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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교육

장강의 역류(逆流)와 황하의 불류(不流)

by 중은우시 2022. 9. 12.

글: 왕유락(王維洛)

 

1. 리커창이 선전에서 이런 말을 했다: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중국 베이다이허회의가 끝나고, 시진핑은 진저우(錦州)로 북상하여 랴오션전역기념관(遼瀋戰役記念館)을 참관했고, 리커창은 선전으로 남하하여 등소평의 동상에 헌화했다. 선전시찰기간동안 리커창은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말을 했고, 매체와 여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각종 서로 다른 해석과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소리>의 <시사대가담(時事大家談)>은 <'장강황하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리커창의 마지막 항쟁인가 어쩔 수 없는 고함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코멘트했다: "중국 총리 리커창은 지난 주 선전을 시찰할 때 두 번의 연설을 했다. "개혁개방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고,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한다." 그리고 등소평의 동상 아래에서 선전사람들에게 '황무지를 개척하는 소'의 정신을 드높여, 개혁개방의 혈로를 뚫고 나갈 것을 호소했다. 이와 동시에, 중공총서기 시진핑은 북상하여 랴오닝의 국유기업을 시찰했고, "자력갱생은 국가와 민족발전을 자신의 역량에 두는 기본점이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중국식 현대화는 "소수의 부유가 아니라, 전체인민의 공동부유이다"라고 강조했다. 관찰가들은 시진핑의 북상과 리커창의 남하는 확실히 남원북철(南轅北轍)로 서로 갈라서는 조짐이라고 말한다. 그중 리커창이 속속 등소평의 개혁개방노선을 견지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특히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세계에서 서로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시진핑세력이 정말 신비한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좌절당한 것일까? 리커창이 선전을 시찰할 때의 여러 말들은 현재 중공의 상황에서 파격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2. 장강의 역류와 황하의 불류

 

리커창의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말은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가? 리커창이 말한 '개혁개방은 중단될 수 없다."는 어떤 개혁개방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은 모두 필자가 본문에서 중요하게 토론할 이슈는 아니다.

 

본문에서 다를 것은 역사적으로 장강이 항상 서에서 동으로 흘렀느냐이고, 본문에서 다룰 것은역사상 황하는 어떠한 강이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떻게 흘렀던가? 기실 필자가 여기에서 얘기하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지리지식이고, 원래 중국의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가르쳐야할 기초지식이다.

 

2.1 장강은 원래 동에서 서로 흘렀다.

 

주여란(朱汝蘭)이 쓴 <장강전(長江傳)>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머나먼 옛날에, 지구에는 장강의 종적이 없다. 모체에서 자라던 영아시기의 장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거꾸로 누워있는 '도창하(倒淌河)'였다" 

 

주여란은 계속하여 이렇게 쓴다: "개략 2억여년전에, 그때 장강유역의 서부는 아직 옛 고지중해(古地中海)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때 고지중해는 아주 컸다. 테티스해(Tethys Ocean)로 불렸고, 24억년전부터 유라시아대륙의 남부를 횡단하는 거대한 해양이었다. 개략적인 범위는 서로는 피레네산, 알프스산에서 소아시아반도, 코카서스산, 이란고원, 파미르고원, 히말라야산을 거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자바섬에 이른다. 엄청난 바다였고, 하늘은 물에 닿고, 물은 하늘에 닿았다."

 

영아시기의 장강이 동에서 서로 흐른 원인은 그때의 지세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았기 때문이다.

 

주여란은 나아가 이렇게 설명한다: "그때의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았다. 청하남부, 사천, 운남서부, 운남중부, 귀주서부와 광서서부의 대부분은 모두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사천분지와 호북서부는 광활한 만이었다. 만은 동쪽으로 무협과 서릉협까지 이어지고, 호북의 자제는 당시에 바닷가였다. 이 바다는 남으로 인도양과 연결되고, 동으로는 태평양과 연결되어, 무척 넓었다.(필자주; 자제는 바로 삼협댐 소재지이다)

 

"개략 지금으로부터 1.8억년전, 지구에서 강렬한 조산(造山)활동이 벌어진다. 일종의 산맥을 형성하는 지각운동이다. 해저의 암석이 솟아오른다. 곤륜산맥, 커커시리산, 바얜카라산, 횡단산맥이 출현하고, 진령이 솟아오른다. 장강중하류의 남반부도 융기하여 육지가 된다. 이것은 힘싸움이다. 거대한 지각활동인 조산운동이 시작되자 고지중해의 넓은 해면은 대규모로 서쪽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티벳, 청해남부, 사천서부에서 물러나고, 귀주서부, 광서서부에서도 물러난다. 원시적인 운귀고원이 그 기회를 틈타 굴기한다. 아마도 너무 급속히 물러나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후세에 흔적을 약간 남기고 싶어서인지, 고지중해가 서쪽으로 축소된 후, 황단산맥, 진령, 운귀고원의 사이의 저지대에 파촉호(巴蜀湖), 운몽택(雲夢澤), 서창호(西昌湖), 전지(滇池)같은 큰 호수를 남긴다. 아마도 서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상호간에 수계로 연결되어 동에서 서로, 운남서남부의 남간해협을 거쳐 고지중해로 흘러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과 전혀 반대로 흐르는 서부고장강의 원형이다."

 

고장강은 동에서 서로 흘렀고, 그것은 지금의 흐름과 정반대이다.

 

"개략 지금으로부터 1.4억년전에, 지구에 더욱 큰 규모의 지각운동이 벌어지고, 상류의 당고랍산맥이 형성되고, 전체 청장고원이 서서히 솟아오른다. 고지중해는 더욱 축소된다.

 

지금으로부터 1억년전부터 사천분지가 완만하게 상승하고, 운몽택, 동정호분지가 하강한다. 그때는 무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서부의 고장강은 사천분지의 파촉호로 흘러들었고, 동부의 고장강은 운몽택, 동정분지의 상악호(湘鄂湖)로 흘러들어갔다.

 

지금으로부터 3천만년 내지 4천만년전에, 지구에서는 또 한번의 강렬한 지각운동이 벌어진다. 이전에 형성되었던 지층에 거의 모두 변화가 발생한다. 주름지거나, 변질되거나 단절되거나 상승한다. 이번의 최근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대규모의 지각운동으로, 히말라야산맥이 명성을 얻었으므로, 그것을 히말라야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형성된 주름대는 최신의 주름대이며, 현대까지도 활동이 여전히 강렬하다.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 분포하게 된다.

 

이번 운동에서 장강유역은 보편적으로 간혈적으로 상승한다. 

 

상류는 급격한 상승으로, 고산, 고원과 일부 분지가 형성되고, 하류의 작용으로 협곡이 형성된다; 중하류의 상승폭은 비교적 적어서, 일부 중,저산과 구릉이 형성되고, 동시에 저지대가 침하하여, 양호(兩湖), 남양(南襄), 파양(鄱陽), 소환(蘇皖)등의 평원이 형성된다.

 

이때의 땅모양과 윤곽은 이미 현대와 아주 비슷하다.

 

이것은 홍황대열변(洪荒大裂變)이다.

 

지금으로부터 300만년 내지 500만년전에, 히말라야산이 강렬하게 융기하면서 청장고원도 융기한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가 형성된 것이다.

 

호북서부에서 사천분지로 이어진 고장강은 침식작용이 강화되면서 더욱 동쪽으로 더 연장된다. 마지막에는 무협을 뚫고, 강물이 고산심곡 사이를 흘러 '동서장강'이 하나로 연결되게 된다.

 

고장강은 동에서 서로 흘렀고, 그때는 지세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장강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지세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기 때문이다. 장강이 거꾸로 흐르는 원인은 바로 지각운동이다.

 

2.2 황하는 원래 내륙하(內陸河)이고, 바다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

 

전 남경대학 지리학과 주임, 중국과학원 원사인 임미악(任美鍔) 교수는 <황하의 수사량(輸沙量, 모래수송량): 과거, 현재와 장래 - 지금으로부터 15만년이래의 황하모래수지표>(<지구과학진전>잡지. 제21권 제6기. 2006년 6월)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황하는 150ka BP에 삼문협(三門峽)을 뚫고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말의 뜻은 이러하다: 황하는 지금으로부터 15만년전에 삼문협을 뚫고 동해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BP는 Before Present의 약자로 지금으로부터아른 의미이다. 날짜의 표준화를 위하여, 1950년을 고고학계에서는 "현재"로 규정한다. 지금으로부터라는 의미는 바로 1950년으로부터라는 의미이다. 150ka는 150천년 즉 15만년이라는 뜻이다. 150ka BP라는 것은 15만년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1950년부터 15만년전이라는 것이다.

 

임미악 교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황하가 삼문협을 뚫고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 시간은 150ka BP가량이다. 황하는 원래약간의 독립된 분지이고, 하류의 마지막 분지는 섬서, 하남과 산서의 3개 성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분지에는 물이 모여서 호수가 이루어졌고, 두터운 호상침적지층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고삼문호(古三門湖)이다. 고삼문호의 면적은 아주 컸고, 호수가 존재한 기간은 약 5Ma이다. 삼문협고호분이 갈라진 것은 현대황하가 형성되었다는 중요한 표지이다. 왕소민(王蘇民)등은 삼문협댐의 상류 약 7km 황하좌안의 278.3미터에 이르는 두터운 침적지층이 형성에 대하여 샘플을 채취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곳은 황하3급계단지 즉 최고계단지 꼭대기층의 침적물(1개샘플)의 열발광연대측정법으로 계산할 때 148ka BP이다. 삼문협댐부근의 침적지층위의 먼지황토의 호상침적의 하한 3개샘플의 열발광연대측정법상의 계산으로 207-100ka BP이다. 전자는 황하가 처음 삼문협을 가르고 나와 동해로 흘러들어간 시간을 반영하고, 후자는 삼문고호수의 소실을 반영한다. 먼지는 호수에서 퇴적한 연대이다. 3개샘플의 위치가 침적면에서 1미터가량의 상하차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연도측정결과에 약간 차이가 있게 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3급계단지꼭대기층의 침적물의 연대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황하가 바다로 흘러들어간 시간을 150ka BP가량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은 150ka BP를 황하가 바다로 흘러들어간 연대라는 견해를 취하기로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황하는 지금으로부터 15만년전에 삼문협을 가르고 동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갔다. 이전에 황하는 원래 약간 독립된 분지를 구성하고, 하류의 마지막 분지는 섬서, 하남과 산서 세개 성 사이에 있었다. 분지는 물을 모아서 호수가 되었고 그것이 바로 고삼문호이다. 고삼문호는 면적이 넓었고, 존재시간도 길었다. 말이 삼문협을 가르고 흐른 것은 현대황하형성의 중요표지이다. 이때부터 황하가 바다로 흘러들어갔고, 황하가 가져온 모래로 화북평원이 형성되고, 일부 소북평원도 형성된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임미악 교수는 필자가 남경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수로 있을 때 과주임이었다. 임미악교수는 과학원의 '노적학부위원'이다. 필자는 시종 과학원의 '노적학부위원'의 학술수준이 지금의 원사보다 훨씬 높았다고 생각한다. 임미악교수는 학문에 엄격했다. 황하가 언제 삼문협을 가르고 동해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는지에 대하여 중국의 학술계에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데 반드시 조심해야 했다. 그리하여 글을 읽기가 비교적 어렵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황하는 반고가 천지를 만든 이래 동에서 서로 흐르든 강물이었고, 지금으로부터 15만년전까지 황하는 많은 호수들의 물을 모아서 삼문협에 이르러 흐름을 멈추었고, 수량균형은 주로 증발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진오동(陳梧桐)과 진명걸(陳名傑)이 쓴 <황하전(黃河傳)>에 따르면, 황하가 삼문협을 가르고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청장고원에서 삼문협 사이에 약간의 대형호수와 여러개의 작은 호수와 습지가 있었다고 본다. "지면상으로 흐르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점차 고호수분지에 모이고, 약간의 각자 독립한 내륙호수수계가 형성된다. 청장고원의 바얜카라산의 북록의 한 흐르는 물은 이곳에서 동남으로 흘렀다. 적석산 즉 아니마칭산과 바얜카라산이 남북으로 끼고 있어서, 당시 침하하던 지금의 뤄이가이초원지구로 흘렀고, 이곳에 모여서 고뤄이가이호수가 형성된다. 서경산과 아니마칭산의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또 다른 물은 두 삼의 협곡에서 동남에서 서북방향으로 흘러, 지금의 청해성 공화현의 고분지에 닿는다. 고공화분지의 동쪽에는 당시 도 하나의 강물이 흘렀다. 랍척산 남록의 협곡을 따라 동으로 흘러 지금의 감숙으로 가고 지금의 난주를 거쳐, 북으로 지금의 영하지구로 흘러가고, 하란산 곁에 모여서 단층함락으로 형성된 은천분지에 모인다. 그리하여 고은천호(古銀川湖)가 형성된다. 동오르도스고원의 동쪽에 또 하나의 강물이 일련의 작은 호수를 거쳐 분위분지로 들어가서 고분위호(古汾渭湖)를 형성한다. 분위분지의 동쪽은 높은 중조산(中條山)이 서 있고, 산백동쪽을 흐르는 물은 산의 동쪽구릉에 막혀서 구릉남북의 서로 다른 강으로 흘러 동쪽의 바다로 들어간다.이렇게 하여 서쪽의 청장고원에서 동쪽의 산동구릉까지, 점차 4단의 각각 서로 다른 수원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은 하류를 가지게 된다. 고황하는 바로 이렇게 독립된 수계를 기초로 점차 변화하여 형성된다."

 

진오동과 진명걸은 이어서 이렇게 쓴다: "지질연대 제4기의 초기는 지금으로부터 100만년전후이다. 이 지구의 빙천융화로 기후과 온난, 습윤해지고 강수량이 충분해지면서 강물이 넘치게 된다. 강물이 흐르는서 충쇄하절(沖刷下切)작용이 계속 강화되면서, 흐르는 물의 충쇄는 하상(河床)을 점차 깊게 만들고, 이로 인해 소원침식(溯源侵蝕)작용이 일어난다. 수원이 위치를 하류가 흐르른 반대방향으로 이동하게 만들고 상류가 계속하여 연장된다. 흐르는 물의 하절(下切)은 앞을 가로막는 고산준령을 충격하여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류가 계속하여 연장된다. 이때, 중국 중서부의 고원이 계속 상승단계이므로 더더욱 이들 강물의 하절침식작용을 강화하게 된다.흐르는 물의 소원침식과 하절침식은 마침내 두 강물의 중간분수령을 연결시키게 되고, 각각 봉쇄된 호수에 출구가 생기게 한다. 그리하여 각각 독립되었던 수계가 연결되고, 고황하는 이렇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고황하는 계속하여 완강한 힘으로 그 소원하절의 침식작용을 발휘한다. 상류의 물들이 대량으로 삼문고호에 흘러들어오게 하여, 수위가 상승한다. 그리하여 삼문지뢰(地磊)의 고도를 넘어서게 되고, 호숫물이 동으로 천천히 흐르면서 계속하여 '하절'작용을 한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마침내 삼문협을 뚫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임미악교수가 말한 황하가 지금으로부터 15만년전에 삼문협을 가르고 동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3. 결론

 

리커창이 말한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역사상 장강은 동에서 서로 흘렀고, 지금의 흐름과 정반대이다. 역사상 황하는 내륙하였다.

 

필자는 중국의 많은 문제는 모두 교육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초중등학교의 기초교육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장강, 황하의 기원과 발전에 관하여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수업에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중에 모택동의 시사 "갱립서강석벽(更立西江石壁), 절단무산운우(截斷武山雲雨), 고협출평호(高峽出平湖), 신녀응무양(神女應無恙), 당경세계수(當驚世界殊)"는 중공이 삼협공정을 하는 근거가 되었다. '고협출평호'라는 말은 삼협댐의 위치가 얼마인지는 댐의 끝인 중경(조천문)의 수위가 얼마나 높은지에 따르게 되었다. 주은래가 삼협댐의 위치를 해발200미터로 정한 것은 중경(조천문)의 수위가 해발 185미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붕이 당중앙에 삽협댐의 위치를 해발 185미터로 건의한 것은 중경(조천문)의 수위가 해발 185미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협공정의 타당성검토보고서에서 논증후에 제출한 삼협댐의 수위가 175미터인 것은 삼협댐 각지의 수위도 해발 175미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삼협댐 타당성논증니사조(泥沙組)에서 제출한 삼협하단은 댐을 건설하기 전의 수력파도(水力坡度)가 만분의 2.3이며, 댐을 건설한 후에는 20년만의 한번 만나는 홍수때의 수력파도를 원래의 1/3인 만분의 0.7로 보았다. 삼협공정의 타당성검토논증이민조(移民組)는 이민계획을 세울 때, 출발점은 삼협댐은 수력파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택동이 '고협출평호'라고 말했기 때문에.

 

문제는 삼협공정의 의사결정때, 절대다수의 중공지도자들과 절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삼협댐에 수력파고가 없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모두 '고협출평호'라고 믿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기본적인 지리지식이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중학교에서 기본지식교육을 받지 못했다. 삼협댐은 2003년부터 운영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미 19년이 흘렀다. 삼협댐 19년의 운행경험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삼협댐은 수력파고가 존재한다고. 수력파고의 크기는 유량의 대소에 따라 변화한다. 유량이 크면, 삼협댐의 수력파고도 높다. 특히 홍수기의 수력파고는 아주 크다; 유량이 적으면 삼협댐의 수력파고는 작다. 특히 갈수기의 수력파고는 작다. 삼협댐의 운영기간이 길어지면서 수력파고도 점차 증대된다. 댐을 건설하기 전의 만분의 2.3에 수렴한다. 이런 동태변화는 삼협댐지구 중경시에 대한 위협이 거대하다.

 

삼협공정은 잘못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남수북조공정의 근거도 역시 모택동의 한 마디이다. "남방은 물이 많고(南方水多), 북방은 물이 적다(北方水少), 약간의 물을 이동시키는 것도 괜찮다." 약간의 물은 어느 정도인가? 매년 1억입방미터? 매년 10억입방미터? 아니면 매년 100억입방미터? 아니면 매년 400억입방미터? 2022년 7월, 8월 장강유역의 물상황을 보면, 말라버린 동정호, 말라버린 파양호를 보면서 모택동의 말을 생각해보라. 모택동의 말에 따라 만든 남수북조공정을 이제 어떡할 것인가?

 

장강의 '역류'는 조산운동의 위력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서남부지구가 융기한 것은 강렬한 조산운동의 결과이다. 이곳의 지질은 파쇄되고 지진위험이 크다. 이곳은 또한 서부수력발전의 중요지구이고, 댐이 많다. 200미터높이의 댐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315미터의 댐도 곧 이곳에 완공될 것이다. 기본적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지진의 큰 위험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의사결정권자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듣기로, 지금 중국초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러시아어를 가르칠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 23학년때 러시아어를 배운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러시아어를 초등학교교육에서 가르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시진핑사상을 초중고등대학교육에 도입한다고 한다. 기억하기로 남경대학에서 공부할 때 마르크스주의를 배워야 했다. 마르크스정치경제학을 포함하여. 듣기로, 정치경제학을 가르친 김(金)교수는 국내에서 이 분야의 권위자라고 했다. 그러나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김교수가 정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김교수는 단지 학생들에게 그가 가르치는 내용을 외우라고만 했다. 특히 문제에 대한 표준답안을. 시험칠 때, 표준답안에 따라 답을 쓰면 가볍게 통과된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닐 때, 과에서 한 교수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강의했다. 당연히 독일어로 가르쳤고 독일어 원서를 보았다. 그제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리 김교수는 정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남경대학의 김교수는 국내의 권위자인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국내에 진정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학생들에게 이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진핑사상을 초중고등대학교육에 도입한다는데, 시진핑사상을 진정으로 아는 교육인재가 있기는 할까? 시진핑사상을 초중고등대학생에게 알아듣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진핑사상을 초중고등대학과정에 넣는다는 것은 시진핑사상이 심오하다는 것을 가르칠 생각인가, 아니면 시진핑사상이 경박하다는 것을 가르칠 생각인가.

 

중국의 초중고등대학교육의 문제중 하나는 가르쳐야할 것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지 말아야할 것은 함부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언제 중국의 초중고등대학생들이 모두 알게 될까? 장강은 원래 동에서 서로 흘렀다는 것을. 황하는 원래 내륙하라는 것을. 단지 15만년전에 삼문협을 가르고 동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상하이와 장강삼각주는 장강이 가져온 진흙과 모래가 쌓여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화북평원(소북평원포함)의 일부분은 역시 황하가 가져다준 진흙과 모래가 쌓인 것이라는 것을...그렇다면 중국은 많은 멍청한 큰 공정을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황하삼문협댐공정, 장강삼협댐공정, 남수북조공정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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