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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임표)

"주덕(朱德)의 편담(扁擔, 멜대)"과 "임표(林彪)의 편담"

by 중은우시 2022. 9. 5.

글: 임휘(林輝)

편담(扁擔): 주덕편담(朱德扁担), 부준란나(不准乱拿)라는 여덟글자가 쓰여있다.

1950년대초, 토비(土匪)출신의 중공 전 군사지도자 주덕의 간고(艱苦)하고, 소박한 정신을 칭송하는 글인 <주덕의 편담>이 소학교 교재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글은 조작혐의가 있어 작년에 교과서에서 삭제된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조작혐의가 있는 글이 1967년 2월 정치적 원인으로 주인공을 "임표"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년 후 임표사건이 발생하고나서, 주인공은 다시 원래대로 주덕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주석의 편담"도 날조된 것이 아닌가?

 

먼저 이 정치적 풍운변화에 흔들린 글의 내용을 보기로 하자. 대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1928년 주덕과 모택동은 폭동에 실패하여 도망쳐서 정강산에서 만난 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사람을 5,6십리 떨어져 있는 모평(茅坪)으로 보내 식량을 구해오도록 했다. 당시 길은 모두 산길이고 오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보니, 군장인 주덕도 전사들과 함께 식량을 운반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가슴아파 그의 편담을 숨겨버린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주덕은 다시 편담을 하나 구해와서 "주덕의 편담"이라는 글자를 새겨넣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은 그의 편담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다. 

 

한 천애(天涯)의 네티즌은 이렇게 지적한다: 현재 소학교 교과서의 <주덕의 편담>에서 편담에 새긴 글자는 "주덕편담(朱德扁擔), 부준란나(不準亂拿)"(주덕의 편담이다. 함부로 가져가지 말라)라는 8글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전의 내용에는 "주덕기(朱德記, 주덕이 기록하다)"라는 글자였다고 되어 있다.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다. 혹은 둘 다 날조인가? 설마 편집자들이 이 교과서 글을 넣기 전에 당사자인 주덕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단 말인가?

 

또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지적한다. 현재 교과서에 수록된 박물관에 보관된 "주덕의 편담"은 짝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간체자(簡體字)가 없었기 때문이다. "담(担)의 간체자는 "담(擔)"이다."란(乱)"의 간체자는 "란(亂)"이다. 보기에 박물관은 소장할 때 이 점을 잊었던 것같다. 이러니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위에서 설명한 조작부분외에 더욱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것은 주인공이 두번 바뀐 것이다. 이건 모두 변화막측한 중공정치때문일 것이다. 1966년, 문혁이 발발한 후, 주덕이 타도된다. 그를 "대군벌, 대야심가, 흑사령"으로 부르는 내용의 표어가 베이징의 길거리에 가득하고, 중남해에까지 붙는다. 바로 이때 모택동을 따랐던 임표가 떠오른다. 그리하여 1967년 2월, 같은 교과서글의 내용이 조용히 임표의 편담으로 바뀌어 버린다. 수정돈 후의 글은 주덕이 아니라 임표가 남창폭동실패후, 남은 부대를 이끌고 정강산으로 가서 모주석의 부대외 회합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는 마치 코미디같다. 1971년 9월 13일, 모택동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임표는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가다가 도중에 비행기가 추락하여, 임표등이 사망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비행기는 중국이 미사일을 쏘아 격추시켰다고 한다. 임표의 지위는 일락천장하였고, 매국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임표의 편담>은 다시 어느샌가 <주덕의 편담>으로 바뀌게 된다.

 

정치풍운의 변환으로 편담이 이렇게 사람들의 비웃음을 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번 물어보고 싶다. 중공역사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이런 황당한 조작된 일들이 있을까?

 

(2011년 8월 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