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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교육

야우싱퉁(丘成桐): 이대로 가면 중국의 IT는 최소 20년 도퇴된다.

by 중은우시 2020. 8. 26.

글: 한졸(漢卒)

 

야우싱퉁(Shing-Tung Yau, 丘成桐)

하버드대학 종신교수, 국제저명수학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 수학박사, 미국과학원 원사, 중국과학원 외국인원사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받은 최초의 중국계

볼프수학상을 받은 2번째 중국계

 

"만일 기초교육을 중시하지 않으면, 현재의 본과교육모델로는 국내에서 일류인재를 배양할 수 없다." 수학대가 야우싱퉁은 베이징에서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바로 그의 우려사항을 직설적으로 말했다.

 

중국계로 수학계의 지도자급 인물인 야우싱퉁 선생은 학술상의 조예가 깊을 뿐아니라, 국내 수학인재의 배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소재한 하버드대학에서는 중국대학과 대학생들이 많이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야우선생은 당연히 이에 대해 발언권이 있다. 그러나 국내대학들과 직접 접촉해본 후, 야우싱퉁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론을 내놓았다: "최근 들어, 중국대학의 기초교욱은 많은 문제가 있다. 대학생의 기초적인 수준 특히 수양과 학풍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의 기초교육이 미국보다 못지 않다고 하는데, 실무에서 나는 발견했다. 국내대학의 교육수준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지 않다. 미국의 대학교육은 중국보다 훨씬 낫다. 대학원생교육은 미국이 중국보다 더 훨씬 낫다."

 

그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하버드대학의 이학원은 매년 개략 20면의 이과를 졸업한 중국유학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다. 다수는 북경대학등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학업성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출신의 학생들과 비교할 때, 이들 중국에서 온 학생들의 졸업성적은 다른 나라의 학생들보다 나은 점을 발견할 수 없다."

 

3년전, 야우싱퉁은 2명의 북경대학에서 온 유학생을 제자로 받았다. 그런데 두 학생은 하버드에 온 후 한 학생은 3번 연속 시험에 낙제했다. 학교는 그 학생에게 다시 본과수업을 듣도록 건의했다. 그래도 안되었다. 할 수 없이 학교를 떠났다. 또 다른 학생도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 노력을 한 후에 크게 좋아지긴 했다.

 

"나는 매년 여러 중국학생의 추천서를 받는다. 나중에 보면 많은 경우가 허위이다. 학생 자신이 추천서를 쓰고 그 후에 교수에게 서명해달라고 부탁한다. 많은 교수들이 책임감이 없다." 그리고 그가 접촉해본 많은 중국학생들은 아주 교만했다. 열심히 공부하려 하지 않아서 그를 많이 실망시켰다. 야우싱퉁은 말한다. 10여년전에 하버드에 공부하러온 중국학생은 최소한 시험에서 문제는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이런 상황에 변화가 발생했다. "이전에 중국에서 온 학생들은 최소한 시험성적은 반에서 1/3안에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기껏해야 뒤에서 1/3에 든다. 당연히 잘하는 학생도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말해서 평균수준이 내려갔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 심지어 올림피아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들어온 후에 성적이 좋지 못했다. 새로 훈련을 받고서야 좋아지기도 했다."

 

이 경험이 풍부한 수학의 대가는 이런 현상은 본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보았다. 학생이 본과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학문을 하는 수양등 기본적인 문제에서 마땅히 했어야할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결국 본과교육이 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 괴현상 1: 유명교수가 본과생을 가르치지 않는다.

 

야우싱퉁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국내대햑의 일부 '괴현상'을 발견했다. 일부 소위 '유명교수'는 본과수업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을 예로 들어 소개했다. 하버드의 교수수량은 중국대학보다 훨씬 적다. 수학과에는 17,8명의 정식교수가 있다. 다만 수학과는 매년 1,2번 본과생과 연구생의 학습진도를 연구토론하는 회의를 개최한다. 교수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본과생을 배양한다. 에를 들어, 수학과의 본과생은 1학년때 학생의 상황에 맞추어 서로 다른 수준으로 나누고, 가장 뛰어난 학생을 선택하여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본과생이 졸업할 때면, 일반적으로 2,3개의 졸업논문은 1류학술잡지에 실릴 수 있는 수준이다. "논문수준은 북경대학의 교수보다 낫다." 야우싱퉁의 말이다.

 

야우싱퉁에 따르면, 개략 1998년경, 국내의 한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신청을 했다. 신청서에는 자신의 학문수준이 아주 높다고 되어 있었고, 추천서에는 그가 북경대학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라고 쓰여 있었다. 야우선생이 당시 신청서를 보았는데, 당연히 학생이 이렇게 뛰어나니, 북경에 왔을 때, 그와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북경대학의 20여명의 교수들과 좌담회를 할 때, 이 20여명의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 아무도 그 학생을 몰랐다. "나는 내가 잘못 알았나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한 조교수가 확인해주었다. 확실히 그런 학생이 있다고."

 

"보기에 가장 뛰어난 학생인데도, 20여명의 교수들이 얼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교수가 본과생 배양에 기본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중에 그 학생은 공부하는 시야가 아주 좁고, 그저 시험성적만 좋아서,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우싱퉁은 교수가 본과생을 가르치지 않는데, 그 이유가 교수의 수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소개했다. 미국의 대학에서 수학과의 교수는 20여명인데, 북경대학의 수학원은 교수가 100여명이다. 미국의 4,5배이다. 하버드는 학생이 6,400명인데, 북경대학은 1만여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중국은 교수가 본과생을 가르쳐서 수준을 올려줄 여건이 충분한 것이다.

 

야우선생은 한 마디로 정곡을 찌른다: "현재 유명대학의 교수들은 시간을 학술에 쏟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먼저 해외로 가서 이익을 얻으려 한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외국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평가를 올린다. 1년에 3달 내지 5달은 외국에 나간다. 그 교수가 능력이 있든지 없든지, 박사학위평가, 기금회, 심지어 대학의 어떤 활동에도 모두 이들이 나타난다. 최소한 1/3의 시간은 학술거래와 표를 모으는데 쓰는 것같다. 나머지 2/3도 학술에 쏟지 않고."

 

괴현상 2: 1명의 교수가 30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한다.

 

야우싱퉁 선생이 곤혹스럽게 느끼는 또 한 가지 현상은 현재 중국의 어떤 교수는 1명이 대학원생 30명을 지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육의 질이 보장되겠는가? 설사 하버드와 같은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도 1명의 교수는 5,6명의 학생만 지도해도 아주 많은 것이다. 국내의 이런 방식은 전형적으로 양을 중시하고 질은 경시하는 태도이다. 질이 엉망이면 어떻게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스승이 자신의 수순도 높지 않은데, 게가다 30명이나 되는 학생을 가르치다니, 정말 엉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박사가 될 수있다고 여긴다. 박사논문은 베껴서 써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계속 되면 아주 위험하다."

 

얼마전에 인대부중(人大附中, 북경에서 북경4중과 더불어 최고명문고등학교)의 학생과 교류한 후, 야우싱퉁은 고등학교에도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 중국의 많은 도시의 고등학교는 1개반에 80명의 학생이 있다. 이렇게 많은 학생을 교사가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 약간 좋은 학교라면 1개반에 일반적으로 20여명의 학생이 있을 뿐이다.

 

야우싱퉁에게 선명한 기억을 남긴 일이 있다: "개략 4년전, 한 북경대학의 박사졸업생이 나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그는 자신의 박사논문이 아주 뛰어나다고 말하며, 하버드에서 교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후로 3번이나 서신을 받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그는 중국의 어느 원사의 제자였다. 그런데 나는 그의 박사논문은 최소한 70년전에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의 논문수준은 홍콩중문대학 학부졸업생 수준이었다. 심지어 홍콩중문대학 학부졸업생의 수준도 안되었다. 그러니 하버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학생은 북경대학에서 엄청나게 띄워주고 있었다. 무슨 21살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천재라고 하면서. 다만 나는 그의 논문수준이 아주 낮았다고 여겨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야우싱퉁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현재 듣기로 북경대학이 그 학생을 교수로 채용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진정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실망이 크다."

 

야우싱퉁은 본과와 대학원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직접적인 악영향은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져 버린다. "교육은 장기적인 것이다. 기본적인 것을 장악하지 못하면 앞날은 없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아주 초조해 했다.

 

그래서 야우싱퉁은 저장대학에 수학영재반을 설립했다. 선진적인 수학교육방법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대학의 일부 선진적인 교육방법으로 중국학생들의 기초학문을 착실하게 다져주려는 것이다. "미국의 방법을 선택하여 교육하는 것은 숭양미외(崇洋媚外)가 아니다. 수학교육은 국경선이 없다. 나는 반드시 가장 우수한 방법으로 중국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다."

 

국내학술기풍에 우려가 많다.

 

그는 최근 중국의 학술기구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더욱 우려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중국의 학술기풍이 이미 반드시 정돈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학풍이 엉망이다. 나는 호소한다. 만일 이 문제를 중시하지 않으면, 중국의 과학기술발전은 최소 20년은 도퇴된다. 만일 이런 기초교육을 중시하지 않으면, 문제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고, 그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야우싱퉁은 교육이 양을 중시하고 질을 중시하지 않는 원인은 바로 일부 대학과 주무부서가 '문혁'식의 '무당 만근'의 형식으로 실적을 사우에 보고하고, 교육의 진정한 사명은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야우싱퉁은 두 건의 그가 직접 겪은 사례를 얘기한다:

 

"수학계에는 아주 중요한 추측이 있다. 100여년간 어느 수학자도 이것을 풀지 못했고 아주 중요한 명제이다. 한 친구가 나의 건으로 아주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1995년 나는 시기가 되었다고 여기고, 기존의 방향으로 유사이레 최초의 성과를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에 토론반을 만들었다. 이 토론반은 개방적이었고, 많은 청년학자들을 끌어모았다. 다만, 나중에 참가했던 일부 교수들이 더 이상 하지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그들은 이 일을 하게 되면 글을 쓸 시간이 적어진다고 우려했다. 매년 논문을 써야 하고,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느냐가 그들의 관심사인데, 이처럼 시간과 노력만 들는 일은 그들에게 계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많은 젊은 포스닥들은 이것을 계속 연구하고 싶어했지만, 이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계속 연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논문수량이 적게될까봐 우려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심지어 강제로 간여했다. 자신은 학문도 없고, 충동도 없다. 그러면서 젊은 학자들이 하려는 것도 막는다. 결국 원래 추측을 정복할 희망이 있었던 그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야우싱퉁은 광동 중산대학 수학원의 주원장을 찾아 이 연구를 계속했다. 주원장은 아주 뛰어난 성적을 냈다. "결과적으로 다시 당시 이 일을 반대하던 일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게 되었다. 주원장에 불만을 표시했다. 2002년 천싱선(陳省身, Shiing-shen Chern) 선생과 내가 창의하여 세계수학대회를 열었는데, 대회에서 중국수학기구에 45분의 발언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정한 명단에는 모조리 베이징만 있었다. 상하이등 기타지방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올림픽 100미터경기처럼, 주원장의 실적은 당시 주목할 만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는 할애해주지 않았다."

 

"내 제자중 한명이 현재는 원사인데, 막 졸업했을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잘못하고서도 고치려 하지 않았고, 잘못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실적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인재를 끌어모으고, 원사이기도 하며, 기금회도 관장한다. 평상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겁낸다. 그의 고정직장은 국외에 있는데, 인재를 데려오기 위하여 그에게 1년에 최소한 100만위안의 급여를 준다. 여기에는 경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여러 곳에서 교수로 있는데, 어떤 젊은학자는 그보다 실력이 낫다. 다만 급여는 그의 1/10도 되지 않는다. 해외 유명대학 예를 들어, 하버드에서는 9개월의 수업시간동안 교수가 겸직하는 것은 위법이다. 반드시 전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많이 겸직하고 있다. 그가 학생일 때는 괜찮았었다. 현재는 학문이 그저 이류일 뿐이다. 그가 해외에서 받은 상은 모두 내가 도와주거나 내가 지도하여 얻은 것이다. 국내대학에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그에게 거금을 주는데,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내가 십여년전에 쓴 글을 기본적으로 이름만 바꾸어서 자신이 쓴 것처럼 내고 있다. 이런 학풍은 많은 학생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그다지 많은 시간을 연구하지 않고도 원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를 비판하면, 그는 내가 황당하고 가소롭다고 말한다. 정말 비도덕적이다."

 

야우싱퉁은 이렇게 소개한다. 당시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그를 가르쳤다. "나의 아들에게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처도 내가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였다." 졸업하고 몇년이 지나서, 하버드의 한 교수가 야우싱퉁에게 말해준다. 그 학생이 자신의 논문을 표절했다고. 젊은 학자를 보호해주려는 생각에서 깊이 추궁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런데 결과는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었다.

 

야우선생은 말한다. 그의 나쁜 짓은 더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젊은 학자의 글이 괜찮다고 여기져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진정한 작자보다 앞에 써달라고 요구한다. 만일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국내에서 연구경비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추천서를 아주 나쁘게 쓰고 앞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만들겠다고 협박한다. 그리하여 진정 학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한다.

 

"듣기로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한다고 한다. 학풍이 이 지경으로 나빠지니, 그의 스승으로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자들은 더더욱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나에게는 분명히 얘기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가 국제잡지에 실은 논문이 잘못되었다. 당시 마침 국내의 두명의 방문학자가 야우싱퉁의 연구실에 와 있었는데, 야우싱퉁은 그들에게 이 잘못을 해결해도라고 맡겼고, 2주만에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야우선생이 이것은 그의 논문에서 나타난 문제라고 얘기하자, "두 방문학자는 깜짝 놀라고, 더 이상 하려하지 않았다. 그가 보복할까봐 겁낸 것이다. 봐라. 현재의 학풍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우리는 천싱선 선생의 학풍을 배워야 한다.

 

학풍 방면에서, 수학대가인 천싱선의 애제자로서, 야우싱퉁은 지금도 은사의 학풍에 찬사를 금치 못한다. 그야말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 따라야할 방향이라고 여긴다.

 

"천선생이 학문을 할 때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해외의 몇몇 학자들이 잘못을 지적했다. 방법이 없다. 잘못을 인정했다."

 

야우싱퉁은 말한다 .1930년대, 천싱션등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로 유학한 후, 공부를 마치면 모두 귀국했다. 해외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학문을 가져와서 국내의 많은 대학에서 서로 교류했고, 학풍은 아주 좋았다.

 

비록 당시 여건은 열악했지만, 천싱션이ㅡ 수학강의는 모두 손을 쓰거나 유인물이었지만, 그런 조건하에서, 천싱션은 거의 대부분의 수학저작을 보았고, 결국 획기적인 공헌을 한다. 화뤄겅(華羅庚) 선생등과 공동으로 중국에서 일련의 수학인재를 길러냈다.

 

이들 수학개척자들의 노력으로 1946, 47년에 중국에서 제1대 수학자들이 배출된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세계1류급이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화뤄겅 선생이 귀국한 후, 루치컹(陸啓鏗), 구차오하오(谷超豪), 왕위안(王元), 양러(楊樂), 장광허우(張廣厚), 천징룬(陳景潤), 판청동(潘承洞), 이런 인재들이 연이어 두각을 나타낸다. 야우싱퉁은 '문혁'이전에 기본적으로 중국수학은 이미 세계일류에 근접했었다. 다만 나중에 대햑진, 반우, 그리고 '문혁'등의 정치운동을 겪으면서 이것은 모두 파괴되었다.

 

야우선생은 은사에 대하여 지금도 그리워한다. 특히 선배대가의 학문에서 중국과 서양을 관통하는 기질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우싱퉁 본인은 심후한 고문(古文)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 자주 <사기>를 읽는다. 그가 예전에 쓴 고문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다: 그중 이런 내용이 있다:

 

무내화하수중장성미수(無奈華夏雖衆長城未修), 천지수관하자난용(天地雖寬瑕疵難容),

종구덕불여구미(終究德不呂歐美), 역불체호일소(力不逮乎日蘇),

근지부역지엽불영(根之腐亦枝葉不榮), 엽지고역근기하양(葉之枯亦根基何養)

 

어쩔 수 없구나, 중국은 사람이 많지만 장성은 아직 만들지 못했고, 천지는 비록 넓으나 하자는 용납해주지 않는다.

어쨌든 덕은 미국유럽보다 못하고, 힘은 일본소련보다 못하다.

뿌리가 썩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할 수 없고, 잎이 마르면, 뿌리는 무엇으로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야우싱퉁은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생할수준은 올라갔으니 학술에서도 더욱 큰 성적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필생의 두 가지 희망

 

영국수학자 존 라츠는 야우싱퉁을 "중국인수학계의 지도자"라고 하였다. 천싱션등 일대의 대가들이 서거한 후, 중임은 이제 야우싱퉁의 어깨에 놓였다.

 

"지도자의 일은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 세운 뜻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1등의 수학연구를 하는 것으로 천고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며, 둘은 중국수학교육에 봉사하여 중국이 수학강국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야우싱퉁의 말이다.

 

"절박한 문제는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학풍은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우수한 대학들과 비교하여, 중국은 여전히 격차가 크다.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 야우싱통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먼저, 중국학생의 자질은 하버드의 학생들과 비견할 만하다. 만일 좋은 스승과 좋은 기풍만 있다면, 제대로 길러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만일'을 특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