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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의학

방역3년: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by 중은우시 2022. 12. 8.

글: 압사룡(押沙龍)

 

1

 

최근 들어 계속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부근의 수퍼마켓은 새로 문을 열었고, 지하철을 탈 때는 48시간 PCR음성확인서가 필요하지 않으며, 단지에서 밀접접촉자로 판단하는 범위도 동거인만 포함되고, 양성으로 확인되어도 자택에서 쉬면 된다...

 

코로나는 당연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몇달내에 심지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3년이다.

 

이 3년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대한 충격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직업인으로서, 나는 기실 그다지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글을 읽고, 글을 썼다. 오히려 나의 처는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하는 말처럼, 아무도 무인도에서 살 수는 없다. 도시가 생기를 잃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점포를 닫고 정리하는 것을 들으면서, 웨이보에서 삭제되는 소식들을 보니, 나의 심정도 확실히 바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계정을 오래 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느꼈을 것이다. 요 2년간 내가 쓰는 글들은 침울했고, 몇년전처럼 활발하고 즐거운 기색은 없었다. 당연히, 이 변화 속에는 각양각색의 요소가 들어 있다. 심지어 나의 연령도 포함해서. 다만 코로나가 확실히 중요한 요소이다. 나 자신도 내심의 변화를 느낄 정도이고, 손으로 써내는 글도 부지불식간에 더욱 침중해지고, 더욱 우울해졌다.

 

다만, 매트릭스의 포스터에서 나오는 말처럼, "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 3년간이나 지속된 코로나사태도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벗어나 정상적인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3년의 코로나는 나의 관념에 확실히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은 아마도 영구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그렇게 유치하게 바보처럼 웃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2

 

나는 70후(70년대생)에 속한다. 우리 세대는 그다지 큰 풍파를 겪지 않았다. 큰 좌절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90년대의 국유기업개혁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겨우 10여세였고, 느낌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아서, 그저 방관자같았다고 할 수 있다. 청년단계에 접어든 이후,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나 개인뿐아니라, 전체 시대가 모두 크게 발전했다. 진보하는 속도는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가장 대담한 상상조차도 뛰어넘었다.

 

그러나보니, 당연히 나는 환각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은 계속하여 직선으로 발전하고 잘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어느 국가도, 그 어느 사회도, 아무런 좌절이나 풍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얼마전의 무역전과 글로벌화역행은 나에게 자그마한 교훈을 주었다. 그리고 3년의 방역은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우리의 부친세대, 혹은 부친의 부친세대, 혹은 역사의 깊은 곳까지, 혹은 중국이외의 세계까지 되돌아보면, 좌절과 풍파는 항상 있었다. 계속 순조로운 것은 확률상 드물었다.

 

얼마전, 나는 영호충(令狐沖)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충고할 것인지에 대하여 쓴 적이 있다. 어떤 네티즌이 댓글에서 악불군(岳不群)의 한 마디를 적어 놓았다. 그 말은 분명 CCTV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이고, 김용(金庸)의 원작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을 확실히 좋았다. 악불군은 이런 말을 했다: "강호의 비바람이 다른 사람들은 치면서, 영호충만은 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그 댓글을 본 후에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비바람이 다른 사람은 치면서 영호충만은 치지 않을 것인가? 비바람이 치는 것은 다른 시대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부친대와 조부대와 비교하면, 이 정도의 비바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전에 자신이 아주 낙관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낙관 가운데 만일 비바람에 대한 예상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낙관이 아니다. 그저 천박이다. 진정한 낙관은 반드시 비바람에 단련되고나서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반드시 신념의 역량이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행도수궁처(行到水窮處), 좌간운기시(坐看雲起時). 진정한 낙관자는 이런 흉금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회상해보면, 나는 역시 유치했었다. 나의 낙관도 유치했었다. 나의 낙담도 유치했었다. 진정한 낙관은 일시적인 처지를 벗어나서 자기 내심의 광명을 보는 것이다.

 

3

 

3년이 지났다. 지금은 당연히 구름이 일어날 때(雲起時)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여행을 한 것은 2018년의 샤먼(廈門)이다.

 

구랑위(鼓浪嶼), 중산가(中山街), 팡터몽환왕국(方特夢幻王國).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분홍색의 성당, 높은 일광암(日光巖), 한눈에 끝이 보이지 않는 미식가(美食街).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굴전과 춘권(春卷). 햇볕을 받으면서도 걷고 걸으며, 네온 사인 아래서도 걷고 걸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람들 물결에 어깨를 부딛치며 계속 걸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고, 줄을 설 때는 심지어 뒷사람의 호흡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다.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중국사람이 너무 많다고 원망했다. 그후에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시끄러운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할까? 납란용약(納蘭容若)의 그 <완계사(浣溪沙)>에 나오는 말: 당시에는 그저 별거 아니라고 말했지(當時只道是尋常)

 

지금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런 시끄러움을 다시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다시 그런 생기가 충만한 모습을 느끼는 것이다. 생활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그것이 없다면 활력이 없고, 미래도 없다.

 

먹고싶고, 마시고싶고, 돈을 벌고 싶고, 쇼핑을 하고 싶고, 돈을 쓰고 싶고, 사람을 사귀고 싶고, 연애하고 싶고, 여행하고 싶고, 영화를 보고 싶고,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은 가장 평범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고귀한 생각이다. 아무리 위대한 것이라도, 결국은 이런 것들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메말라버리게 될 것이다.

 

생활에 대한 열정만이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사람들의 물결이 봄날과 함께 오기를 바란다. 우리가 다시 이 땅 위를 걸으면서 용기가 충만하고, 희망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다시 나의 낙관을 되찾게 되어, 그것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것을 반짝이게 닦아서, 오늘을 통해 미래를 보게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