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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왕샤오홍(王小洪) 공안부장임명의 3가지 의미

by 중은우시 2022. 6. 29.

글: 왕혁(王赫)

 

6월 24일, 자오커즈(趙克志)의 공안부장 자리는 마침내 왕샤오홍의 손으로 넘어갔다. "마침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일이 기묘하다는 것이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궈셩쿤(郭聲琨)은 2012년 12월 19일 공안부 당위서기가 되고, 같은 달 28일 공안부장에 취임했다; 자오커즈는 2017년 10월에 공안부 당위서기가 되고, 11월 4일 공안부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왕샤오홍은? 2021년 11월 19일, 이미 자오커즈의 공안부 당위서기직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반년이 자나서야 공안부장 직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신호일까? 여기에서 세 가지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공안계통은 "칼잡이"의 핵심부분이다. 시진핑은 반드시 장악하고자\ 싶어 했고, 왕샤오홍은 이미 공안계통의 키를 잡았다.

 

공안계통은 민중을 진압하는 곳이며, 내부투쟁에서도 좋은 무기가 된다. 그래서 시진핑이 심복을 중점적으로 배치하는 부서이다. 어떤 평론가에 따르면, "시자쥔(習家軍)이 공안부아 쫙 깔렸다"고 말한다. 왕샤오홍은 시진핑의 공안계통에서의 실제집행자이다. 2016년에 공안부로 들어간 후, 전후로 쑨리쥔(孫力軍), 푸정화(傅政華)라는 두 암적인 존재를 제거했다. 장쩌민(江澤民), 쩡칭홍(曾慶紅)이 발탁 중용한 공안부 부부장급이상의 관료들은 낙마하거나 퇴직하는 외에 모조리 공안부를 떠났다. 

 

현재 공안부의 최고위직에는 8명이 있다. 왕샤오홍응 중심으로 하여, 기본적으로 모두 시진핑의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쑨신양(孫信陽)은 2020년 3월 장시성 기율검사위서기에서 중앙기율검사위 주공안부기검조장으로 온다. 그는 시진핑과 샨시성 푸핑의 고향사람이고, 시진핑의 집안과 인연이 있다. 부부장 쉬깐루(許甘露)는 푸젠 통안 사람이다. 시진핑이 샤먼에서 재직하던 기간동안 교류가 있었다. 2015년 왕샤오홍이 떠나면서 비게 된 허난성 공안국장의 직을 넘겨받는다. 2018년 3월에는 새로 만들어진 국가이민관리국의 국장이 된다. 정치부주임 펑얜(馮延)은 일찌기 왕샤오홍의 아래에서 일했다(허난성 공안청 부청장). 부부장 치얜쥔(亓延軍)은 왕샤오홍의 뒤를 이어 베이징시공안국장을 맡았었다. 부부장 천쓰위안(陳思源)도 왕샤오홍이 베이징공안국장으로 있을 때의 적계부하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오직 부부장 두항웨이(杜航偉)만이 배경이 복잡하고, 부부장 류자오(劉釗, 샨시성 푸펑 사람)는 배경이 가장 불분명하다. 다만 이 두 사람이 반시진핑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같지는 않다.

 

공안부의 최고위간부들 외에, 각지방 공안청장의 인선도 역시 왕샤오홍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4월 9일, 왕샤오홍의 부하이자 공안부 특근국 부국장인 왕즈충(王志忠)이 광둥성부성장, 공안청장에 임명되었고; 2020년 12월 30일, 전 허난성 부성장, 공안청장 슈칭(舒慶, 왕샤오홍이 허난성 공안청장으로 있을 때 교류가 있었다)은 상하이시부시장, 공안국장으로 임명된다. 2021년초, 왕샤오홍이 푸젠에 있을 때의 부하이며 푸텐시부시장, 공안국장으로 있던 천펑(陳楓)은 이미 비밀리에 홍콩중련판경무연락부를 접수했다. 금년 5월 31일 베이징시공안국 당위부서기, 부국장 리야오광(李耀光, 왕샤오홍과 교류가 있다)이 장쑤성공안청장으로 임명되었다.

 

둘째, 왕샤오홍이 공안계통을 장악하는데 근9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는 시진핑의 중국의 정계에서의 실제통제력이 "정어일존(定於一尊)"에는 전혀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시진핑은 1990-1996년 푸저우를 관장했고, 1996-2002년 푸젠을 관장했다. 그때 왕샤오홍과 알게 되었고, 이는 왕샤오홍의 관료인생에서 첫번째 전환점이 된다. 왕샤오홍은 1993년 푸저우시공안국 부국장이 되어 30살때 부청장급에 오른다. 그러나 시진핑이 푸젠을 떠난 후, 왕샤오홍의 직위는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가 푸젠의 공안계통에서 34년간이나 재직하였지만, 푸젠성 공안국장에 오르지 못하고 단지 3개의 중요도시(푸저우, 장저우, 샤먼)의 공안국장에 올랐을 뿐이다. 이는 두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인주차량(人走茶凉) 사람이 떠나니 차는 식는다. 즉 시진핑의 푸젠에서의 영향력이 유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시진핑은 아주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2007년 정치국상위에 올라 '후계자'에 오른 후에도 자신의 심복들을 키우는데 그다지 열중하지 않았다.

 

시진핑이 2012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후, 왕샤오홍은 비로소 추월차선을 타게 된다. 2013년 8월, 성급공안청장의 이지교류(異地交流)라는 명목으로 왕샤오홍을 푸젠에서 빼내 허난성 공안청장에 앉힌다. 2015년 3월에는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푸정화가 물러나면서 빈 베이징시 공안국장의 직에 앉힌다. 2018년 3월, 왕샤오홍은 푸정화를 대체하여 공안부 당위부서기, 상무부부장이 된다(푸정화는 사법부장으로 옮겨간다). 명확한 정부장급(장관급)이 된 것은 2019년 11월 왕샤오홍이 공안부 특근국당위서기, 국장을 맡으면서부터이다.

 

중국의 정계에서 공안부장이라는 직위는 실로 중요하다. 시진핑이 장쩌민,쩡칭홍일파와 힘겨루기를 벌인 중요한 곳중 하나이다. 시진핑은 어쩔 수 없이 양보하였고(정치거래), 이는 시진핑이 집권한 10년동안 장쩌민파가 공안부, 정법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인이다. 다만, 시진핑도 계속 공안부를 숙청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미 8명의 공안부 부부장급이상의 관리들이 조사를 받았다. 각각 전 공안부장 저우용캉(周永康), 전 공안부 부부장 리동셩(李東生), 멍홍웨이(孟宏偉), 양환닝(楊煥寧), 쑨리쥔, 푸정화, 류얜핑(劉彦平), 전공안부 당위위원, 정치부주임 샤충위안(夏崇源). 이런 상황은 중앙부서중에서 아마 유일무이할 것이다.

 

2017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파로 지목되는 자오커즈가 공안부장이 된다. 이는 후진타오-시진핑연맹때문이며, 이것도 시진핑이 공안부를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진전으로 본다. 담나 시진핑이 갈망하는 것은 공안계통도 잘 알면서, 자신이 믿을 수있는 사람이 공안계통을 요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일한 선택이 왕샤오홍인 것이고, 그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왕샤오홍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했고 한걸음에 진행하지 않았다(푸젠을 떠나 공안부장에 오르는데 9년의 시간이 들었다). 이는 시진핑이 정치적으로 견제를 많이 받고 있을 때 '핵심'이지만 마음대로 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왕샤오홍을 급히 공안부장에 앉힌 것은 시진핑의 정치적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왕샤오홍은 공안부당위서기에서 공안부장이 되는데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그가 공안부장을 맡은 것은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각도를 바꾸어 보면, 이것은 너무 급히 서두른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1) 자오커즈는 후진타오파에 속하므로 후진타오-시진핑연맹의 각도에서 보자면 시진핑쪽 사람이다. (2) 그는 1953년생이고, "20대"에서 물러날 것이다. 시진핑파의 앞길을 막을 사람이 아니다. (3) 왕샤오홍은 2018년 공안부 상무부부장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자오커즈가 왕샤오홍을 다시 견제할 수는 없다. (4) 자오커즈를 남겨두면 시진핑으로서는 자신이 다른 파벌을 용납하지 못하는 속좁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만일 무슨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자오커즈는 "20대"에 자연스럽게 물러났을 것이고, 이는 시진핑에게도 가장 유리하다. 시진핑이 몇달을 기다리지 못할 사유라도 생긴 것일까?

 

지금 왕샤오홍을 급히 공안부장에 앉힌 것은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원인은 쑨리쥔사건(쑨리쥔은 2016년 이미 공안부 부부장급이었고, 자오커즈는 2017년 10월에 공안부를 장악한다)이거나 혹은 탕산사건(자오커즈는 허베이를 2년여동안 주관했었다)이 아니라면,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일 것이다. (1) 시진핑은 정치적 형세가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반드시 심복으로 하여금 중요한 부서를 장악하게 하여, 필요할 때 과감하게 손을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2) 자오커즈와 후진타오파가 시진핑과 정치이념 혹은 노선을 달리했다. 반시진핑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진핑과 함께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진핑과는 "악수는 하지만 포옹은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안부에서 몸을 빼서 정치적으로 탄력성을 가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양파가 합의하여 왕샤오홍이 공안부장 직을 맡게 된 것이고, 자오커즈는 중앙정법위 부서기와 국무위원직을 유지하였다. 각자 필요한 것을 얻은 것이다.

 

만일 이상의 분석이 맞다면, 시진핑의 정치적 처지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자쥔 자체가 충분히 튼튼하지 않을 뿐아니라, 그의 동맹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의 일부 중요한 정책 예를 들어 "동태청령(제로코로나)"를 사수하고, 러시아를 지지하고, 구미와 대항하는 것, 그리고 홍콩을 망가뜨리고, 신장을 '노천감옥'으로 만들어 국제적인 제재를 받는 등에 대하여 고위층간에 심각한 의견충돌이 있다. "20대"에서 시진핑이 규칙을 깨고 3연임을 하려면 아마도 리스크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20대"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눈을 씻고 보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