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20대 전에 시진핑은 지방세력을 해체하고 있는가?

중은우시 2022. 5. 6. 17:09

글: 악산(岳山)

 

2021년 3월 4일, 베이징에서 중국국가주석 시진핑은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에 참가했다.

 

베이징당국은 중공20대전에 각 성의 인사교체를 통해, 중앙의 권력통제를 강화했고, 계속하여 지방세력을 해체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중 광둥(廣東)과 상하이(上海) 두 지방의 본토세력은 역대이래로 뿌리가 깊었으므로, 샘플로 삼아 관찰해볼만하다.

 

그외에 최근 여러 성의 상위와 고위관료들을 집중적으로 조정하고 있으며, 다른 성으로 보낸다든지, 1인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어, 본토파가 아닌 사람이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성들의 인사교체상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중국의 지방관료사회는 각종세력이 겹쳐있으므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광둥은 지방세력해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 5년동안, 중공광동성위는 조직개편을 통하여 외부인사들이 성내의 핵심직위를 맡으며, 점차로 본토관료들을 제거하여, 외부에서는 시진핑이 지방세력을 해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하는 대상이 되었다.

 

광동성 제12기 성위상위회에서 광동 양춘사람 얜즈찬(嚴植嬋)은 2017년 9월 안후이로 전보되었고, 광둥 쯔진사람인 장링(江凌)은 2018년 1월 허난으로 전보되었으며, 광둥 우화사람 쩡즈췐(曾志權)은 2018년 7월 낙마했고, 광둥 차오양사람 린샤오춘(林少春)은 2019년 3월 내몽골로 전보되었으며, 광둥 샨터우사람 정얜슝(鄭雁雄)은 2020년 7월 홍콩으로 갔다. 쩡얜슝이 떠난 후, 전체 성위상위는 모두 외지인으로 꾸려지게 되었다.

 

그중, 대륙 개혁개방의 표지이자 IT중심인 선전의 제1인자는 이미 내몽골에서 온 멍판리(孟凡利)가 광둥성장으로 승진한 왕웨이중(王偉中)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멍판리는 산둥성 출신이다.

 

멍판리의 전임 성위부서기, 선전시위서기인 마싱뤼(馬興瑞)와 왕웨이중은 모두 다른 성에서 옮겨왔다. 그중 마싱뤼는 광동에서 최초로 외지인으로 성장에 오른다.

 

중공18대이전에 광동의 지방세력이 웅거하는 증거는 바로 성장을 본토사람들이 차지해왔고, 한번도 외지인에게 넘겨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광둥방(廣東幇)"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통적인 견해대로라면, 광둥 본토의 지방세력은 주로 객가(客家), 조산(潮汕), 광부(廣府)의 3대세력이 있다. 그중 1949년이후 광동성정부 주석을 맡았던 섭검영(葉劍英, 예젠잉)을 대표로 하는 '객가방'의 세력이 가장 컸다. 1980년에서 1990년대후반까지 광동본토의 지방세력은 전성기를 이룬다. 광둥성위서기가 정치국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관례가 되어 버린다.

 

섭검영의 장남인 섭선평(葉選平, 예쉔핑)과 차남 섭선녕(葉選寧)은 중공당정계통과 군대에서 공동으로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졌었다. 그리고 광동본토에서 세력을 형성한다. 섭선평은 광동성장을 맡은 바 있고, 1970년대말부터 이 성과 인근 홍콩마카오사무에서 계속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섭선평이 광동에서 전국정협 부주석으로 승진한 후, 그들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된다.

 

특히 섭검영의 두 아들이 몇년전에 차례로 사망하면서, 섭씨세력은 쇠락하게 된다. 이는 광동본토관리의 쇠락추세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외지인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광둥을 통치하는 것에 대하여 일부 관찰자들은 광둥어와 광둥문화가 베이징에 억눌리고 있다고 보거나 베이징당국이 홍콩 반송중운동을 탄압하는 것과 관련있다고 말한다.

 

그외에 소위 '광둥방'은 리창춘(李長春)과 장더장(張德江)이 광둥성위서기를 맡으면서, 쩡칭홍(曾慶紅)과 저우용캉(周永康)이 오랫동안 세력을 심어왔다. 많은 본토관리들도 한때 장쩌민파세력의 일부로 간주되었으며, 이전의 광저우시위서기 완칭량(萬慶良)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광둥성장외에 2014년이전의 30년간, 광저우의 당위서기도 모두 현지인이거나 혹은 현지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사람들이었다. 완칭량이 낙마한 후, 허베이사람인 런쉐펑(任學峰), 후난사람인 장슈어푸(張碩輔), 후베이사람 린커칭(林克慶)이 전후로 광저우시위서기에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다른 성에서 임명되어 오든, 낙하산으로 내려오든, 모두 중공최고위층의 신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류의 '관건소수'인 중요한 중견간부들은 중앙조직부에서 시진핑에게 각종자료를 상세하게 제출하고, 면담을 깊이있게 한 후에 이루어진다. 다만 19대이후에 그들의 운명은 모두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낙마한 완칭량의 뒤를 이어 광저우시위서기가 된 런쉐펑은 비록 한때 '제3인자'까지 승진했지만, 그후에 동일직급으로 충칭으로 옮겨갔고, 마지막에는 4중전회기간중에  '자살'한다. 공식적으로는 '돌연하게 병사했다' 베이징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장슈어푸는 광저우에서 용수(榕樹)를 베어버린 사건에 책임을 지고, '광둥방'의 잔여세력인 광저우시장 원궈후이(溫國輝)와 같이 낙마했다.

 

상하이는 강룡난적지두사(强龍難敵地頭蛇)의 전형적인 곳이다.

 

상하이의 관료사회는 비교적 특수하다.

 

최근 들어 중국의 청령방역노선의 촛점이 된 상하이는 한때 도시봉쇄로 '관민대전'이 일어나 관료사회내부투쟁에 대한 추측을 낳았었다.

 

상하이시위서기 리창(李强)과 상하이시장 공정(龔正)은 모두 외지인이다. 리창은 시진핑이 저장성위서기로 있을 때 판공실주임이었고, 공인된 시진핑의 심복이다; 공정은 일찌기 리창과 저장에서 여러 해동안 함께 일한 바 있다. 전해지는 바로는 시진핑이 신임하는 류허 부총리의 매부이다. 다만 본토의 시위상위인 비서장 주거위제(諸葛宇傑)는 상하이에서 팬데믹이 발발한 후 시위부서기로 승진하여 정법위서기가 된다. 그는 동시에 시위판공실주임, 시급기관공작당위서기를 맡고 있다.

 

주거위제는 장쩌민의 심복인 한정(韓正)이 상하이에서 한걸음 한걸음 발탁한 인물이다. 그리고 한정이 베이징으로 간 후에도 여전히 리창의 곁에 남아서 '대관가'로 전체 상하이의 시위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나머지 상위는 비록 상하이사람이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상하이에서 오랫동안 관료를 지내서 상하이방의 성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무부시장 우칭(吳淸)은 안후이사람이다. 2010년 11월 상하이시 홍커우구위 부서기, 구장이 된다. 2016년 상하이증권거래소 이사장, 당위서기가 되고, 2018년 상하이시부시장이 된다. 그는 한정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또 한명의 시위상위인 주즈송(朱芝松)은 장쑤 간위사람이다. 2000년 6월부터 2014년까지 상하이항천국 국장조리, 상하이항천국 부국장, 국장, 당위부서기를 지낸다. 2014년 5월, 상하이시위 선전부 부부장이 되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상하이시 민싱구위 부서기, 대리구장, 구장, 구위서기를 맡는다.

 

장쩌민(江澤民)의 장남 장몐헝(江綿恒)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과학원 부원장으로 중국항천에 관여했고, 그의 중요세력은 상하이항천기술연구원, 상하이항천국에 심어져 있는데, 본부가 상하이시 민싱구에 위치해 있다. 2007년부터 주즈송이 상하이항천국을 장악한 시기에 상하이의 항천은 민싱구에 항천성을 건립한다.

 

상하이에서 오미크론이 발발한 후, 폭력적인 도시봉쇄로 현지의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 관료사회도 원성이 크다. 어떤 관리는 자살하고, 어떤 관리는 두통으로 입원한다. 이 기간동안 권력투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방역상황이 여러가지 나타나면서, 어떤 견해에 따르면, 시진핑이 방역을 빌어 '상하이방'을 숙청한다고 본다. 중공의 내부누쟁은 상하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분석가들은 현지관리들이 '탕핑(복지부동)'한다고 말한다. 리창과 공정은 중앙의 말을 잘 들으니, 사람도 아니라고 본다. 관료사회에는 두 사람이 낙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 돌고 있다.

 

주거위제가 승진한 것을 보면 중공20대전에, 상하이의 인사다툼은 또 한번의 큰 싸움이 있을 것같다. 이어서 상하이시위의 교체가 있을 것이므로 주목해야 한다.

 

최신의 대규모 다른 성으로의 인사조치로 6개성간의 이동이 발생했다.

 

당국은 중앙이 통제하는 지방의 인사임명으로 중앙권력의 집중화를 이루려고 한다. 그 중 중요한 모습은 바로 성급최고위간부들이 최근 들어 계속하여 다른 성에서 옮겨오는 교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3월 내지 4월)의 인사교체는 성간의 이동이 특징이다. 심지어 6개성의 고위직이 다른 성으로 직접 이동하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구이어주와 산둥성의 이동, 쓰촨과 샨시의 이동, 상하이와 충칭의 이동.

 

여기에는 중공 광시당위상위, 난닝시위서기 쉬하이룽(徐海榮)이 산둥으로 가서 산둥성위상위, 통전부장이 되고, 산둥성 부성장 왕신푸(王心富)는 광시로 가서, 광시장족자치구당위상위, 통전부장이 된다; 쓰촨 난충시위서기 류창(劉强)은 샨시성위상위로 옮겨가고, 샨시 안캉시위서기 자오쥔민(趙俊民)은 쓰촨성위상위로 온다; 충칭시 부시장 천진산(陳金山)은 상하이시위상위로 오고, 이미 린강신편구당공위서기, 관리위원회주임을 겸직한다. 상하이시정부 부비서장 천밍보(陳鳴波)는 충칭시위상위로 간다.

 

최근의 다른지역에서 임명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전 랴오닝 후루다오시위서기 왕다난(王大南)이 칭하이성위상위로 갔다; 텐진시 부시장 왕웨이동(王衛東)이 칭하이성위상위, 상무부성장으로 갔다; 내몽골구위부서기, 빠오터우시위서기 멍판리는 광둥성위부서기 겸 선전시위서기로 갔다; 광시 바이써(百色)시위서기 허량쥔(何良軍)이 헤이룽장성위상위로 간다. 전 후난성위상위, 조직부장 왕청(王成)은 저장성위상위, 조직부장으로 간다.

 

그외에 비교적 이른 작년연말, 산시성 부성장에서 헤이룽장성 부성장으로 간 왕이신(王一新)은 금년3월 헤이룽장성위상위가 된다. 작년말 광동성장 마싱뤼는 신장구위서기로 옮겨간다. 샨시성위부서기 후헝화(胡衡華)는 충칭시위부서기, 시장으로 옮겨간다.

 

중앙에서 낙하산으로 핵심직위에 내려가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중앙에서 지방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중공20대이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 왕샤오후이(王曉暉)는 쓰촨성위서기로 내려간다; 해관총서 서장 니웨펑(倪岳峰)은 허베이성위서기로 내려간다; 량얜슌(梁言順)은 중앙과국가기관공위상무부서기에서 닝샤자치구당위서기로 내려간다; 응급관리부 부부장 류웨이이(劉偉已)는 지린성위 부서기로 내려갔다. 퇴역군인인사부장 쑨샤오핑(孫紹騁)은 내몽골자치구위서기로 내려갔고, 전 주택건설부장 왕멍후이(王蒙徽)는 후베이성위서기로 내려간다.

 

중앙은행에서 지방으로 내려가 텐진시위상위, 상무부시장이 된 류구이핑(劉桂平); 공업신식부 부부장 왕즈쥔(王志軍)은 헤이룽장성위 부서기로 내려갔다; 전 사회과학원 부원장 장후이(姜輝)는 충칭시위상위, 선전부장으로 내려가고; 인민일보 부총편집 자오자밍(趙嘉鳴)은 상하이시위상위, 선전부장이 된다. 중기위 국가감독위 주심계서기검조장 송이자(宋依佳)는 충칭시위상위, 시기율검사위서기로 내려가고; 전 교통운수부 부부장 왕양(汪洋)은 칭하이성위상위, 성기율검사위서기로 내려간다.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거나, 다른 성으로 내려보내게 되면, 관리들간에 서로 낯이 익지 않기 때문에, 관료사회에서 서로 꺼리는 국면이 나타난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이익관계네트워크를 잘라버리는 작용을 한다. 다만 낙하산으로 내려간 관리의 고자세는 쉽게 현지관리들의 불만을 사게 되고, 외지관리들은 일반적으로 현지관료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설명한 상하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본토파가 오랫동안 장악했던 곳에 다른 성에서 고위직이 올려오는 것은 세력간에 서로 교착되는 혼란스러운 국면을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고 본토파가 승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본토파가 1인자를 맡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모두 특별한 정치적필요때문이다.

 

예를 들어, 티벳, 광시 두 자치구의 수부(首府)인 라싸, 난닝의 1인자가 최근 교체되었는데, 티벳당위상위, 창두시위서기 푸부둔주(普布頓珠)라 라싸의 시위서기를 맡았고, 광시당위상위, 통전부장 농셩원(農成文)은 난닝시위서기가 된다. 푸부둔주와 농셩원은 모두 현지관리이다. 각각 오랫동안 티벳과 광시에서 근무해왔다.

 

중국의 소수민족지구는 통일전선의 필요로, 대량의 적화된 소수민족간부를 기용하는데, 기본적으로 승진을 위해 스스로 세뇌를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다. 티벳과 신장은 모두 각각 여러 명의 티벳족, 위구르족의 상위가 있다. 일반적으로 자치구주석의 지위는 소수민족인사가 맡는다.

 

현재까지, 전국 각성의 1인자는 기본적으로 모두 외지인이다. 다만 구이저우의 탄이친(譚貽琴)과 장쑤의 우정룽(吳政隆)이 예외이다.

 

4월 28일 오후, 구이저우성의 인사교체가 있었는데, 탄이닝은 성위서기를 연임했다. 그녀는 백족이고, 현지에서 계속 근무했다. 역시 성위서기중 유일한 여성이며 소수민족인사이다.

 

우정룽은 장쑤사람이다. 일찌기 기계공업부와 충칭, 산시등에서 재직했고, 2016년에야 비로소 장쑤로 돌아왔다.

 

그외에 전 후저우시위서기 왕강(王綱)은 이미 저장성위상위, 선전부장으로 승진했는데, 왕강도 본토파이다.

 

사실상, 각지의 상위들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은 최근 몇년간 계속하여 다른 성에서 오거나 중앙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관리들이 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샨시성부성장 궈용홍(郭永紅, 여)은 이미 샨시성위상위, 통전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후베이사람이고, 오랫동안 후베이에서 일했다. 3년전에 샨시로 옮겨갔다. 쓰촨성 부성장 몐양시위서기 차오리쥔(曹立軍)은 이미 쓰촨성위상위, 몐양시위서기로 승진했다. 자오리쥔은 후난사람이고, 오랫동안 후난에서 일했으며, 2020년 7월에 쓰촨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5월 2일 교체된 헤이룽장성은 리위강(李玉剛), 양보(楊博)와 위홍타오(于洪濤)의 3명의 상위승진자들중 리위강은 외지인이고, 다만 공부와 초기근무를 헤이룽장에서 했다. 양보는 내몽골사람이고 3년전 내몽골을 떠나 헤이룽장 자무쓰시위서기로 갔다. 위홍타오는 헤이룽장 본토사람이다.

 

중공의 당내에는 역대이래로 여러 파벌이 있었다. 동일한 한 인물에게 귀속된 경우로는 장쩌민파같은 경우가 있고, 동일한 계통출신으로 이루어진 단파(공청단파)가 있다. 더욱 자주 볼 수 있는 경우는 관료를 지낸 지역과 관적으로 구분하는 지방방파이다. 혹은 모교를 기반으로 하는 방파이다. 그래서 어느 성이건 모두 어느 방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링지화(令計劃)가 예전에 꾀했던 "서산회(西山會)"는 중앙에서 지방까지 여러 산시성의 고향사람들로 이루어졌었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정적을 타도하는 죄명중 하나는 "당파결성"이다. 다만 현실에서 여러 해동안 다른 성으로 옮겨버리고, 중앙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게다가 현지에서 승진하는 사람도 생겨, 각지에는 여러 세력이 교착하는 국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남해최고권력자는 이미 적아를 구분하기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시진핑의 심복, 중앙조직부장 천시(陳希)가 주도하는 인사관리는 결국 엉망진창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