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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황러시아계획": 러시아의 중국침략야망

by 중은우시 2023. 3. 9.

글: 종극신앙(終極信仰)

 

황러시아계획은 후세인들이 날조한 인터넷글이 아니라, 각종 기록이 남아 있다. 정식학술간행물에도 기재되어 있고(<중국근대사> 朱哲芳 저), 중국의 지방현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아이훈현지(璦琿縣誌)제8권), 대학학보에도 있다(길림사대학고1979년제4기 <제정러시아 '황러시아계획'의 파산을 논한다>등등).

 

16세기부터, 제정러시아는 동쪽으로 확장을 시작하며, 두 차례의 야크샤전투(알바진전투)이후 1689년 청나라와 제정러시아는 첫번쨰 국경조약 <네르친스크조약>을 체결하여 중러양국의 국경을 정한다.

 

비록 국경이 정해졌지만, 제정러시아는 조약을 준수하지 않았고, 청나라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중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간다. 실질적인 점유가 형성되고, 그 토지위에서 러시아인의 인구비율이 우세를 점했을 때, 다시 청나라정부를 압박하여 <부렌스치조약(Brest-Litovsk조약)>(1727), <캬흐타조약(1728)>등 조약을 체결하여 중국영토를 침탈한다. 

 

1840년 아편전쟁이후, 청나라조정이 허약한 틈을 타서, 제정러시아는 더더욱 '네가 병든 틈을 타서 너의 목숨을 노리겠다'는 전략을 최대한 추진한다. 짧은 50여년간 <중러북경조약>(1860)등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체결하여, 중국영토 150여평방킬로미터를 차지한다. 이는 프랑스면적의 3배에 상당하는 면적이고, 체코슬로바키아의 12배에 상당하는 면적이다.

 

100여년전 외국침략자들이 중국을 나눠가지는 광풍속에서 제정러시아 - 소련 - 러시아는 중국영토를 가장 많이 침범한 국가이고, 또한 소련은 일찌기 중국에 핵위협을 가한 바도 있다.

 

"황러시아계획"은 제정러시아의 니콜라이2세시기 중국영토를 침탈하기 위한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황러시아계획"은 러시아어로 전문용어까지 있다: Желтороссия. 이는 러시아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중국영토를 추가로 짐범하려던 계획이다. 이 계획의 주요 목표는 중국의 동북지구인데, 동북지구에 한하지 않고, 서로는 신장의 중러국경에 있는 K-2봉(喬戈里峰)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선 이북의 토지를 모조리 러시아로 귀속시키려는 것이다. 아래의 두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만일 이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중국은 약 400여만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잃었을 것이고, 이는 당시 국토면적의 1/3에 해당한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중국은 "본부18성"으로 줄어들고, 장성을 국경으로 하여 제정러시아와 마주해야 했다. 다만 러시아민족의 일관된 스타일로 본다면, 일단 황러시아계획이 성공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북 내지 가장 부유한 동남까지도 모조리 러시아가 자신들의 주머니에 넣으려 했을 것이다.

 

세인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사촌동생이 나에게 해준 말과 같다: 만일 동유럽을 얘기하면, 특히 프라하라든지 바르샤바를 언급할 때면 러시아인들은 왕왕 거긴 원래 우리 것이다라고 한다. 뼛속에 들어있는 것은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누구도 몽골인들의 유전인자가 몽골국에서 꽃피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인들에게 완벽하게 계승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황러시아계획"과 "소러시아계획", "백러시아계획"은 본질적으로 같다. 지금도 '소러시아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계속하여 차지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황러시아계획"은 당시에 순조롭게 실시되었다. 다만 지속하지 못했을 뿐이다. 여러 방면의 역량들이 저지하고 타격을 가하는 바람에 결국은 파탄나고 만 것이다.

 

"황러시아계획"내의 두 가지 중요사건은 바로 1900년 7월 강동육시사둔참안(江東六十四屯慘案)과 해란포참안(海蘭泡慘案)이다. 아이훈현지의 기재에 따르면, 해란포참안의 현장은 이러했다: "상처가 중한 자는 강안에서 죽고, 상처가 경한 자는 강에서 죽었다." 상처를 입지 않은 자들은 모두 강물에 몸을 던져 익사했다. 해골이 떠서 강물을 가득 덮었다. 이들 죽은 자들 중에는 지금 푸틴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자들의 선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1900년 10월, 동북지역을 모조리 제정러시아가 점령한다. 그동안 살인방화약탈을 수두룩하게 저지른다. 동북을 점령한 후 러시아군은 당시의 성경장군(盛京將軍) 증기(增祺)를 붙잡은 후, <봉천교지잠차장정(奉天交地暫且章程)>에 강제로 서명시킨다. 그렇게 법적인 형식으로 침략결과를 고정시키고자 하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및 청나라조정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친다. 러시아는 청나라조정의 입장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다른 열강들의 뜻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교수동삼성조약(交收東三省條約)"으로 바꾸어 체결한다. 동북의 많은 특권을 가져간 후 1년반이내에 3차에 걸쳐 동북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단지 1차례 철군했을 뿐, 제정러시아는 철군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공공연히 조약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정러시아가 조약을 어겨도 청나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정러시아와 싸워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도 제정러시아가 중국동북의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원치 않았고, 청정부와 일본은 비밀합의를 이루고, 여기에 일본은 미국, 영국등의 지지도 받아서, 제정러시아와 동북을 놓고 다투기 시작한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는 대패하고 만다. 일본도 상당히 큰 댓가를 치렀다. 그후 일본은 러시아를 대체하여 중국동북의 대부분 이익을 가져간다.

 

청정부는 일본에 출병을 요청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 했다. 당시 일본이 요구하는 것은 이익이었고,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를 나눠가질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나타나자마자 청나라의 급소를 요구했다. 토지를 가져가려 한 것이다. 그리고 매년 조금씩 조금씩 토지를 더 차지하려고 욕심을 냈다. 청나라조정은 차라리 일본에 이익을 줄지언정 러시아에 토지를 주지는 않겠다고 결정하게 된다. 다만 나중에 일본도 점점 발전하여 중국을 모조리 삼키겠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지금의 일본은 이미 고속발전의 길로 들어섰고, 2차대전전에는 토지확장에 골몰했지만, 지금은 전세계에서 자산을 구매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더 이상 중국의 토지에 망상을 품지 않고 있지만, 또 다른 대국은 어떨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장기간 중국의 국방중점은 북방에 두어야 한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중국에게 주는 교훈이다.

 

만일 황러시아계획이 성공했더라면, 중국은 변방소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혹은 사분오열되어 '아시아의 유럽'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후환이 엄청났을 것이다.

 

이후 시월혁명의 성공으로, 레닌은 제정러시아가 중국에서 탈취한 "불법토지와 불법이익"을 모조리 폐지한다고 선언한다. 다만 레닌이 그 말은 그저 말뿐이었다. 왜냐하면 해란포는 지금의 블라고베셴스크라고 부르며 러시아 극동에서 제3의 도시이다. 해삼위는 블라디보스톡으로 불리면서, 러시아 극동에서 최대의 항구도시이고, 러시아태평양함대기지이다. 이 도시의 러시아어의 의미는 '동방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러시아계획'이 중지되었다는 문제에 있어서, 나는 중국내 일부 사학자들의 레닌의 말로 황러시아계획은 파탄났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나는 황러시아계획을 원동력은 열강의 중국내에서의 이익을 차지하려는 다툼이었고, 직접적인 원인은 러일전쟁이었다고 본다.

 

"황러시아계획"은 중단되었지만, 러시아의 중국영토에 대한 야욕은 멈추지 않았다. 1921년부터, 소련은 외몽골을 중국에서 잘라내어, 몽골공화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장기간 신장에서의 반란을 조직한다. 1942년에서 1944년까지 3년의 노력을 거쳐 소련은 신장의 인구구조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킨다. 특히 북강(北疆) 예를 들어 이리(伊犁), 알타이(阿勒泰), 타청(塔城)은 러시아인구가 이미 현지인구의 40%를 점한다. 그리고 원래 소련인 우즈베키스탄인 엘리한 토레는 소련의 지원하에 이닝(伊寧)에 '동투르키스탄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주석'에 오른다.

 

이 3년은 중국이 대일항전으로 힘들었던 시기이다. 중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러시아는 다시 한번 '네가 병이 들었으면, 너의 목숨을 노리겠다'는 옛 수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국민정부에 의해 '구점작소(鳩占鵲巢, 비둘기가 까치집을 차지하다. 남의 집을 빼앗다.)'라고 불린 행위는 1965년을 전후하여 비로소 중화인민공화국정부가 소련교민들을 돌려보내고,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이상의 글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진인각(陳寅恪) 선생이 예전에 했던 말이다:

 

"미래 중국의 삼대환(三大患)은, 첫째가 북방의 러시아, 둘째가 동쪽의 일본, 셋째가 서쪽의 이슬람교이다."

 

시간은 흘러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일어난 지금, 러시아를 지지하는 많은 중국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러시아가 안타깝다. 정 안되면 핵을 써라"는 저능아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내가 정말 중국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설마 이들은 역사상 러시아가 중국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인가? "역사를 기억하라"는 잠언은 그저 일본에게만 쓰고 러시아에게는 효과가 없단 말인가? 역사상의 러시아는 중국영토를 가장 많이 침탈한 국가가 아닌가. 이들 멍청이들은 어찌 그것도 잊고 있단 말인가. 정말 효순(孝順)하는 자들이다.

 

현재 아마도 전략적인 고려하에 중국은 중립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 권위있는 매체에 올라오는 관점은 아주 명확하다. 중국은 전쟁을 반대한다. 우리는 담판으로 해결하기를 주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명확하지 않은가?

 

황러시아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중화민족에게는 다행이다. 다만 지금 많은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러시아인이 아닌 것이 일생의 최대유감인 것처럼 보인다. 육체적으로 러시아인이 될 수 없으니, 그럼 정신적으로 러시아를 양아버지로 받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조상들의 하늘에 있는 영혼을 달래는 방법인가?

 

나는 계속 생각했다. 러시아를 지지하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든, 모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자유를 간섭할 수는 없다. 단지 국내의 친러시아, 친우크라이나 두 파간의 분열과 반목이 이처럼 심한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일파의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어느 국가, 어느 국가의 국민들도 침략에 항거하고 민족독립을 쟁취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폭정에 항거하는 것은 정의이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

 

당연히 문제있고, 문제가 크다고 본다. 친러파들이 보기에, 젤렌스키가 현재 러시아의 침입에 항거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젤렌스키가 현재 해야할 것은 즉시 투항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을 맞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한편으로 진회(秦檜)가 투항파라고 욕한다. 그러면서, 젤렌스키가 투항하지 않는다고 욕한다. 한편으로 미국이 반도체칩을 팔지 않는 것을 욕하면서,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공급을 끊은 것은 묘수라고 칭찬한다. 그들은 구미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싸움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러시아가 시리아를 지지하는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미국이 탈레반을 타격하는 것은 아프카니스탄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략한 것은 정의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가장 신기한 것은 그들은 미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러시아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혼란은 스스로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것은 서로 모순되어 스스로도 원만하게 말을 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도 그들은 견지하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수치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몰염치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중국민족에게 이렇게 많은 고난이 있는 것은 이런 자들이 너무 많아서가 아닐까? 그리고 시비감을 가진 사람들은 왕왕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자들이 중국민족을 계속하여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이 몰염치하고 존엄성이 없지만, 아이큐는 나쁘지 않다. 그들이 푸틴을 아버지처럼 하늘처럼 받들고, 자신의 부친보다 존경하고, 미국은 지옥에 떨어지라고 욕하지만, 그들에게 루블과 달러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자식을 러시아로 유학보낼지 미국으로 유학보낼지 선택하라고 하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같은가?

 

어찌 이런 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런 자들이 생겨났는가? 만일 이런 자들이 다수가 되면, 중국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