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무쌍(燕無雙)
류창동사건이 이미 종결되었다. 요 며칠간 인터넷에는 그에 관한 글이 아주 많이 올라오고 있다.
장저텐(章澤天, Nancy Chang, 류창동의 부인)이 잘 생각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있고, 류창동의 허리띠가 너무 느슨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장저텐이 돈때문에 참았다고 조롱하는 것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유학생 류징야오(劉靜堯)가 후안무치하다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모두가 주목하지 않은 한 인물이 있다: 정말 수치스러운 인물은 바로 그 여학생을 부호와 만나도록 주선한 중국교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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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배주(陪酒, 술자리에 여자를 앉히는 것)문화는 역사가 길다. 남자들끼리만 술을 마시면 재미가 없다. 재능있는 젊은 여자들을 몇몇 불러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술을 권하게 하고 다시 몇 가지 재주도 보여주어야 술자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배주문화는 고대에도 있었고, 당송때 흥성했다. 고대의 양갓집 규수는 비교적 보수적이어서, 대문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술자리에 참석하는 여자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기녀(妓女)이고 다른 하나는 몸은 팔지 않고 예(藝)를 파는 가기(歌伎)이다.
어느쪽이든 재색을 겸비하여,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면서 애교를 부릴 줄 안다. 즉흥적으로 노래와 춤도 출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들이 잡고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술자리는 이런 여자들로 인하여 분위기가 오르게 된다. 이들 창기, 가기가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연회는 소주(素酒)라고 부른다. 전쟁터의 장병들이 아니면, 스스로 풍류를 즐긴다는 문인들은 '소주'는 재미가 없다고 여길 것이다.
우리가 이름을 들어 잘 알고 있는 사인(詞人) 유영(柳永), 안수(晏殊), 안기도(晏幾度)부자는 바로 이런 술자리의 단골들인 것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시사는 모두 이런 술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집수상간루안(執手相看淚眼)", "금소잉파은홍조(今宵剩把銀紅照), 유공상봉시몽중(猶恐相逢是夢中)"과 같은 구절이 진정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쓴 것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아니다. 모두 이들 술자리에서 만나 며칠 밤 풍류를 즐기다가 헤어지는 기녀에게 써준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현대문명사회가 되었다. 예전같은 기녀나 가기는 없다. 부녀자들도 마음대로 바깥은 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백성들이 모여서 술을 마실 때면 자기 집의 여자들을 데리고 간다.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반드시 젊고 예쁜 여자일 필요는 없다. 주량이 뛰어난 술꾼들이 주력군이다.
그러나 부호들은 다르다. 그들은 비니지스술자리이거나, 아니면 개인술자리이거나, 거의 모두 미녀를 곁에 둔다. 그래야 빛이 나는 것이다.
왕젠린(王健林)의 아들인 오권기검위(娛圈紀檢委) 왕쓰총(王思聰)은 나이가 어리지만, 부친보다 훨씬 더하다. 식사를 할 때도 오른쪽 왼쪽에 미녀를 끼고, 가장 많을 때는 7,8명의 미녀들이 나무에 달린 원숭이처럼 그에게 매달려 있다.
부호들의 부인은 귀부인이다. 관계가 좋은 가족모임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이런 비지니스술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물며 분투하여 성공한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40살이상이다. 부인들도 이미 나이가 들었다. 설사 젊고 미인이라 하더라도, 부인은 내 것이다. 스스로 몸값을 낮추어 술자리에 참석하게 할 리는 없다.
그래서, 부호들은 일반적으로 자시회사의 공관경리(公關經理)들 혹은 젊고 예쁜 직원을 데리고 간다.
그러나, 류창동사건에서처럼 여학생이 나오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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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보면, 류창동은 1974년생이고, 류징야오는 1996년생으로 나이차이가 22살이다. 22살의 나이차이가 어떤 의미인가? 2018년 사건발생시 류창동은 44살이고, 류징야오는 22살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배가 차이나는 것이다.
22살의 나이차이가 무슨 개념일까? 일찍 결혼했더라면, 22살의 딸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류창동은 거의 딸뻘인 어린 여자에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다만, 이 사건에서 가장 치욕스러워야할 사람은 실제로 이 여학생을 술자리에 부른 중국교수 추이하이타오(崔海濤)이다.
류징야오는 당시 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이었다. 그녀의 지도교수인 추이하이타오는 청화대학과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고 있었다. 류창동은 바로 이 프로젝트의 학생신분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이 중국교수의 어레인지로 류징야오도 이 프로젝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래서 류창동과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럼 류창동이 불렀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 류징야오가 스스로 가겠다고 했을까? 분명 그것도 아닐 것이다. 중국교수가 중간의 핵심인물이다. 그가 가장 수치스러워해야할 사람이다.
사건내용을 되돌아보면, 류징야오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것은 추이하이타오가 연결시켜준 것이다. 추이하이타오는 자신의 개인명의로 류징야오의 부친에게 초청장을 보내어, 류징야오의 부친에게 이렇게 말한다. DBA프로젝트는 중국의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것이다. 프로젝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면 류징야오는 최상급의 기업가들과 인맥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그녀가 직업을 찾을 때 아주 가치있을 것이다.
그외에 류징야오의 고발장을 보면, 그녀의 부친은 추이하이타오가 중국 창장상학원(長江商學院)에 있을 때 그곳을 다녔다.
류징야오가 초청에 응한 목적은 부친의 교우권보다 훨씬 상층의 부호들을 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 것외에 칼슨경영대학원(미네소타대)에 합격하기를 바라서였다. 본과졸업후 계속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그녀에게 이 기회는 아주 중요했다. 그녀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앞길이 쉽게 트일 것이라고 여겼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그날 밤, 이 아가씨는 교수의 초청으로 류창동의 저녁식사자리에 초청받았다. 그녀는 부호들의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고, 미래가 찬란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난감한 미래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류징야오는 류창동의 옆자리에 앉혀졌다고 한다.
그후, 그 스캔들이 발생했고,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며, 바다를 건너 중국에서도 난리가 났다.
한 유학생이 원래 지식의 전당에서 학술연구에 매진해야하는데, 욕망이 교차하고, 술잔이 부딛치는 장소에 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류창동은 자신의 허리띠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 추악한가? 추악하다. 욕먹어야 하는가?
심하게 욕먹어야 한다. 다만 여자를 '선물'로 그 술자리에 보낸 남자가 더욱 추악하다.
3
작년에 한 여직원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사자인 여직원에 따르면, 그날 술자리에서 팀장 왕청원(王成文)은 술자리를 조직했고, 그의 인사말은 이러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봤지. 너희들에게 미녀를 주겠다(送)."
이 '주겠다'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그 뜻은 명확했다: 미녀는 너희들의 술자리에 흥을 돋구기 위해 온 것이니, 너희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
미녀와 좋은 술은 술자리문화의 정수이다.
이전의 술자리문화의 전통에 따르면, 몇몇 여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고객들을 '회유'하기 위한 것이다. 성적인 매력을 돈으로 바꾸는 상업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다만, 이는 사고가 여전히 남권사회에 머물러 있는 낡은 남자들의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여자들은 고객들을 잘 모시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성추행당한 그 여자는 왕청원의 상사에게 얘기하고 조치를 요구했을 때, 상대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은 이미 의식적으로 여직원을 줄여왔다고 하면서 "문제가 생길 줄 알았다".
여직원을 줄여왔다는 것은 여직원들이 고객들과 잘 놀아주면서 주문을 따오라고 했는데, 그러지 않으니 줄여왔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펑샤오강(馮小剛)도 이 이치를 잘 알았다. 몇년전 북경의 영화계모임에서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펑샤오강은 배우 먀오먀오(苗苗)에게 춤을 춰서 흥을 돋구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에게 왜 내가 너를 <방화>의 여주인공으로 뽑았는지 알도록 보여줘라."
펑샤오강 감독은 술자리는 여자들이 반드시 참석해야할 전장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배우가 교제화(交際花)가 될 수 없다면, 영원히 상을 받을 생각은 말아야 한다.
사건발생후, 한 직원이 이런 글을 썼다: "이번 사건은 반드시 위로부터 아래로의 각성을 불러올 것이다. 분명히 기업가들이 각골요상하는 박력을 격발시킬 것이다."
중국의 유명기업도 비지니스를 하면서 이런 추악한 술자리문화를 고려한다. 여직원은 성추행당한 후, 아무런 방법이 없어서 회사 식당에서 오가면서 소리쳐야 회사는 겨우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런 것을 '각골요상'이라고 한다면 정말 우리가 존경하는 '관우 어르신'을 욕보이는 것일 것이다.
왕모, 펑감독, 추이하이타오는 바로 이런 추악한 술자리문화의 막후인물들이다.
어찌되었건 류창동은 맨손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장쑤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나와, 한번은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계속 분투, 노력, 재기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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