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마작(麻雀)의 기원에 관하여

중은우시 2022. 1. 21. 22:20

글: 유계흥(劉繼興)

 

청나라때의 대학자 대명세(戴名世)의 <우암집(憂庵集)>등 고적에 다르면 마작패는 명나라때의 만병초(萬秉迢)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한다.

 

만병초는 시내암(施耐庵)의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양산 108명의 호한들을 좋아하여, 오락도구로 그들을 기념하고자 한다. 며칠동안 세심하게 마작패를 만들어낸다. 그는 마작패를 108장으로 설계하여 <수호전>의 양산 108호한을 나타낸다. 패중 '구색(九索)'은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을 가리키고, 이색(二索)은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을 가리킨다. 마작은 다시 만(萬), 통(筒, 북방에서는 병(餠)이라 부른다), 색(索, 북방에서는 조(條)라고 부른다). 이는 발명자인 '만병초(萬秉迢, 萬餠條)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어서 만병초는 양산의 108호한이 각각 동, 서, 남, 북, 중의 다섯 방위에서 왔다고 하여, '동, 서, 남, 북, 중'을 각 4장 합계 20장을 더 만든다. 동시에 양산의 영웅호한들중에는 빈곤한 출신도 있고, 부자출신도 있다. 그리하여 '빈(貧)'은 "백(白)"(板)으로, "부(富)"는 "발(發)"(財)의 두 개를 각각 4개씩 합계 8매를 둔다. 이렇게 하여 전체 136매의 마작패가 완성된다.

 

수박양산(水泊梁山)은 송강의 영도하에 초안(招安)을 바랐고, 보정과 화(和)해하기를 구했다. 송나라조정과 싸워서 이기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마작을 이긴 사람은 "후(和)"라고 하는 것이다. "승(勝)"이라고 하지 않고....

 

마작의 기원에 관한 또 하나의 견해는 정화하서양(鄭和下西洋)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정화는 큰 범선을 몰아 항해를 했다. 해상을 항해할 때, 무료하여 '통(筒)'은 선박의 철병을, '색(索)'은 밧줄을, '만(萬)'은 갑판의 병사의 모양을 딴 것이라고 한다. '중', '발', '백'는 배가 항해할 때의 깃발을 표시하고, 동서남북은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작은깃발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