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사차소(往事叉燒)
1987년, 송단단은 <종화범(縱火犯)>의 대본강독회에서 잉다(英達)을 알게 된다. 그날 송단단은 목이 말라서 물이 마시고 싶은데, 그렇다고 말로 하기는 쑥스러워서, 잉다의 테이블 앞에 보온배(保溫杯)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송단단은 쪽지를 썼다: "당신 물을 마셔도 되겠어요? 전 병은 없어요."
그러자, 잉다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당연히 됩니다. 그러나 나는 있어요. 에이즈!"
송단단은 이렇게 기지있고 유머스러운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후 그들은 금방 사랑에 빠진다.
결혼후, 송단단은 거의 집안의 모든 일을 담당했다. 전등이 망가지거나, 열쇠가 망가지거나, 가스가 고장나거나 모두 송단단이 고쳤다. 잉다는 <아애아가(我愛我家)>가 인기를 얻은 후에는 더더욱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동안 극본을 쓰는 량환(梁歡)과의 스캔들에 대한 소문이 갈수록 널리 퍼졌다.
1997년, 송단단은 견디지 못하고, 짧은 기간동안의 외도를 거쳐 잉다와 이혼한다. 1달후 잉다는 량환과 결혼한다.
이혼한 동안 송단단은 매일 눈물로 지샜다. 심지어 자살도 생각했다. 자오위지(趙玉吉)이 나타나서 송단단을 구해준다.
인터뷰에서 송단단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젊었을 때 항상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남자의 기준에 맞추려고 했고,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내가 충분히 괜찮은가?'였다. 나는 지금 자아가 강해졌다. 같이 있는게 편하면 같이 있는 것이고, 같이 있는게 편하지 않으면 보낸다. 붙잡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잘가요. 멀리 배웅하지 않을께요'라는 말만 할 것이다."
송단단의 첫사랑은 19살때였고, 그때 국가는 막 대학입시를 부활시켰다. 많은 청년들이 학교로 돌아왔고, 재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친다.
송단단은 지식인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베이징시문련(文聯)의 서기였다. 모친은 중학교 교사였다. 송씨집안에는 4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오빠와 언니는 성적이 모두 좋았다. 송단단은 막내였고, 집안에서 기본적으로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때, 하루는 비가 내렸다. 송단단은 교실의 문앞에 도착해서 비로소 우산을 접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송단단은 창가에 있는 낯선 남학생을 보게 된다. 그 남자아이는 키도 컸고, 얼굴도 잘생겼다. 송단단은 그를 보고는 넋이 나간다.
다음날 한 여자아이가 교실의 문앞에서 송단단을 불러세우고는 물었다: "위안강(袁剛) 있니?" "위안강이 누군데?" 송단단은 누군지 몰라서 되물었다.
"너희 반에 새로 온 친구, 쑨(孫) 선생님의 아들이다. 네가 그를 불러내줄래?" 송단단은 그제서야 어제 보았던 그 남학생이 위안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전업군인(轉業軍人)이었다. 고개를 돌리면서 송단단은 얼굴이 발개진다.
그날 오후, 송단단과 위안강은 계단에서 스쳐지나간다. 송단단은 다리가 삐끗하여 계단에서 넘어진다. 위안강은 몸이 재빨랐다. 바로 송단단을 잡아준다. 그때 단추 3개가 뜯어진다. 송단단은 황급하게 달려가서 친구에게 바늘을 빌린다.
옷에 단추를 다시 꿰맨 후에 송단단은 위안강에게 쪽지를 보낸다: "네가 밉다. 네가 나를 '구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전학해야할 것같다. 왜냐하면 공부해도 아무 것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위안강은 송단단에게 3페이지의 편지를 보낸다. 그녀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부분에는 그녀에게 저녁에 북해공원에서 만나자는 말이 적혀 있었다.
송단단은 편자를 받고 기쁘면서도 고민되었다. 자신은 통통할 뿐아니라, 얼굴에 여드름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 위안강은 그녀의 뺨에 키스했고,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한다.
송단단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항상 위안강을 만나고 싶었다. 한번은 모친이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녀가 멍하니 넋이 나가서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너 뭐하니?"라고 묻기도 했다.
송단단은 깜짝 놀라서 "이곳의 햇볕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려던 것을 "이곳의 위안강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해버렸다.
대학입시가 끝나고, 위안강은 북경대학 법률학과에 합격한다. 송단단은 학업성적이 계속 떨어져서 생각지도 못하게 낙방하고 만다.
이 해에 잉다는 5개월간 열심히 공부해서 북경대학 심리학과에 입학한다. 잉다는 집안이 대단했다. 조상은 만주족 정황기(正黃旗)이고, 부친 잉뤄청(英若誠)은 유명한 예술가로, 많은 유명한 작품들을 번역했고, 일찌기 문화부 부부장(차관)을 지냈다.
북경대학에 들어가서 잉다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대학1학년 하반기 잉다는 베이징에서 학생희극공연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는 친구인 샤오펑(蕭峰), 리샤(李霞)와 함께 대회참가신청을 한다. 그리고 북경대학에 화극사(話劇社)를 만들어 자신치 초대 사장이 된다.
화극사가 잘 나가고 있을 때, 잉다는 생물화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을 좋아하게 된다. 자주 그녀와 동물원으로 데이트를 갔다. 그는 금방 그녀에게 구혼한다.
이 해에, 송단단은 재수중이었다. 그러나 다시 낙방한다. 집안에서도 실망이 컸따. 그녀도 자신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몰랐다.
1981년의 한 오후, 송단단의 어릴 적부터 친구인 장치(張旗)가 돌연 그에게 신문 하나를 건네준다. 그 위에는 "베이징인민예술극원배우훈련생 모집중"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장치는 흥분하며 말했다: "베이징인민예술극원에서 배우를 모집한대. 너는 선생님 흉내도 아주 잘냈잖아. 내 생각에 너는 배우가 되어야 할 것같아."
그때 송단단은 무엇이 화극인지도 몰랐고,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도 있었다. 만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가게에서 물건이나 팔게 된다는 것을.
신청비용은 2위안50전이었다. 송단단은 그런 돈이 없었다. 장치는 그 사실을 알고는 그녀에게 돈을 준다. 송단단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면접하러 가는 날, 집안의 파마도구로 머리를 파마하고, 몰래 둘째언니의 하이힐도 신었으며, 거울 앞에서 비춰보고는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자 송단단은 깜짝 놀란다.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멋지게 차려입고 꾸민 미남미녀들이었다. 다시 모집요강을 보았더니, 여자는 겨우 5명을 뽑는다고 한다. 그런데, 돈도 이미 냈으니, 송단단으로서는 끝까지 해야만 했다.
1차시험을 치는 방에 들어갔는데, 선생은 송단단에게 춤을 춰보라고 했다. 송단단은 춤을 출 줄 몰랐다. 그래서 라디오체조를 추었다. 그리고 시낭송도 할 줄 몰랐다. 다행히 손에 신문을 들고 있어서, 신문의 기사 하나를 읽었다.
시험을 마치고, 송단단은 집으로 달려간다. 합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단지 둘째언니의 하이힐을 빨리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운이 따랐는지, 며칠 수, 송단단은 2차시험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는다.
2차시험은 즉흥공연이었다. 송단단은 모친의 병이 위독하여, 부친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시험치기 며칠 전, 송단단의 모친은 파상풍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모친을 생각하며, 송단단은 바로 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아빠, 엄마가 아파서 입원했어요...." 연기를 마치고 돌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빠. 빨리, 빨리 오세요. 올 때 나에게....요쿠르트 2병도 가져다 주세요!"
선생은 그녀의 연기를 보고는 크게 웃었다. 유일하게 선생이 걱정한 것은 그녀의 체형이었다. 아마도 나중에 뚱뚱해질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송단단은 마음이 조급했고, 그후에는 배불리 먹지 않으면서 15킬로그램이나 체중을 줄이는데 성공한다.
합격자발표가 날 때, 그녀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저녁에 송단단의 부친이 퇴근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사왔다. 요쿠르트도 2병만이 아니었다.
인민예술극원에 들어간 후, 송단단은 금방 연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다.
2년후, 송단단은 졸업하고, 인민예술극원의 정식 배우가 된다. 졸업하자마자 기회를 얻는데 <홍백희사(紅白喜事)>에서 소정(小貞)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이 역할을 가지고, 송단단은 문화부의 1등상, 베이징시정부우수배우표창장을 받고 상금으로 1,100위안을 받는다. 이전에 송단단은 그렇게 큰 돈을 본 적이 없었다.
한 선배배우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송단단, 나는 평생 이 일을 했지만, 우리 집의 통장에 1,100위안이 없다. 너는 상금을 극원에 바쳐서, 극원이 너를 길러준데 감사를 표하는게 좋겠다."
송단단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안줄 겁니다. 나는 지금 그들(극원)이 익숙해지게 만들 겁니다. 앞으로 자주 상을 받아서."
1년전에 송단단의 애정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맞는다
하루는 송단단과 위안강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토두돈우육(土豆燉牛肉)을 먹었다. 송단단이 계란을 하나 집으려는데, 위안강의 모친이 하는 말을 듣는다: "샤오강. 내일 너는 금방 발급받은 여권을 가지고 우의상점(友誼商店)에 가서 샐러드유를 사와라!"
송단단은 깜짝 놀란다. 당시 우의상점은 베이징에서 최고급 상점이었다. 외국인만 들어갈 수 있었고, 중국인은 여권을 가지고 가야 했다. 송단단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계란을 어떻게 넘겼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식사후, 위안강은 자기는 미국으로 간다고 말한다.
송단단은 절교편지를 쓴다. 편지에서 송단단은 위안강에게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말한다.
첫사랑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송단단은 금방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와 연애를 하게 된다.
남자의 성은 저우(周)였고,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언어과목 교수에게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남자친구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송단단은 글을 잘 썼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반나절을 들여 글을 하나 써서 남자친구에게 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글은 북대교수에게 칭찬받고 96점을 받는다.
3개월간 연애한 후 송단단은 저우와 결혼한다.
이 해에 자오바오강(趙寶剛)은 송단단을 눈여겨본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녀를 보고 자오바오강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런 어린친구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다니!" 이어서 그녀를 TV드라마 <찾아서 돌아온 세계>에 추천해준다. 드라마에서 송단단은 "여자깡패" 송샤오리(宋小麗)를 연기했다.
이 배역으로 송단단은 '비천상(飛天奬)' 취우수여자조연상을 받는다. 얼마 후 영화 <월아아(月牙兒)>로 다시 상을 받는다. 난톈예(藍天野)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송단단은 그다지 힘도 들이지 않는 것같은데, 다른 사람보다 더 연기를 잘하지?"
그때 송단단의 목표는 오스카상을 받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송단단의 두번째 혼인도 1년만에 이혼으로 끝난다. 이혼후에도 송단단은 전남편(저우)과 영화도 보고 식사도 같이 했다.
식사자리에서 전남편은 진지하게 송단단에게 말한다: "단단, 나는 너와 결혼도 했고, 너를 마누라로 삼아봤으니, 이미 행복하다. 다만 한가지만 약속을 해달라."
송단단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뭔데?"
"앞으로 네가 유명해지면, 어떤 경우, 어떤 상황하에서도 절대 내 이름은 언급하지 말아달라."
그후 20여년이 지났다. 이 혼인에 대하여만은 송단단이 입을 꾹 다문다.
1987년 1월, 잉다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다. 잉다는 미국에서 귀국하여 장례를 치른다. 그후 국내에 남으려 했다. 그가 처에게 얘기했지만, 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미국이 넓은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잉다는 실망이 컸고,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된다.
귀국후 잉다는 <종화범>의 조감독을 맡는다. 송단단도 극본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은 아주 적었다.
여기에서 첫부분에 소개한 장면이 펼쳐졌다.
두 주후, 하루는 잉다가 손으로 달걀을 감싸고 와서는 송단단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너한테 준다. 이건 내 손으로 따뜻하게 익힌 것이다." 송단단은 껍질을 깠다. 그런데, 달걀은 아직 날 것이어서 웃으며 말한다: "네 손은 이걸 익힐 정도는 전혀 아니었네."
송단단은 그처럼 유머스러운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며칠 후, 송단단은 잉다를 양식집에 초대하여 식사한다. 그때 송단단은 쪽지를 하나 받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반드시 너와 결혼할 거야. 반드시 너와 결혼할거야."
송단단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늦었다. 완충기간도 없이 바로 빠져들었다.
몇개월후, 잉다는 학점을 다 따지 못해서 미국으로 잠시 돌아가야 했다. 송단단은 매일 애정시를 받았다. 그리고는 그녀도 한수를 써서 보냈다. 나중에 송단단은 말한다: "그때 나의 IQ는 거의 제로였다."
1989년, 송단단은 이미 잉다와 약혼한다. 다만 아직 결혼등기는 하지 않았다.
하루는 송단단이 춘만(春晩, 설날저녁공연)의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녀에게 소품을 연기해달라는 것이었다. 리허설때 송단단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잉다의 부친은 그녀가 하루종일 뭘하고 다니는지 몰랐다. "너는 요즘 뭐때문에 그리 바쁘냐?"
송단단이 대답했다: "저는 춘만의 소품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나한상친(懶漢相親)>인데 노처녀가 남자집안의 사람들과 상견례하는 이야기입니다."
잉다의 부친은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오글거리는게 뭐가 재미있다고?"
놀란 송단단은 다음날 춘만 감독을 찾아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감독은 화가나서 소리친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춘만에 오르고 싶어서 머리를 싸매는지 알긴 하느냐?"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을 했고, 결국 송단단은 하기로 결정한다. 그해에 송단단은 녹색수건을 머리에 매고 꽃무늬 면오(棉袄)을 입고 나와서 산둥사투리로 말한다: "나는 웨이슈펀입니다. 여자, 29살, 아직 미혼"
처음으로 춘만에서 연기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전국의 인민들이 모두 그녀를 기억하게 된다.
이해 7월, 미국에서 학점을 다 따고, 잉다가 귀국한다. 그리고 송단단과 동청구에서 혼인증을 발급받는다.
잉다의 집안으로 들어간 첫째날부터 송단단은 스스로 소매를 걷어부치고 가정주부가 된다. 먼저 잉다의 모친이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보배'들을 꺼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오랫동안 쓰지 않던 양탄자를 꺼내서 깐다.
결혼한지 1달만에, 송단단은 텅원지(滕文驥)가 감독하는 <황하요(黃河謠)>에 출연하기로 한다. 잉다는 일이 없어서, 송단단이 그를 데리고 시안(西安)으로 가서, 부감독을 맡게 한다. 정식으로 찍기 전에 송단단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송단단은 잉다에게 물었다.
"낳아야지. 어쨌든 낳아야하잖아."
"배역은 어떡하지? 아주 좋은 기회인데."
"그럼 낳지 말지 뭐."
"왜 너는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하지?"
결국 송단단은 <황하요>의 출연을 사양하고, 아이를 낳기로 한다. 잉다는 계속 부감독으로 일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잉다는 촬영현장에서 지나치게 '총명'하게 굴다가 결국 쫓겨난다. 다시 실업자가 된 것이다.
이해 말, 송단단은 황홍(黃宏)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에게 춘만에서 <초생유격대(超生遊擊隊)>를 함께 공연하자는 것이었다.
송단단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 "나는 연기 못해요. 지금 배가 불러서."
"바로 그 역할이야. 너도 굳이 배에 베개를 넣지 않아도 되고."
그해 춘만이 끝난 후 <초생유격대>는 유례없이 인기를 끌었다. 송단단은 하룻밤만에 대강남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고, 야채파는 아줌마도 그녀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할 정도였다.
다음 해 초, 송단단은 바투(巴圖)를 낳는다. 그녀는 몸무게가 90킬로그램까지 는다. 잉다는 자신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말을 듣자, 주먹으로 벽을 치며 좋아했다.
바투를 낳은후 1달도 되지 않아, 황홍이 송단단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단단. 네가 집에서 아이를 낳느라고, 최소한 내가 벌 수 있는 돈 4만위안은 놓쳤다."
돈을 벌기 위해, 송단단은 황홍과 파트너가 되어 전국각지로 공연을 다녔다. 한때 표값은 1000에서 5000으로 뛰기도 했다.
송단단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느라 바쁠 때, 잉다는 집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었다. 12시가 되어야 깼고, 스스로 "각황(覺皇)"이라 칭했다.
송단단은 엄숙하게 말한다: "나는 네가 이름을 날리던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네가 돈을 벌던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너는 지금 이미 아버지이다.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이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
송단단의 재촉으로 잉다는 소설을 쓰기로 결정한다. 하루는 저녁에 새벽3시에 송단단이 깼다. 건너편 서재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안심한다. 잉다는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송단단이 아침식사하자고 잉다를 부르러 갔을 때, 원고지에 글자 한자도 쓰여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잉다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송단단은 고민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더 이상 그를 몰아부치지 말자. 그는 아주 총명하고, 사랑스럽고, 게으르다. 아마도 작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같다."
송단단은 연속 3년 춘만에 오른다. 잉다는 아직도 집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시트콤드라마"를 찍고 싶어했다.
1993년, 마침내 전기가 마련된다.
잉다와 왕슈어(王朔)가 투자를 받아서 극의 이름까지 정했다. 그런데 왕슈어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잉다에게 량줘(梁左)를 소개시켜준다. 량줘는 여동생 량환을 끌어들여 함께 극본을 썼다. 송단단은 <아애아가>에서 자(賈)씨집안의 큰며느리 허필(和平)을 연기했다. 허핑은 전형적인 가정주부이고, 선량하며 집안살림을 잘했으며 매일 털옷을 짜고 있었다.
<아애아가>가 방송된 후 큰 인기를 끈다.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시트콤드라마중에서는 최고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잉다는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6만위안의 현금을 공중에 뿌렸다. 한겨울에 잉다는 선풍기를 틀고서 엉덩이를 들고 즐거워하면서 돈을 주웠다.
그 몇년, 송단단은 기꺼지 집안에서 계속 '허핑'의 역할을 했다. 집안의 전등이 망가지거나, 열쇠가 고장나거나, 가스가 고장나거나 모두 송단단이 수리했다. 잉다가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루는 송단단이 잉다의 서재에 커튼을 달아주려고 했다. 다 준비된 천과 철사를 그에게 주었는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하나도 끼워져 있지 않았다.
잉다는 급해서 이렇게 말한다: "계속 삐져나가. 이 일은 내가 못해."
송단단이 가져와서 1분만에 다 끼워버린다. 그러자, 잉다는 화를 내며 말한다: "왜 너는 항상 내가 네 앞에서는 바보처럼 느껴지게 만드냐."
집안일을 하기 위해서, 송단단은 매일 2시간짜리 화극만 출연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1991년부터, 잉다의 부친은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고, 자주 피를 토했다. 처음에 송단단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지만, 몇번 겪으면서 진정되기 시작했다.
잉다의 부친을 돌보기 위해, 송단단은 거의 병원에 살면서, 발을 씻기고, 몸을 닦고, 손톱을 잘라주었다. 한번은 48시간동안 잠을 자지 못하여, 병상에 혼절해 있기도 했다. 깨어난 후에는 멘탈이 붕괴되어 대성통곡했다.
하루는 저녁에 송단단이 의자 3개를 이어붙여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3시반, 잉다로부터 메세지를 받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뒷걱정이 없게 네가 해줘서 고맙다. 영원히 너를 사랑해"
그러나, 그때 잉다와 량환의 스캔들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잉씨, 량씨, 송씨의 윗어른들도 관계가 좋았고, 누구도 스캔들을 꺼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량줘는 여동생에게 화가 많이 났다. 자신이 친구인 송단단에게 미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997년, 송단단은 너무 힘들었다. 아주 신속하게 한 사람과 연애를 한다. 3일째 되는 날, 송단단은 잉다에게 전화를 건다. "나 외도했어. 우리 이혼하자."
잉다는 즉시 동의한다. 민정국으로 가기 전에, 송단단이 묻는다: "잉다, 우리가 이제 헤어지는 거니까. 나에게 속이지 말고 말해줘라.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네가 량환과 만난다는데 사실이냐. 우리가 10년은 살았으니 솔직하게 말해달라."
잉다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게 가능하냐. 단단." 송단단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같았다.
절차를 마치고, 송단단은 잉다의 삐삐가 그녀의 차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열어보니, 모두 량환으로부터의 메세지였다:
"일은 끝났어?"
"왜 전화를 안해?"
금방 잉다가 자기에게 들려주었던 노래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슬프게 하고(讓我歡喜讓我憂)>를 떠올리며, 송단단은 통곡을 한다.
송단단의 외도는 금방 끝난다. 그때 그녀는 단지 외로웠을 뿐이다. 잉다와 량환은 1달후 결혼한다.
잉다가 재혼한 후, 송단단은 아들의 감호권을 되찾아 왔고, 아시안게임선추촌에 방하나 거실하나짜리 집을 마련한다.
엄마와 같이 있게 된다는 말을 들은 바투는 친구들에게 하루종일 말하고 다녔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간대."
그때 송단단은 매일 눈물로 지샜다. 저녁에는 베개를 붙잡고 얘기했고, 낮에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호소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수레를 미는 노인도 자기같은 여자는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두명의 가까운 친구들이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송단단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준다. 송단단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3가지 조건을 내건다: 첫째, 반드시 말이 통해야 한다. 둘째, 돈이 너무 많을 필요는 없고, 나를 먹여살릴 정도면 된다. 만일 내 조건이 그 남자보다 어느 방면에서 나은 것이 있으면, 그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좋은 것은 상처한 사람이다. 그래야 부인을 아낄 줄 알테니까.
친구는 귀찮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그만하면 됐다. 남의 부인까지 죽여버려야겠냐."
송단단은 오랫동안 연기를 하지 않았다. 바투와의 생활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녀는 책을 써서 돈을 벌었다. 하루는 책을 쓰고 있는데, 언니들이 돌연 전화를 글어와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식탁에서 송단단은 잘생기고 우아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가 자오위지(趙玉吉)였다. 수도강철회사의 총경리(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 송단단은 이렇게 좋은 조건의 남자가 자신의 손에 떨어질 줄은 몰랐다.
서로 알고 지낸지 며칠만에, 자오위지는 송단단을 집으로 초대한다. 대리석바닥이 빛났다. 송단단은 맨발로 그 위를 걸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 다시 갔더니, 대리석바닥이 나무바닥으로 바뀌어 있었다. 송단단이 묻는다: "멀쩡한 대리석을 왜 바꿨어요?" 자오위지가 대답한다: "대리석바닥은 차가운데, 네가 맨발로 걷는 걸 좋아해서..."
송단단은 그가 자신에게 한줄기 빛이라고 여긴다. 28일후, 송단단의 생일날, 다시 결혼한다.
결혼후, 자오위지는 바투를 친아들처럼 여겼고, 송단단은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자오위지의 딸 자오팅(趙婷)도 데려와서 같이 살자고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여자아이는 송단단을 빤히 보면서 입으로 이름을 내뱉는다: "송, 단, 단."
송단단은 자오팅에게도 사랑을 모두 베푼다. 그리하여 분위기는 금방 좋아지게 된다. 송단단은 "내가 그의 아이를 사랑해야,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하루는 일가족이 같이 노는데, 끝난 후, 자오팅이 얼굴을 붉히면서 송단단을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에 소리쳤다: "준비...땅....엄마!" 송단단은 눈물이 글썽였다.
집에서 송단단은 바투와 함께 자오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 가끔 애교도 부렸다. "여자가 너무 강하며 안되고,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1997년이 되었다. 송단단은 이미 여러 해동안 춘만에 출연하지 않았다. 하루는 자오위지가 말한다: "니아(妮兒). 예전에는 항상 내가 당신을 TV의 춘만에서 보았고, 대스타였다. 지금은 나의 부인이 되었는데 나에게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주면 안되겠느냐. 그믐날 우리 일가족이 TV을 둘러싸고, 내 처가 전국인민들 앞에서 프로그램을 공연하는 것을 보고, 네가 돌아오면 같이 만두를 먹고."
송단단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따뜻해 졌다. 그래서 황홍에게 전화를 건다: "금년에는 나도 같이 출연하겠다."
그해에 송단단과 황홍이 만든 소품은 <회가(回家)>였다. 소품에서 황홍은 송단단을 "니아(妮兒)"라고 부른다. 이건 송단단이 남편에게 주는 신년선물이었다.
다음 해, 두 사람은 계속 파트너가 되어 출연하려 했지만, 공연프로그램에 이견이 생겨서 그만두게 된다. 이때 자오번산(趙本山)이 송단단을 찾아와서 같이 공연하자고 말한다. 그의 극본을 듣고는 송단단도 손뼉을 치면서 멋지다고 말한다.
<어제, 오늘, 내일>이 이렇게 탄생한다. 바이윈다마(白雲大嬤)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사람들은 송단단만 보면 웃음이 나오게 된다.
송단단은 단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배역에는 만족하지 않았다. <화거수(火炬手)>이후 송단단은 다시 춘만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그들이 나를 체포하고, 징역형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36살이후, 송단단은 연기사업은 중단된다. 3부작 <가유아녀(家有兒女)>말고는 더 이상 배역을 맡지 않았다. 송단단은 책을 쓴다. 자서전 <행복심처(幸福深處)>에서 송단단은 자신과 잉다가 이혼한 진상을 털어놓는다.
잉다는 책을 보고서 대노한다. 송단단에게는 "나로벽(裸露癖, 노출증)"이 있다고 욕한다. 그리고 "나는 북경대학 심리학과를 나왔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심리질환의 일종이다. 노출증이다." 송단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잉다는 량환과 결혼한 후 아들을 핳는다. 잉루디(英如鏑)이다. 잉다는 보배처럼 여겼다. 그러나 바투는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잉다가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가 물었다: "만일 우주로 가는데 3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겠습니까?"
잉다는 이렇게 말한다: "책 한권, 모차르트 CD 한개와 아들 잉루디의 사진."
송단단은 그 인터뷰를 보고서, 급히 TV를 끄고서 아들의 방으로 달려간다. 아들이 TV를 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011년, 송단단은 바투를 데리고 <이춘천의 춘천(李春天的春天)>에 출연한다. 얼마 후, 잉다가 잉루디를 데리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부자간의 사랑을 얘기한다. "나는 지금 잉루디의 아빠이고, 그것이 아주 자랑스럽다."
네티즌들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며칠 전에는 송단단이 바투를 데리고 나오더니, 이번에는 잉다가 잉루디를 데리고 나오는냐. 무슨 비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송단단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웨이보에서 잉다를 욕한다:
"남자가 이혼도 할 수 있고, 새로 가정을 꾸릴 수도 있으며, 지금의 처와 자녀를 사랑할 수도 있고, 아들을 데리고 프로그램에 나와서 사랑을 과시하면서 자신은 '운전기사, 보모, 주방장, 코치'의 일인사역을 하는 아버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이전에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해도 한번도 데리고 나가주지 않았고, 11살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14년후에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네가 자애로운 부친을 연기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나는 계속 내 아이를 상처입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넌 사람도 아니다!"
잉다는 가볍게 대응한다. 자신이 송단단과 이혼할 때 '아이'가 있었고, 그는 바투를 위해서 해준 것이 확실히 거의 없다고. 다만 두 사람의 인연은 이미 끝났다고. 이어서, "헤어진 것은 헤어진 것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면, 이전의 모든 것과 철저히 끝내야 한다. 아이를 보는 것까지 포함해서."
잉다의 말은 네티즌들을 분노하게 했다. 네티즌들은 이렇게 풍자한다: "이후 만일 잉다가 량환과 이혼하면, 마찬가지로 잉루디는 본체만체 하겠구나!'
송단단과 자오위지의 애정은 갈수록 깊어졌다. 그리고 자오위지의 전처와도 가까운 친구가 된다. 거의 하지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농담까지도 하면서 서로 웃으면서 얘기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지내다니, 내가 너무 사람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만하세요. 네가 나한테 남편을 빼앗아 갔는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너와 따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됐다. 네 남편을 내가 네 곁에서 빼앗아 온 것도 아닌데, 네가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다른 사람과 도망친 거지. 당연히, '다른 사람'도 그를 원치 않았지. 내가 보니 그가 불쌍하더라고. 나같은 거물이...."
2008년, 송단단은 <마원의 전쟁(馬文的戰爭)>을 찍으면서 기뻐서 말한다: "누가 여자는 40이면 찌꺼기라고 말했지, 50이면 꽃이다. 나는 나이든 자매들을 대표해서 오늘 출연한다"
다음 해 상하이영화제에서 송단단은 이 드라마로 중국드라마 백옥란상 최우수여자주인공상을 받는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송단단은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란방담록>에 출연해서 송단단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 50이 지천명이라고 하는데, 정말 내가 50이 되니까 알겠다. 49살까지는 몰랐다."
이어서, "남편이 바람나면 어떡할 거냐?"라고 묻자, 송단단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떠나도 나는 괜찮다. 네가 느끼기에 내가 너에게 행복을 줄 수 없고,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나로 하여금 나와 같이 있으면 그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왜 붙잡아야 하는가.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잘가라 멀리 배웅하지 않겠다."
"나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 여럿 있다. 거기에는 나의 부모, 나의 아이, 나의 남편, 나의 업무상 파트너, 나의 가까운 친구,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들 모두가 나의 오늘을 만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큰 여인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2019년 <아애아가>의 참여인원들이 다시 뭉쳤을 때, 송단단은 공개적으로 잉다와 휴전한다: "잉다에게 감사한다. 그는 우리를 완전히 본 적도 없는 형식을 대륙에 가져왔고, 여러분들에게 많은 웃음을 가져다 주었다."
송단단이 현재 종합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젊은 관중들이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영어단어를 섞어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든지, 린즈링(林志玲)이 마흔살이 넘었는데도 '언니'라고 부른다든지...그리하여 참가자들이 그녀를 '이이(二姨, 둘째이모)'라고 부른다.
<오십리도화도> 시즌1때, 송단단은 출연하자마자 궈치린(郭麒麟)의 혼인,연애상황을 추궁했다. 그뿐아니라, 매번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할 때마자, 송단단은 연이어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연애해봤느냐. 결혼했느냐? 연애상대는 있느냐?" 막 가오윈샹(高雲翔)과 좋지 않게 헤어진 동쉔(董璇)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고심해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착실하고, 성격도 좋고, 너에게 잘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네티즌들은 그녀가 나이로 행세하면서 상대방을 난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송단단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젊은사람들은 팬에 너무 신경쓰는 것같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족쇄이다. 나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만일 그(궈치린)가 마른 사람이 좋다고 말하면, 팬들 중에서 뚱뚱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키큰 여자가 좋다고 말하면, 키작은 팬들은 그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젊은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불쌍하다."
<오십리도화도> 시즌2가 되어서, "난감9분"은 다시 바로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프로그램에서 리쉐친(李雪琴)은 모두 업무를 나누고, 더 이상 서로 분량을 뺐겠다고 싸우지 말자고 한다. 탕평파(복지부동파)인 왕쑤룽(汪蘇瀧)은 즉시 박수로 동의한다. 그러나 송단단은 이렇게 묻는다: "누가 분량을 뺏어간다고." 그리고 리쉐친에게 "갈등을 날조한다"고 말하면서, 리쉐친에게 벌로 스스로 뺨을 한대 치라고 말한다.
이어서, 모두 하루 빨리 서로를 잘 알게 되도록 하기 위해, 송단단은 모닥불파티를 제안한다. 참가자들이 각자 개인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다징(武大靖)과 왕쑤룽이 모닥불파티같은 거 말고, 아예 운동회를 하자고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도 속속 동의한다.
공연프로그램에서, 송단단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역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치지 말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배우는 무용단으로 보낸다. 모두 얼굴에 난색을 표한다. 결국 송단단을 리더로 하는 공연프로그램참가파와 왕촨쥔을 리더로 하는 불참파로 나뉘게 된다.
이 장면이 방송되자 네티즌들은 불만이 폭발한다. 송단단은 '유일한 욕받이'가 되었다.
다만 웨이보의 댓글에서 네티즌들은 격렬하게 그녀를 비난한다. 송단단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삭제하지도 않았고 더더구나 댓글을 고르지도 않았다.
프로그램에서 송단단은 자신의 솔직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량환은 결혼후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번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항상 거절했다. "됐다. 그래도 얼굴들고 길거리로 나가서 야채는 사야 된다."
2003년, 잉다의 부친 잉뤄청이 병으로 세상을 뜬다. 바투는 그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싶어했으나, 잉다에게 한마디로 거절당한다: "너는 장례식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 너는 성이 잉씨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10년후, 자신과 량환 사이에 낳은 작은 아들을 보면서 잉다는 이렇게 거리낌없이 말한다: "바얜(巴彦, 잉루디의 다른 이름)이 성공해야만 가족성씨에 남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잉씨집안의 제5대 후손이라고."
당초 송단단이 잉다와 이혼할 때, 바투는 부친에게 양육권이 넘어갔다. 잉다가 재혼한다는 것을 알고난 후, 송단단은 매일 아들을 그리워했다.
바투의 7살 생일때, 송단단은 그에게 2장의 사진과 1장의 예쁜 생일카드를 보낸다. 생일카드에는 이렇게 썼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나의 보배. 엄마는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말하질 못한다. 엄마는 단지 하루빨리 돌아가서 즉시 너를 보고, 너를 안아주고 싶다. 돌아간 후 엄마는 너를 데리고 주말을 보내고, 같은 이불 속에서 잠을 자며, 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나의 보배. 너는 7살이다. 정말 다 큰 어린이다. 엄마는 네가 영원히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보배. 엄마는 3월말전에 돌아간다. 엄마가 너에게 선물을 가져가겠다.
영원히 너를 사랑하는 엄마."
그 해에, 송단단은 아들의 감호권을 되찾는다. 그리고 모든 사랑을 아들에게 쏟는다. 바투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송단단은 함께 공부하고, 매일 그와 함께 수학공식을 외웠고, 기괴한 길이와 각도를 계산했다.
1년후, 송단단은 지쳤고, 바투를 영국으로 보내어 공부하게 한다.
바투가 영국으로 가서 공부하기 시작한 후, 송단단은 자주 그에게 전화를 건다. 한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송단단은 메세지를 남긴다. "바투,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네가 많이 보고 싶다. 네가 편할 때 전화를 걸어주면 좋겠다. 바이바이."
두 시간 후 바투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송단단은 조급해진다. "바투, 엄마는 네 전화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왜 전화를 해주지 않는 거냐. 전화해줘라."
4번째 전화를 걸고 난 후, 송단단은 이성을 잃고 큰 소리로 메세지를 남긴다: "바투. 내가 말하는데, 오늘 밤에 엄마는 자지 않을 거다. 언제 전화를 걸어오는지 보겠다."
나중에 바투가 마침내 전화를 걸어왔고, 큰 소리로 "엄마"라고 소리쳤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송단단은 조였던 가슴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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