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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쩌민)

장쩌민 장례식에서 고위관료들의 서로 다른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by 중은우시 2022. 12. 7.

글: 종원(鍾原)

 

12월 5일, 중국당국은 돌연 며칠전의 공고를 뒤집고 장쩌민(江澤民)의 유체고별의식(遺體告別儀式)을 거행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1달반전에 20대 주석단의 제1열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보기 드물게 모습을 나타냈는데, 중공의 현임, 전임 고위관료들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거기에는 시진핑이 장멘헝(江綿恒)을 포옹하려고 시도하는 난감한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어느 정도 그들의 진실한 내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20대후, 중공내부의 "타협"과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는 공고를 폐기하다.

 

11월 30일, 중공은 장쩌민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동시에 치상위원회(治喪委員會) 명단을 공표했다. 시진핑은 유일한 주임위원이고, 위원에는 현임과 전임의 관료 200명이상이 포함되었다. 전면에 배치된 사람은 19기 정치국상위였다. 그러나 리창(李强)은 왕양(汪洋)의 뒤에 자오러지(趙樂際)의 앞에 위치했다. 그후에 20기 정치국상위, 위원들이 들어있다; 그후에는 후진타오(胡錦濤)와 은퇴한 전임 정치국상위가 들어있다. 그중 장쩌민, 쩡칭홍파의 인물이 많았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중공20대때 주석단 제1열에 앉아있었다.

 

같은 날, 치상위원회 공고(제1호)가 나왔는데, 홍콩중련판(中聯辦), 홍콩중련판, 주외사령관(駐外使領館)에도 영당(靈堂)을 설치하고, 조문을 받았다; 다만 외국인사들이 중국으로 와서 추도활동에 참가하도록 "초청하지는 않았다" 

 

이런 조치는 얼마전 영국여왕과 일본 전수상 아베신조의 장례식과 차이가 크다.

 

12월 1일, 치상위원회 공고(제2호)가 나왔는데, 12월 6일 추도대회를 거행하며, 현장에서 라이브로 방송하니 진지하게 시청해달라고 하였다. 동시에 "유체고별의식은 거행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 두개의 공고는 신화사등 당매체의 사이트 첫페이지에 3일간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12월 5일 돌연 내려진다. 그날, 중공은 스스로의 공고를 뒤집고, 장쩌민을 위하여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병원과 팔보산묘지에서 두번이나 거행했다. 짧은 며칠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례식배후의 권력투쟁

 

최초에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공고한 것은 분명 시진핑진영에서 장례의 규격을 다시 강급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치상위원회의 유일한 주임위원이므로 이것은 분명 그가 최종결정을 내린 것이다. 시진핑 진영은 고의로 장쩌민을 억누름으로써 20대후 다시 한번 내부투쟁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장쩌민, 쩡칭홍일나는 정식으로 소멸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장쩌민의 가족이 스스로 조용하게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장쩌민은 11월 13일에 이미 뇌사상태였다. 쩡칭홍등은 금방 아주 높이 평가하는 내용의 추도사를 내놓았다. 쩡칭홍 일파는 당연히 장쩌민의 아들 장멘헝등과 서로 이용하는 관계이다.

 

장쩌민일가는 숙청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대한 장례식을 성대하게 거행해야 했고, 중공의 장쩌민에 대한 평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장례식의 규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장쩌민가는 상대적으로 더욱 안전할 터였다.

 

쩡칭홍일파는 남은 영향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장쩌민에 대한 평가를 끌어올리면서, 일부 민감한 사건에 대하여 다시한번 성격규정을 명확히 하여, 이후 평가가 뒤집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장쩌민파의 은퇴한 고위관료들은 고의로 기세를 보이면서 장쩌민, 쩡칭홍파가 건재하고 궤멸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시진핑진영과 협상할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마지막으로 얼마 남은 추종자들의 기운을 북돋워주고자 했다. 

 

그러나, 중공의 장쩌민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비록 허명은 붙었지만, 업적에 대한 묘사는 아주 평범했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쩌민의 매국노출신을 암시했고, 장쩌민이 '6.4"때 기회를 잡아 최고지도자에 올랐음을 강조했다. 장쩌민, 쩡칭홍파는 파룬공을 잔혹하게 박해했고, 시진핑도 이에 대해 계속 같이 책임지기를 원했지만, 평가에서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진핑진영이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결정함으로써 장쩌민에 대한 장례식의 규격을 낮춤으로써 장쩌민, 쩡칭홍일파에 타격을 가하려고 했다. 물론 방역을 핑계로 내세웠지만. 그러나, 며칠 후, 장례형식이 완전히 역전된다. 아마도 장쩌민일가와 쩡칭홍일파가 강력하게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시진핑진영의 타협을 얻어냈는지는 현재로서 확인하기 어렵다. 대외적으로 시진핑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아마도 쩡칭홍일파가 하겠다고 위협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이미 대외적으로 장쩌민을 칭송하는 여러 뉴스를 퍼트리고 있어, 고의로 현임고위층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있다.

 

11월 30일, 장쩌민의 시신이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운반된다. 시진핑진영은 아마도 상하이에서 대규모로 장쩌민의 시신을 배웅하는 활동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상하이의 관료들은 먼저 상하이화둥병원에서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했고, CCTV도 영상을 보도했다; 단지 사람들은 장쩌민의 시신 앞에서 허리를 숙여서 절을 했을 뿐, 시신을 한바퀴 돌지는 않았다. 시진핑은 베이징의 정치국위원등 고위관료들을 이끌고 공항으로 영접을 나갔다. 당매체도 당시에 치상위원회 판공실인원들과 장쩌민의 친족들이 유체를 호송하여 정령처(停靈處)로 갔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화둥병원 부근

만일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면, 장쩌민의 시신은 직접 팔보산묘지로 보내어 화장해야 했다. 다만 장쩌민일가는 원치 않았다: 정령처에서 묘지로 갈 때까지 사이에 장례식을 원했다. 11월 30일부터 12월 5일 출빈(出殯)까지 어떻게 "투쟁"하고 어떻게 "타협'했는지 과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남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중공은 자신의 공고를 스스로 뒤집게 된다.

 

시진핑이 장멘헝과 포옹하려다 난감한 상황에 처하다.

 

12월 5일, 신화사보도에 따르면, 시진핑등 현임, 전임고관들은 해방군총의원(解放軍總醫院)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먼저 장쩌민의 시신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그후에 시신을 한바퀴 돈다. 그리고나서 가족들을 위문한다. 보도에서는 '유체고별의식'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유체고별의식은 거행된 것이다.

 

시진핑이 가장 앞에 섰고, 시신을 한바퀴 돌면서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후 그는 장쩌민의 미망인이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왕예핑(王冶坪)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앞으로 나아가 악수까지 하지는 않았다. 시진핑이 장쩌민의 장남 장멘헝과 악수할 때, 마치 일부러 멈추고 얘기를 나누는 듯했고, 또한 가까이 다가가 포옹했다. 장멘헝은 시진핑이 포옹하려는 제스추어를 취할 것을 생각지 못했는지, 몸의 반응이 아주 어색했고 심지어 항거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손을 억지로 끌어당기자 억지로 가까이 다가갔고, 그후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분리되었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가깝게 접촉한 것은 비교적 난감해 보였고, 어느 정도 장멘헝의 시진핑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뒤를 따랐는데, 그는 스스로 왕예핑에게 다가가서, 먼저 손을 들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고, 그후에 앞으로 다가가서 가볍게 악수를 했다. 시진핑과는 크게 차이났다. 후진타오는 장멘헝등과 단지 악수를 했고, 포옹하는 동작은 취하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오버코트를 입고 있어서, 오랜 시간 머물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직 후진타오만이 양복수트를 차려입어 비교적 두드러졌다. 그는 시진핑과 중간 위치에 서 있었는데, 마치 20대에서 회의장에서 끌려나가기 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컨디션은 더 좋아 보였다. 곁에서 비록 누군가 부축했지만, 후진타오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특히 왕예핑과 악수하는 순간의 동작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참석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시진핑을 포함해서. 단지 왕예핑만이 휠체어에 앉아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장쩌민파의 관료들은 작별을 아쉬워했다.

 

시진핑과 후진타오의 뒤로는 리커창, 리잔슈, 왕양, 리창등이 따랐는데, 특별한 거동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냥 지나가는 식이었다. 자오러지는 지금까지 장쩌민, 쩡칭홍파의 인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도 아무런 특별한 거동을 보이지 않았다. 왕후닝은 일부러 왕예핑에 가까이 다가가고 또한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사람들에게 은혜에 감사한다는 모습으로 보였다. 특수한 상황하에서 아마도 사람의 진실한 내심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같다.

 

한정(韓正)은 시신을 한바퀴 돌면서 눈은 장쩌민의 시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지나간 사람들보다 훨씬 진지했고, 내심에서 우러나는 것같았다. 눈길을 다른 곳으로 전혀 돌리지 않았다. 한정은 고의로 걸음을 천천히 하면서 마치 거기에 멈추려는 것같았다. 그리하여 뒤를 따라오던 차이치(蔡奇)와 딩쉐샹(丁薛祥)도 부득이 속도를 늦추어야만 했다. 한정은 왕예핑의 앞으로 가서 진지하게 허리를 숙였는데, 가장 공손했다. 그의 뒤를 따른 차이치, 딩쉐샹, 리시(李希), 왕치산(王岐山)과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이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현임 고관들의 뒤에는 리뤼환(李瑞環), 원자바오(溫家寶)가 지나갔는데 그저 형식적인 모습이었다. 그후의 자칭린(賈慶林)은 비교적 특별했다. 일부러 장쩌민의 시신 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오던 장더장(張德江)이 하마터면 그와 부딛칠 뻔했다. 자칭린은 푸젠(福建)에서 재직할 때 일찌기 위안화(遠華)밀수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그러나 장쩌민이 나서서 그를 보호해주었다. 사건제일혐의자 라이창싱(賴昌星)은 사전에 정보를 얻어 적시에 캐나다로 도망칠 수 있었다. 후진타오 집권시기에 라이창싱은 인도되어 귀국한다. 자칭린은 이로 인하여 장쩌민에게 죽어라 충성했고, 장쩌민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 그런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자칭린 뒤의 장더장, 위정셩(兪正聲), 리란칭(李嵐淸)은 특별한 거동을 보이지 않았다. 쩡칭홍은 걸음걸이가 절룩거렸다. 사람들에게 장쩌민이 죽은 후, 그는 정말 절름발이가 된 것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시진핑진영에서는 그의 음험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공이 돌연 장쩌민의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한 배후에는 분명히 쩡칭홍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쩡칭홍의 뒤에는 우관정(吳官正), 리창춘(李長春), 허궈창(賀國强),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등도 모두 특별한 거동은 보이지 않았다. 당매체의 영상에서는 은퇴한 고위관료들이 장쩌민가족을 위문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주룽지(朱鎔基), 우방궈(吳邦國), 송핑(宋平), 뤄간(羅幹)은 나타나지 않은 것같다. 신화사의 보도에서도 후진타오의 이름만 언급했을 뿐, 나머지 은퇴한 고위관료들의 이름은 한명도 거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고의로 그렇게 한 것같다.

 

현임고위관료들만 묘지로 가다.

 

병원의 유체고별의식이 끝난 후, 영구차가 병원을 떠날 때, 일부 병원직원들이 흰색옷을 입고 양쪽에 서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단지 임무로 나온 것같았다. 하나같이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아무도 꽃도 들고 있지 않았으며,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팔보산묘지의 입구부근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대거 배치되었다. 그리고 일부 흑색옷을 입고 흰색꽃을 꽂은 사람들이 길의 양쪽에 서 있었다. 젊은이들이 비교적 많았고, 중년인은 소수였으며, 노인은 기본적으로 없었다. 그들 대다수는 분명 20년전의 장쩌민집정시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서도 아무도 꽃을 들고 있지 않았고,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아마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보였다. 마찬가지로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의 눈빛과 행동거지에서는 호기심이 드러났다. 

 

당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팔보산묘지의 송별청(送別廳)에서 시진핑과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장쩌민의 시신을 한바퀴 돌았다. 2차례의 송별의식을 하는 셈이다. 이번에는 시진핑과 장멘헝이 악수할 때, 포옹하려는 제스추어는 취하지 않았다. 다만 장멘헝은 마치 마음의 준비를 한 것같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시진핑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시진핑은 두 손을 맞잡으며 막았다. 시진핑은 악수를 바로 끝내고 떠났다. 장멘헝의 몸은 앞으로 기울어져 마치 허공에 걸린 것같았다. 다시 한번 난감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당매체에 따르면, 묘지 송별식에는 시진핑등 현임관료들 외에 장쩌민의 생전 친구들도 참석했다고 했다. 그러나 영상에는 은퇴고위관료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후진타오와 장쩌민파의 고위관료를 포함해서. 그들은 묘지로 가는 것까지는 허용되지 않은 듯했다. 시진핑 진영은 유체송별의식에서 "타협"했지만, 그래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장쩌민이 죽었다. 시진핑과 장쩌민의 싸움은 끝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양파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장쩌민의 유체송별의식에 돌연 변동이 생겼다는 것은 양파의 "투쟁"이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서막인 듯하다.

 

20대에서 시진핑진영은 장쩌민, 쩡칭홍파와 타협하여, 공청단파를 물리쳤는데, 지금 어느 정도 후회하는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당연히 장쩌민의 죽음은 그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쩌민이 죽었다. 다만 장쩌민, 쩡칭홍파는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 그들은 나쁜 짓은 다 했기 때문에 청산될 것이 겁나고, 조용히 물러고자 하지 않는다. "시진핑하야"의 구호가 그들과 관련이 있는지, 그들이 국면을 뒤흔들고 있는지. 아마도 시진핑진영에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시진핑진영의 은퇴한 고관들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진핑이 파룬공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면서, 책임을 추궁하기만 하면 장쩌민파의 관료들은 한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시진핑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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