해준 '그의 상태는 아주 좋다'는 것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마음이 크게 아팠다. 

 

재판이 끝난 후, 롼샤오환은 두 명의 법정경위에게 끌려갔다. 그동안 그는 계속 고개를 돌려 베이여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눈빛에는 불공정한 고초를 많이 겪었다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베이여사는 마스크 속에서 가볍게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상소!'

 

"나는 당시 내가 그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남편이 법정에서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낸 것을 그녀는 계속 마음 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외에 1심판결문에서 남편의 행위를 인정하는데 명백한 잘못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법불공정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판결문에는 심지어 롼샤오환이 어떤 '전복선동' 글을 실었는지도 열거하지 않았다. 그녀는 NGOCN에 이렇게 말한다. 판결문의 증거물 속에 언급된 압수된 애플핸드폰은 롼샤오환의 것이 아니고, 그녀 자신의 것이다; 판결서에 언급된 샤오미 핸드폰은 고장나서 계속 거실에 놓아두었고, 아무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두 개의 핸드폰은 가져간 며칠 후에 모두 돌려받았다. 압수물에 속해 있지 않다. 그외에 롼샤오환은 화웨이노트북이 없고, 그저 화웨이핸드폰만 있다. 압수해간 것은 그의 델노트북과 롄샹ThinkPad노트북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압수물목록에 열거되어 있지도 않다.

 

그녀는 말한다: "(증거입증)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니, 가족으로서 부득이 증거의 엄숙성, 진실성, 증명력정도가 얼마나 될지에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판결문에 쓰여 있는 "변호인이 기소된 사실과 죄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고, 그녀는 1심대리변호사가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남편이 체포된 후, 그녀는 많은 시간을 들여 형법등 법률지식을 공부한다. 당사자가 죄를 인정하면 감형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변호사는 마땅히 법률사실과 증거에 근거하여 그가 해야할 독립적인 변호를 해야하는 것아닌가. 만일 기소된 죄명과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변호는 어디에 있는가?" 이전에 그녀는 상해사법기관이 현지변호사에게 압력을 가한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2심변호사는 더욱 경험이 많은 외지의 인권변호사를 선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을 위해 공정한 사법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2월 20일, 베이여사는 두 명의 베이징인권변호사 샹바오쥔(尙寶軍)과 모샤오핑(莫少平)과 선임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녀의 변호사선임은 순조롭지 않았다. 베이징으로 가서 변호사선임계약을 체결하기 전날, 그녀에게 공안요원들이 찾아와서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모샤오핑변호사를 선임하지 말도록 경고받았다. 그후에 보니 변호사선임을 했지만, 변호업무는 계속하여 방해를 받았다.

 

3월 9일, 샹바오쥔 변호사는 담당법관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사건기록을 열람하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상하이양푸간수소로 가서 롼샤오환의 접견을 신청했다. 이번에도 접견은 거절당했다. 샹바오쥔 변호사에게는 상하이고급법원이 2명의 법률원조변호사를 보내주었다고 알려준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거기에는 1심변호사 루(陸)변호사와 그와 같은 사무소의 다른 변호사 1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샹바오쥔 변호사는 매체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건 당국이 자주 쓰는 '선점'조치이다. 왜냐하면 모든 당사자들은 최대 2명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기 때문에, 2명의 법률원조변호사들이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이여사는 여러번 이 사건을 담당하는 상하이고등법원의 쉬메이화(須梅華) 법관에게 연락하여 법률원조를 취소해주거나 혹은 롼샤오환에게 가족이 이미 샹바오쥔, 모샤오핑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것을 알려주고나서 그에게 변호사를 선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외에 그년느 계속하여 12368로 전화를 걸어 법률원조변호사가 변호사자리를 선점한 것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12309 중국검찰망, 상해고등법원 독사실에도 진정을 냈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그저 관련기관에 보냈다거나, 자신들의 수리범위내에 속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받는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서면답변은 받지 못한다. 3월 23일 오후, 그녀는 상하이고급법원 신방접대처를 찾아가서, 쉬메이화법관이 당사자의 합법적인 변호권익을 침해하고 있으니 법률원조변호사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녀가 계속 고집하자, 접대처의 법관은 기록으로 남겨서 그녀의 요구사항을 형사청 청장에게 보냈다. 3월 28일 오전, 베이여사는 다시 쉬메이화 법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았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지금까지 사법기관에 협조해왔다. 다만 현재 이런 결과를 얻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판결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판결이 합법합리적인가." 베이여사는 의문을 표시한다. 현재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노력방향은 법원이 '관선' 법률원조변호사를 취소하게 하고,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가 2심변론을 맡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호소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그녀는 말한다. 1심판결은 명백하게 문제가 있어, 가족들이 강력하게 의문을 표시한다. 현재 2심으로 상소되었는데, 그녀는 최대한 노력해야 하고, 2심의 사법이 공정해지도록 확보하여, 남편이 하루빨리 자유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롼샤오환의 나이많은 부모도 아들을 위해 호소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일찌기 국가에 그렇게 많은 공헌을 한 청년에 대하여 단지 부패와 현실에 대한 불만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대우하다니. 그는 단지 국가를 더 좋게, 국민이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런 판결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나이가 이미 많아서, 중형을 선고받은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지금, 롼샤오환이 체포된지 이미 근 2년이 지났다. 그가 '국가정권전복선동죄'로 7년의 중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그의 '편정수상' 블로그에는 많은 네티즌들이 몰려와서 그가 이전에 해주었던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더이상 글을 쓰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당신이 평안하기를 빈다." "마지막 여명을 맞이하기를 희망한다."

 

그의 처는 그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법정에서 마른 모습과 도움을 구하는 눈빛은 계속하여 그녀의 마음 속에 맴돌고 있다. "나는 그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몸이 천천히 회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