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혁(王赫)
2022년이 시작되면서, 카자흐스탄에서는 소련해체이래 최대규모의 시위가 폭발했다. 수천수만의 분노한 항의자들이 길거리로 나왔고, 항의내용은 우선 에너지가격이고 이어 민주에 대한 요구로 바뀌었다. 카자흐스탄정부는 전부 사직하고, 전직대통령 나자르바예프는 도망쳤다. 전국적인 시위가 날로 커져가는 때 러시아를 위시한 CSTO(집단안보조약기구, 러시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키르키즈스탄의 6개국이 회원국임)는 병력을 파병하여 카자흐스탄에서 '평화유지'활동을 벌이고,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1월 7일 카자흐스탄 대통령 토카예프는 경고없는 발사명령을 내렸고, 전국에 '긴급홍색'경계를 발령했으며 3천명이상이 체포되었고, 각지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회복되었다.
카자흐스탄사변은 돌연 발생했고, 형세가 급변했으며, 러시아의 개입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사변의 배후요소는 복잡다단하고, 사변의 후속영향은 현재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 그 내용은 다루지 않기로 하고, 다만, 중국당국이 이 사변으로 인해 입은 세 가지 충격을 얘기하기로 한다.
첫째, 카자흐스탄의 전 대통령 나바르바예프라는 "오랜친구"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철완급의 정치인이다. 1991년 12월 소련해체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 취임하고 그후 여러번 연임했다. 2019년 3월,전국각도시에서 지속적인 항의활동이 발생한 후,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의 직을 사임하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여전히 국가안전위원회 주석으로 남아 있으면서, 수렴청정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가 통치한 30년동안 부패가 횡행하고, 개인숭배가 성행했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그의 이름을 따러 누르술탄으로 새로 명명된다. 또한 카자흐스탄 현행헌법 제42조 제5항의 "동일인이 연속하여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을 연임하는 것은 2기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의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평론했다: 나자르바예프는 스스로 대통령의 지위에서 내려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용을 잡던 소년에서 악마로 변했다.
나자르바예프는 중공과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금년 1월 3일, 시진핑은 각각 나자르바예프(카자흐스탄 제1대 대통령의 명의), 대통령 토카예프에게 축전을 보내어 수교 30주년을 경축했다. 중공당수는 나자르바예프를 "나의 오랜 친구"라고 칭했고, 그와 함께 "양호한 업무관계와 심후한 개인적 우이ㅡ를 건립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틀만에 나자르바예프의 운명은 완전히 뒤집힌다.
최근 들어, 중공의 "오랜 친구"들은 여럿 액운을 맞이했다. 예를 들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짐바브웨의 무가베, 수단의 알바시르등이다. 현재 나바르바예프가 다시 이 행렬에 새로 들어간 인물이 되었다. 이는 중공에 주는 심리적 타격이 엄청날 것이다.
둘째, 푸틴의 출병은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는 모두 러시아의 세력범위임을 보여준다.
중공은 늘어난 경제력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에 파고 들어서 러시아와 경쟁해왔다. 중앙아시아의 제일대국인 카자흐스탄은 자연히 중공이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이었다. 중국당국의 '일대일로'는 바로 2013년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요즘 들어, 러시아의 경제는 계속 부진했다(GDP는 중국의 광둥성정도이다). 다만 군사력을 이용하여 국제적으로 아주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옛소련지역에서는 그러했다. 중앙아시아에 대하여 러시아는 계속 자신의 세력범위로 여겨왔고, 절대로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2011년, 푸틴은 유라시아신일체화의 거대한 구상을 내놓고, 4개의 단계로 구분한다. 관세동맹, 공동경제공간, 유라시아경제연맹과 유라시아연맹. 이를 차례로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유라시아경제연맹이 결성되고, 러시아,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과 아르메니아의 5개국이 회원국이 된다. 푸틴이 "유라시아경제연맹(Eurasian Economic Union, EAEU)"을 제창한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중앙아시아가 중국의 경제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푸틴이 카자흐스탄에 출병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에 보라는 것이지만(미국과 러시아는 러시아 우크라이나국경에서 대치하고 있다), 속으로는 중국을 위협하는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바로 중앙아시아의 큰형님이다. 네가 돈이 많다고 해서 나와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이번 사면으로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러시아로 더욱 기울어진다.
2020년 신종코로나가 발발한 후, 특히 2021년 아프간사태가 발생한 이후,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전략적인 대철수를 진행하였고, 중국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어했다. 첫째, 대거 '마스크외교', '팬데믹외교'를 벌인다. 둘째, 공업능력을 강화하여 경제에 침투한다. 예를 들어, 2021년의 1월에서 10월까지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쌍방무역액은 208억달러에 달했고, 전년동기대비 14%가 증가했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제2대무역파트너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의 제1대수출국이 되었다. 셋째, 중국은 중앙아시아 5개국 외무장관과 만나는 "5+1"매커니즘을 건립하고, 2020년 제1차회의를 온라인으로 거행한다. 2021년 5월 12일 제2차회의를 중국시안에서 대면회의로 진행했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는 아주 주목하고 경계했다. 러시아의 주요매체는 불시에 글을 싣어 중국이 중앙아시아국가내정에 간섭하여, 모스크바가 중앙아시아국가를 도와 주권을 보위하고 중공의 영향을 약화시킨데 더욱 큰 도전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2021년 5월 11일 크레믈린에 가까운 러시아의 주요 인터넷매체인 Lenta.ru는 장편의 글을 발표하여 과거 통상적으로 중국이 중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에 집중되어 있고, 중앙아시아의 안전과 정치는 모스크바가 조종한다고 여겨졌으나, 미국의 철군과 중국이 신장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고자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의 균형이 깨빌 수 있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외에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경제에 침투하여, 일부 카자흐스탄인민의 반발을 불러온 적이 있다. 몇년전 카자흐스탄에서는 중국에 대한 전국적인 대규모 항의시위가 발생한 바 있다. 그리하여 당국은 2016년부터 외국인에 대한 토지매각과 임대를 동결시킨다. 그리고 중국이 신장에서 대규모 인권침해를 일으키면서(피해자중에는 카자흐족이 있다), 카자흐스탄인민의 분노를 샀다.
이번 사변으로 카자흐스탄의 대통령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의 국가안전위원회 주석의 직위를 박탈했다. 이제부터 그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는 그가 중국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를 기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러시아가 출병하여 토카예프를 도운 것에는 당연히 부대조건이 있다. 특히 도움을 주는 사람이 푸틴같이 정명한 사람인 경우에는.
그러므로 이번 사변을 거치면서, 이렇게 예상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외교전략은 미묘하면서도 심각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에 더욱 의존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러시아, 카자흐스탄 양국은 모두 중국에 대량의 석유, 천연가스를 수출한다. 러시아는 유라시아경제연맹에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표준관세를 주장해왔다. 이렇게 해야 러시아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와의 사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무역에서 가격결정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나자르바예프와 현임 토카예프는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앞으로 토카예프가 관련정책을 조정하게 되지 않을까?
결론
카자흐스탄의 형세는 급격히 변화하고, 중국도 느끼고 있다. 1월 6일, 중국 외교부대변인 왕원빈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에서 현재발생한 일은 카자흐스탄의 내정이다. 카자흐스탄정부가 적절하게 해결할 것으로 빋는다. 러시아가 출병한 후, 중국의 어투는 완전히 바뀐다. 7일, 시진핑은 카자흐스탄 대통령 토카예프에게 이런 뜻을 전달한다: "외부세력이 고의로 카자흐스탄에 동탕을 일으키고, 색깔혁명을 일으키는데 견결히 반대하고, 여하한 중국카자흐스탄간의 우호를 파괴하거나 양국협력을 흔들려는 기도를 견결히 반대한다."운운했다.
중국의 말투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카자흐스탄사변의 효과는 지금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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