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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구소운(邱少雲): 조작된 영웅의 전형인가?

by 중은우시 2023. 1. 26.

글: 백매(白梅)

 

1953년 8월 30일, 중공 지원군당위(志願軍黨委)는 구소운을 중공당원으로 추인했다.

 

중국인이라면 구소운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를 다닌 학생이라면, 모두 <나의 전우 구소운>이라는 글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교과서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영웅" 구소운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을 가리킴)"때의 빛나는 사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공식문헌에 따르면, 구소운은 사천 사람이고, 1949년 군대에 입대했다. 1951년 3월 한국으로 가서 전투에 참가한다. 1952년 10월 12일, 소속부대 500명이 유엔군진지앞에 매복하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떄, 유엔군이 맹목적으로 발사한 한발의 소이탄이 구소운이 잠복한 부근에 떨어졌고, 신속히 그의 몸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매복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그는 "이를 악물고, 머리카락과 살이 불타는 와중에도 30여분간 버티다가 결국 장열하게 전사한다." 구소운은 이로 인하여 중공당원으로 추인된 것이다.

 

호북성 안륙시의 시골교사 요충명(廖忠明)은 <나의 전우 구소운>이라는 교과서글의 상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문을 관련부서에 보고했다. 요충명 교사에 따르면 "구소운의 영웅적인 사적"에는 최소한 3곳이 군사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첫째, 구소운은 전투전에 불에 타 죽었는데, 그가 휴대한 무기(예를 들어, 수류탄, 폭약통등)은 불타는 과정에 왜 폭발하지 않았는가? 무기는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무기는 어떻게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글에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둘째, 구소운이 매복한 지점은 적으로부터 겨우 60여미터 떨어진 곳이었고, 적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구소운의 몸이 30여분간이나 불에 타고 있고, 그의 주위의 풀들까지도 모조리 불에 타버렸는데, 고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적군이 한낮에 어찌 목표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셋째, 글에는 모호한 표현이 있다. "정오쯤"이라는 말도 몇시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전체 잠복한 부대원은 도대체 몇명이나 되는가? 언덕의 풀 속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부대원을 잠복시킬 수 있었을까? 섬멸했다는 '적군'은 전부 몇명이나 되는 것일까? 이들 숫자는 선생도 말하기 힘들다. 하물며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당국에서 갱신한 선전문구에는 이런 내용이 추가되었다: "휴대한 폭약통과 총알이 열기로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는 온몸이 불타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면서, 가볍게 폭약통을 한켠으로 밀어놓았고, 총알은 땅 속에 묻었다." 그러나 이 글은 더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동작을 거리가 멀지 않은 유엔군이 발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설마 주위의 전우들에게는 불똥이 전혀 튀지 않았단 말인가? 그들도 설마 구소운과 마찬가지로 꼼짝하지 않아서, 몸에 지닌 탄약이 폭발하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진상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일찌기 구소운의 배장(排長, 소대장)이었던 증기유(曾其有)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전선에 잠복한 사람은 겨우 52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현장의 최고지휘관이었다. 구소운은 최전방에 매복하고 있었고, 적의 철조망을 자르는 것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구소운의 주변에 몸에 붙은 불을 끌 수 있는 도랑물도 없었고, 그는 가장 먼저 전사한 병사도 아니었다. 이 배장은 또한 그는 구소운의 고향집을 찾아간 적이 있고, 구소운의 모친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도 관방에서 얘기하는 "구소운은 어려서 양친을 잃었다"는 것과 맞지 않는다.

 

또 다른 의문을 표시한 글인 <구소운, 의심이 드는 영웅>에서는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글에 따르면, 당시 구소운은 전우들에게 영웅의 자질이나 희생정신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심지어 바로 집행해야할 잠복임무에 대하여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관방 보도에 따르면, 그는 낙후분자에서 특등영웅으로 일약 변신했다. 이 글의 작자는 여러 사실을 근거로 이렇게 추단한다. 진실한 구소운은 아마도 소이탄에 맞아서 죽었을 것이다. 무슨 "고통을 참으면서 불에 타죽었다"는 상황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전문가는 의학적인 각도에서 이 일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돌연한 극심한 고통에는 반사동작을 하기 마련이다. 대뇌를 통해 인내하라는 명령을 하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구소운이 소이탄에 명중된 후에는 즉시 혼미상태에 빠져서 꼼짝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결국은 아무런 지각이 없는 상황하에서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구소운의 진실한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