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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올해의 베이다이허회의(北戴河會議)는 심상치 않다.

by 중은우시 2022. 6. 3.

글: 장우소(張宇韶)

 

중공의 올해 베이다이허회의는 좀 심상치않은 것같다. 왜냐하면 각종 정치적인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최소한 중공의 당내권력투쟁의 실제와 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20대까지 겨우 몇달이 남았다. 그러나 시진핑과 당내세력간의 정치적 힘겨루기는 시간을 앞당겨 상연되고 있다.

 

베이다이허회의의 실제상황을 외부에서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역사발전단계와 지도자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베이다이허회의의 중국정치운용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중국연구전문가들에 따르면, 베이다이허회의는 비록 모택동의 문혁전처럼 제도적인 성격을 지니거나 혹은 개혁개방후 조자양, 장쩌민시기의 ‘이지결책(異地決策)’의 성격을 지니지는 않지만, 베이다이허회의는 여전히 정치적인 기조결정, 정부공작보고의 집행상황토론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만일 전국당대표대회가 개최되는 해라면 권력배치와 인사조정이 관련되므로, 중공당내의 각파벌은 중앙위원, 정치국위원, 심지어 정치국상위의 명단에 대하여 한차례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런 베이다이허회의를 하기 전에, 각파세력의 쟁탈전이 현재 전개되고 있다. 5월 28일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국장인 장공(張工)이 텐진시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재직중 사망한 랴오궈쉰(廖國勛)의 텐신시장업무를 대리하게 되었다. 외부에 따르면, 랴오궈쉰은 “자살당했다”고 의문을 표시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파벌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찰가는 직접적으로 장쩌민파가 시진핑파의 지방을 빼앗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랴오궈쉰은 구이저우에서 성위상위를 지냈고, 전후로 리잔슈(栗戰書), 자오커즈(趙克志) 두 성위서기와 함께 일했고, 저장성위상위와 조직부장을 지낼 때 직속상사는 바로 샤바오룽(夏寶龍)이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지강신군(之江新軍)”의 적계(嫡係)로 인식되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장공은 베이징시 부시장을 지냈다. 그러나 시진핑파의 거물인 차이치(蔡奇)가 베이징시위서기로 권력을 장악한 후, 중국총공회 부주석이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관으로 전보되어 냉대받는다. 2020년이 되어서 비로소 국가시장관리감독총국의 국장으로 돌아와 실권을 잡게 되었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장공의 배후는 장쩌민파이다. 금년 4월 27일, 랴오궈신은 공식적으로 ‘돌발질병으로 응급구조했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해서” 사망했다. 그러나 각종 사망의 구체적인 사항, 시간과 병인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리하여 각계에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얼마전에 그의 의료검사관련 이익제공관계에 대한 기율검사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하여 인터넷에는 그가 “죄를 겁내 자살했다”거나 “자살당했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외에 홍콩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홍콩마카오업무 고위층관리의 인사도 계속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주홍콩연락판공실도 포함된다. 국무원홍콩마카오판공실 부주임 장샤오밍(張曉明)은 전국정협 부비서장직으로 옮겨갔는데, 이것이 제1차 이동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장샤오밍은 “정직(正職)에서 부직(副職)으로” 그리고 다시 “부직에서 한직(閑職)으로” 전보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여러 관찰가들은 전국정협 부비서장의 직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한직’이다. 그리고 쉽게 비울 수 있는 자리이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가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하여 샤바오룽의 사람이 들어오게 하는 것 외에 그가 한단계 더 승진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장샤오밍은 홍콩문제에 있어서 아주 강졍한 입장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표준적인 “시진핑옹호노선”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바로 2014년 9월 11일, 그가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에 대답한 것이다. 기자가 범민주파인사가 홍콩행정장관을 맡는 것을 용인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살아있다는 것이 바로 국가의 문명과 포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장샤오밍은 홍콩문제에서 쌓은 정치적 자본으로 20대때 한단계 더 승진할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살펴보아야할 점이다.

 

또 다른 관찰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상하이의 봉쇄해제이다. 6월 1일 0시부터 민중들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 대중교통도 정상운행된다. 동시에 원래 포동, 포서를 갈라놓았던 황푸강양안의 육교와 터널도 통행을 재개한다. 그러나 비록 기본적으로 봉쇄해제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여러 장소는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박물관, 영화관과 헬스장등이다. 동시에 물류도 단기간내에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여러 식당들도 즉시 정상영업을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외부에서는 리커창(李克强)이 최근 들어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데 주목한다. 특히 최근 들어 10만간부의 “전국경제대반안정영상전화회의”를 소집개최한 것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상하이등이 봉쇄해제된 것은 시진핑이 압력을 받아 타협을 한 것인지, 아니면 모택동의 ‘인사출동(引蛇出洞)’의 책략을 본받은 것인지 앞으로 베이다이허회의의 결과를 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