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교육

대입만점논술 글로 본 중국교육의 문제: "지식은 있으나, 사상은 없다"

중은우시 2020. 8. 6. 22:18

글: 나정정(羅婷婷)

 

최근 중국 저장상의 <생활재수상(生活在樹上)>이라는 대입에서 만점을 받은 논술글이 여론의 촛점이 되었다. 그 글은 잘 모르는 명인의 명언과 생경한 단어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네티즌들에게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다.

 

이 대입논술에서 만점을 받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대사회는 하이데거가 한 말 "모든 실천이 전통은 이미 와해되었다"를 효시(嚆矢)로 한다. 가정과 사회생활에 남상(濫觴)하는 기대는 이제 거울로 삼을 의의가 사라지고 있다. 다만 무은(無垠)해 보이는 미래의 하늘을 마주하며,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위의 남작>의 생활을 따라 너무 빨리 진핵(振翮)했다."

 

작자는 고의로 문장에서 적지 않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사라진 생경한 단어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효시(嚆矢), 진핵(振翮), 박척(薄脊), 자자골골(孜孜矻矻), 일점(一覘), 옥지(玉墀), 행직(婞直)...

 

이 글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 적지 않은 파란을 불러 왔다.

 

이 글을 실은 <교학월간>에 따르면, 당시 대학입시 채점관이 채첨을 할때, 첫번째 채점관은 39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번째, 세번째 채첨관은 55점의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논술심사팀에서 회의한 후, 만점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저장성 대학입시논술의 채첨관의 교수는 이 글이 "노도(老到)와 회삽(晦澀)이 함께 있다. 사유는 심각(深刻)과 온당(穩當)을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다른 학생들이 '이 글의 회삽을 모방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미디어종사자인 차오린(曹林)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 글은 어문에 대한 모욕이고, 중국어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쓴 장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점 논술글은 마땅히 문자와 사상의 통투성(通透性)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한번에 읽고서 감전된 것같이 느껴야 깊이있는 좋은 글이다. 유쾌하게 읽는 쾌감과 음미할수록 맛이 나고, 사상의 깊이는 공명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이 따위 길굴오아(佶屈聱牙, 읽기 어렵다)해서 읽는게 고통이고 몇번을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에 왜 만점을 준단 말인가? 채점관이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몰라서인가?"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이 작문은 작자가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드러낸다. 그래서 인용을 많이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문에 나타난 내용은 작자의 독서에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너무 많은 책을 읽었지만, 모두 자신의 연령대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읽는 순서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소화불량에 걸린 것이다."

 

그는 질문한다: "이런 사람말같지 않은 글에 만점을 주다니, 도대체 글쓰는 방법론과 가치관을 어떻게 이끄는 것이냐?" "이런 헛소리에 만점을 주다니, 채점한 사람도 흐리멍텅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작가인 마보용(馬伯庸)은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글에서 많은 생경한 단어를 쓰고, 생경한 전고를 인용하고, 학술용어를 썼는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냥 평범하고 소박한 단어로 만들어도 된다. 네 글자로 평하자면, "사불배위(辭不配位)" 글자가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중국의 미디어종사자 류(劉)선생은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보면 머리가 아프다"

 

"주체는 그저 어려운 말로 글자수만 맞췄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단순한 나열이다. 논증이 없다. 논리라고 할 것도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병신음(無病呻吟)" 병도 걸리지 않으면서 신음하거나,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기술을 쓰는' 것일 뿐이다. 전형적으로 책은 많이 읽었지만,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 유형이다.

 

사회에서도 이 글에 대하여는 양극화된 견해가 있다. 류선생은 약간 우스개를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찬동하는 대부분은 중국국내에서 많이 보이는 '지도분자(地道分子, 지도는 '안다'는 뜻임)'. 지식만 있고 사상은 없는 그런 유형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포인트'는 아주 많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쪽의 한 유형은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 유형은 정말로 문장판별력이 있어서, 이런 쓰레기같은 문자유희를 꿰뚫어보는 사람이다."

 

재미작가 링창저우(凌滄洲)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건은 '호로승난판호로안(葫蘆僧亂判葫蘆案)'(홍루몽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건을 엉망진창으로 자기마음대로 판결한 경우이다)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일종의 조소(嘲笑)이다. '멍청한 선생'이 작문을 마음대로 채점해버린다면, 학생이 말도 안되는 글을 써도 선생은 백점을 주는 것이다.

 

링창저우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국사회와 관료사회는 바로 이런 '공동무물(空洞無物)'의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관료가 연설대에 올라가서 말을 하게 되면 모조리 정치적으로 상투적인 말뿐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없다. 다만 동시에 학문이 있는 척해야 하고, 성실한 척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논쟁거리가 된 만점논술글은 중국식 교육이 '지식만 있고 사상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뜨겁게 불러 일으켰다. 류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국가교육위원회의 사람이 중국의 교육을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고 한다: 1950년대에 설계하였고, 빠르게 기술노동자를 양산하는데 쓰는 체계이다. 근본적으로 학생의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